본 글은 2016년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제3회 월례 공개강좌에서 김헌수 목사(독립개신교회 신학교 교장)가 발표한 내용을 듣고 정리한 글이라 강좌의 내용과 다소 차이가 있을 수도 있음을 밝힙니다.

우리는 흔히 교회 내에 전해진 역사적인 문헌들을 공부할 때 부지불식간에 우리 시대의 관점에서 그 당시의 문제들을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교회를 이 세상과 분리시켜 하늘에 두신 것이 아니라 항상 이 땅에 발을 붙이고 사는 사람들을 그 교회의 거룩한 구성원으로 삼으시고 교회의 역사를 전진시켜 나가십니다. 그러므로 교회에서 역사적으로 전해진 신앙고백서라고 하는 것도 그 고백서를 작성한 교회들이 처해 있던 시대적인 상황을 무시하고 별도로 존재하는 것이 아닙니다.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세 번째 공개강좌의 주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 나타난 교회에 대한 고백’에 관한 것이었는데, 이 주제를 강연한 김헌수 목사님은 강연의 초반부터 이 점을 분명하게 강조하였습니다. 다시 말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그 고백서가 작성된 17세기의 영국의 시대적인 배경에 대해서 우선적으로 알아야 한다는 것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잉글랜드 의회가 소집한 의회의 자문기관이었습니다(활동 기간: 1643-52년). 당시 잉글랜드 의회는 영국의 왕이었던 찰스 1세와 내전 중에 있었는데, 전쟁의 주된 원인은 종교적인 문제였습니다. 찰스 1세 때 영국의 국교인 성공회의 대주교는 윌리엄 로드였습니다. 그는 잉글랜드 내에서 개혁 신학을 가르치거나 개혁 신앙을 가진 신자들을 핍박하는 것으로 유명하였는데, 의회 사람들은 그의 배후에 찰스 1세가 있다고 생각하였습니다. 그리하여 그동안에도 왕과 의회 간에는 갈등이 있었지만 그 대립의 골이 심화되어 급기야 내전이 발발하였습니다. 국가적인 비상사태를 맞이하여 의회가 해야 할 당면의 과제는 신학자들의 위원회를 구성하여 교회의 법률적, 신학적 기초를 마련하는 일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의회는 119명의 위원을 소집하였는데, 구성원의 대부분은 목사였지만 거기에는 정치인들도 포함되어 있었습니다. 이렇게 해서 소집된 위원회를 웨스트민스터 회의라 부릅니다. 위원회는 대부분 장로교를 지지하는 사람들로 구성되었지만, 감독제나 회중교회를 지지하는 사람들도 일부 있었습니다.

우리가 신앙고백서를 살펴보면 다수파의 사람들이 소수파의 입장을 무시하고 일방적으로 자신들의 입장만을 내세운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됩니다. 소수파에 대한 배려가 고백서의 문구 가운데 곳곳에 배어 있습니다. 대표적으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5장의 ‘보이지 않는 보편적인 교회’(25장 1절)와 ‘보이는 지역 교회’(25장 2절)에 관해서 고백하는 조항들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흔히들 이 조항들을 놓고서 이 고백서가 마치 2개의 별다른 교회가 있는 것처럼 함으로써 결국 ‘눈에 보이는 지역 교회’를 ‘보이지 않는 보편의 교회’보다 열등한 것으로 생각하게 만든다고 비판하곤 합니다. 그러나 이것은 영국 교회가 처해 있던 당시의 상황을 모르고 하는 말입니다. 당시 회중교회를 지지하던 사람들은 지역교회의 독립성을 강조한 나머지 ‘보이는 지역 교회’에 지나치게 무게 중심을 둔 반면에 성공회나 로마 교회의 교회관을 지지하던 사람들은 하나의 보편적인 교회론을 내세우면서 교회의 교권적인 통치 질서 안에서 보편의 교회를 이해하려는 경향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의 주장을 전면적으로 비판하여 그들과 대립각을 세우기보다는 다른 입장을 취한 사람들도 공감할 수 있는 공통적인 요소를 내세우면서 동시에 극단적인 주장들이 가진 오류들을 완곡하게 비판하는 어법을 구사하였습니다.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이러한 온건한 태도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가 교회의 표지(mark)를 고백하는 데에서도 발견하게 됩니다. 우리는 흔히 보이는 교회의 3대 표지를 말할 때, ‘예배’와 ‘성찬’과 ‘권징’이라 합니다. 그런데 이 고백서에서는 교회의 표지를 ‘말씀’과 ‘성례’와 ‘예배’라 하였습니다(25장 4절). ‘권징’ 대신에 ‘예배’라는 말을 쓴 것입니다. 강연자의 말에 따르면 이것은 당시에 회중교회를 지지하던 사람들의 입장을 고려하면서도 권징의 본질을 잘 드러낼 수 있는 표현을 사용한 것으로 볼 수 있다고 하였습니다.

강연자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교회론에 관한 것을 검토한 뒤에, 몇 가지 논점들을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와 비교하였는데 두 고백서가 모두 지역 교회의 보편성에 대해서 고백하고 있으며, 교회의 회원이 되는 문제를 언약론적인 관점에서 다루고 ‘교회 밖에 구원이 없다’는 말이 갖는 원칙적인 의미에 대해서 동일한 입장을 취하고 있다고 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같은 입장을 취하더라도 그 표현에 있어서는 정도의 차이가 있다는 것을 지적하였습니다. 예를 들면 네덜란드 신앙고백서에서 ‘참교회와 거짓교회’에 대해 고백하는 내용을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에서는 ‘더 순수한 교회와 덜 순수한 교회’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이렇게 표현상에 차이가 발생하게 된 이유는 이 고백서들을 작성한 교회들이 처한 역사적 맥락이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16세기의 네덜란드 교회들은 로마교회로부터 강한 핍박을 받으면서 그들로부터 분리되어 개혁의 일을 진행하다 보니 성공회의 개혁을 요구하면서도 그들을 자신들과 동일한 신앙고백을 할 수 있는 자리로 이끌고 나가려고 했던 17세기의 영국의 교회들보다 상대적으로 온건한 표현들을 사용하게 된 것이라 하였습니다.

강연자는 강연의 후반부에 신앙고백서와 교회 정치는 당시의 현실을 반영하고 있으므로 우리가 이 고백서를 볼 때에도 그 고백서를 작성하던 분들이 동시대에 같은 신앙을 고백하고 나가던 사람들과 어떻게 연대하였고, 또한 자신들과 다른 입장을 가진 사람들에 대해서는 어떠한 관용과 사랑의 태도를 나타내었던가를 주의 깊게 보아야 한다고 하였습니다.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은 자신들과 입장을 달리한 사람들에 대해 무조건적으로 비판하거나 어설프게 절충하거나 타협을 한 것이 아닙니다. 그들은 말씀을 깊이 깨달아서 당면한 문제들을 역동적으로 풀어 나갔는데, 그것은 결코 사람에게서 나온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에게서 나온다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혼란스러웠던 개혁의 시대에도 이처럼 큰 은혜를 베푸셔서 귀한 신앙의 열매를 고백서의 형태로 맺게 해 주셨던 것입니다.

그 당시 믿음의 선배들이 처했던 상황과 오늘날 우리의 상황을 비교해 보면, 우리에게는 그들처럼 종교적, 정치적 핍박이 가시적으로 나타나지는 않는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훨씬 더 복잡하고 혼란스러운 신학과 신앙을 주장하는 교회들이 활발하게 활동하고 있으며, 정통을 자처하는 교회들 안에서도 진리와 사이비가 뒤섞여서 올바른 것을 분별하는 것을 더욱 어렵게 만들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의 믿음의 선배들에게 은혜를 베푸셔서 바른 신앙을 고백할 수 있게 해 주셨던 그 하나님께서는 또한 오늘날에도 우리의 하나님이 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그것이 얼마나 큰 위로가 되는지 알 수 없습니다. 우리의 선배들이 하나님을 의지하여 그들의 시대에 직면한 문제들을 역동적으로 해결해 왔던 것처럼 오늘날 우리들도 그 동일한 주님이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시는 그 기묘한 역사에 의지하여 우리의 문제들을 풀어 나가야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