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71년 4월 김홍전 목사는 일본에서 한국에 계신 어머님께 편지를 보낸다. 57세 된 장자가 고국에 계신 노모께 안부를 여쭙는 것이다.

어머님 전 상서

살피옵지 못하옵는데 그동안 어머님 기체후 일향 만강하시오며 동생의 집안도 두루 평안하온지요. 어머님 소식은 때로 서울 아이들 편으로 듣자오며 지금도 전주에 계신 줄로 아옵고 그곳으로 상서하나이다. 여기 저희들은 주님의 은혜로 잘 지나고 있사오며 시무하는 교회도 주 안에서 평안히 잘 자라고 있사오니 안심하옵소서.

①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작년 시월에 그때까지 일 보던 학교를 그만두고 ②그동안 먹이던 교회를 전담하여 목회하여 오고 있사옵니다. ··· 학교는 여러 가지로 ··· 또 그동안 목회하던 교회는 착실히 장성하여 가며 더욱 전심으로 돌아보아야 하겠기에 학기가 끝나는 대로 사직을 하고 교회만을 계속하여 전담하여 목회하옵는데 늘 주님 앞에 많은 은혜를 받고 바쁘게 지나옵니다.

③사는 집은, 학교 사택은 곧 비워 주고 교회가 준비하여 준 이 집으로 이사하였는데 이층집으로 장소도 좋고 경치가 참 좋은 곳이옵니다. 교회는 여기서 자동차로 한 이십 분 가는데 교회 갈 때마다 교인들이 자동차로 델러오나이다. 그밖에도 전기 철도도 있고 하여 지나기가 불편하지 않사옵니다.

여기는 부활 주일 전 주간에 사꾸라꽃이 만발하였고 이제는 날씨도 따뜻하여 좋사오나 때때로 봄바람이 세게 부나이다. 부활 주일에는 새벽에 저 사는 곳 근처의 높은 언덕이 있고 그 위에 집터와 큰길을 다듬어 놓았는데 그 언덕의 고대 위에 저희 교회 식구가 모여 주님 부활을 찬송하고 아침에는 성경 공부 후에 예배드리고 같이 점심 먹고, 저녁때에 다시 예배드리고 돌아왔나이다.

교회는 늘 이렇게 주일에 모이고 수요일과 토요일 저녁에 모여 수요일에는 예배드리고 토요일에는 기도하나이다. 잘 지나고 늘 주님말씀 가르치고 뜻을 풀고 있사오니 안심하시고 늘 어머님 기체후 안녕하시옵소서. 이만 주리나이다.

                                         1971년 4월 14일  자 홍전 상서

이 편지는 4월에 쓴 것이고, 김 목사님은 7월에 이르러 그곳에서 목회하던 일을 접고 완전히 귀국한다. 그리고 그해 11월에 모친이 세상을 떠난다. 이런 일들이 1971년에 다 있었다. 그런데 앞의 편지글에 그간 일본에서의 김 목사님의 행적을 유추해 볼 단서가 있다. ①‘아시는 바와 같이 저는 작년 시월에 학교를 그만두고···.’ ②‘그동안 먹이던 교회를 전담하여 목회하여 오고 있습니다.’ ③‘사는 집은, 학교 사택은 곧 비워 주고 교회가 준비하여 준 이집으로 이사하였는데···.’

김 목사님은 일본의 신학교에서 수년을 가르치셨다. 그런데 이제는 그 신학교를 사임하고서 이미 시작했던 교회만을 돌보는데, 거처는, 학교 사택에서 교인들이 마련해 준 집으로 이사했다는 것 등이다.

이 기행문에서 김 목사님이 선교사로 일본에서 하신 일을 다 밝힐 수는 없다. 다만 이번 일본 여행이 갖는 의미에 합당한 정도의 현장성을 강조해서 이야기할 뿐이다. 

어떤 일들을 시작하였고 끝을 맺었다면, 그런 일들이 이루어진 역사 현장을 방문해 보고, 그때 함께 활동했던 분을 만나 이야기를 전해 들음으로써, 좀 더 역사적 사실을 분명히 알게도 되고 더 나아가 주 하나님께서 어떻게 교회와 주의 종과 함께 하셨는가도 깨닫게 될 것이다.

일본 여행 둘째 날 오전

어느 나라나 짧게 방문할 때면, 그 나라를 방문하는 목적이나 얼마동안 머물 것인가 하는 방문 기간을 밝혀야 한다. 그때 날수 계산은 대개 들어오는 날과 떠나는 날을 포함해서 계산하게 된다. 2013년 11월 독립개신교회 신학교 학생들과 졸업 여행을 할 때, 중국에서 비행기를 바꿔 타야 했는데 자정이 다 되어 북경 공항에 도착한 우리들은 서너 시간 후에 떠나는 이집트 항공을 기다렸다. 불과 네댓 시간도 못 되게, 그리고 공항에만 머물러 있었음에도 하루가 아닌 이틀을 그 땅에 머문 셈이 되었고, 중국 규칙에 따라 우리는 입국한 뒤에 출국하는 절차를 밟아야 했다. 단지 비행기만 갈아탈 뿐인데, 수속이 왜 그리 복잡하고 오랜 시간이 걸리는지, 중국말을 모르는 우리 일행 대부분은 사정도 모른 체 어리둥절했던 경험이 있다.

마찬가지로 이번 일본 여행도 4일 동안이라지만 도착한 날과 떠나는 날을 빼면 온전한 날은 이틀뿐이니 도착한 이튿날에는 본격적으로 일본에 온 목적을 따라 움직여야 한다. 이날 우리 일행은 오전에 시미즈 다께오(淸水 武夫) 목사님을 만난다. 서울에서부터 만나 주시기를 부탁드렸고 흔쾌히 만나 주시겠다는 답을 받은 터였다.

사실 아침에 일어났을 때에는 약간의 걱정이 있었다. 만나 뵙기로 한 목사님과 만나서 기대하던 바를 잘 이룰 수 있을까 하는 염려였다. 서울을 떠나오기 전부터 죽 그랬다. 아침 식사 후에 동행한 두 형제와 함께 시편 75편을 읽고 주님께서 우리의 걸음을 인도해 주시기를 기도했다. ‘과연 어떨까?’ 하는 기대와 또 우리의 준비 부족을 염려하며 동경 숙소를 떠난 것이 8:30분이었다. 출근 시간의 번잡함을 뚫고 또 거미줄처럼 뻗어 있는 동경 전철 노선을 바꾸어 가면서 시미즈목사님과 만나기로 약속한 ‘야가와’ 역에 도착하였다. 차에서 내려 계단을 올라섰을 때 ‘표내는 곳’(改札口) 너머로 ‘저분이다’ 하고 한눈에 알아 볼 수 있는 노신사가 서 있었다. 방금 도착한 기차에서 내려 출구를 통과하고 있는 사람들을 고개를 빼고 일일이 살피며 서 계시는 모습이, 내 눈에 저분이구나 하고 비춰진 것이다.

반갑게 인사를 나누었다. 고정우 선생은 전에 한번 교회로 찾아가서 뵌 적이 있었고, 나와 홍승민 선생은 처음 만난 것인데, 온화하고 겸손한 신자임을 말과 행동에서 느낄 수 있었다. 차에서 내린 이들이 밀물같이 다 빠져 나가고 방해받음 없을 때 주변 안내도 앞에 서서 목사님이 손으로 가야 할 곳을 가리키면서 그때의 모습과는 어떻게 달라졌는가 하고 변모한 상태를 설명해 주었다. 그 이야기를 들어도 처음이라 얼떨떨해서 실감이 나지 않았다. 어쨌든 역 주변 안내도에 나와 있는 정도의 거리, 퍽 가까운 거리를 목사님 뒤를 따라 걸어갔다.

처음 간 곳은 맨 처음에 동경영도교회로 모인 장소였다. 동경에서 교회로 모이기 시작한 것은 1968년 4월부터지만, 이곳저곳 집을 옮겨가며 모이다가 한 곳을 정하고 모인 때가 69년 6월인데, 시미즈 목사님과 함께 한 교우들이 지금 우리가 가려고하는 ‘야호’에 셋집을 얻고 거기서 예배를 드렸다. 그곳에 시미즈 목사님이 혼인 전에 거주하였다. 그리고 1970년 4월에는 이 교회적 모임의 이름을 ‘동경영도교회’라 확정하고 교회로 출발했다. 또 1970년 5월에는 시미즈 군과 이쿠코 양이 김홍전 목사의 주례로 혼인하여, 야호 그 집에서 신접살이를 시작하였다. 그 후 10월부터 ‘동경영도교회만을 섬겼는데, 그때 동경기독교대학을 사임하였다.

예배처소였던 야호의 신혼 셋집에는 방이 둘이 있었는데, 큰 방이 다다미 여섯 장, 작은 방이 넉 장반이 깔린 자그마한 집이었다고 했다.  그러나 40년도 더 지난 그곳에는 옛 자취가 하나도 없었다. 그때를 짐작해 볼 만한 아무것도 없고, 사유지인 터라 들어갈 수가 없어 먼발치에서 바라보았을 뿐이다. 사진첩에 그 때의 사진과 기억에만 남아 있을 뿐 ······.

두 번째로 찾은 곳은 동경기독교대학이 있던 곳이었다. 오늘 동경기독교대학은 그 자리에 없고 동경 외곽 국제공항이 있는 치바 현, ‘인자이’(印西) 시로 옮겨 갔다. 지금은 단과 대학이 아니라 종합 대학이고 규모도 커졌다고 한다. 그렇지만 우리에게 중요한 것은 단과 대학으로 서 있던 동경기독교대학(T.C.C.)이다. 거기서 김홍전 목사님은 1967년 봄 학기부터 1970년 가을 학기까지 구약을 비롯해 여러 과목들을 가르치셨다.

영도교회 예배 처소로 사용했던 건물도, 동경기독교대학 건물도 이미 사라져 버리고 그 터에 크고 높은 건물만 서 있었다. 예전의 일을 말해 줄 만한 것이 없었다. 4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그때의 무엇을 기대하는 것이 무리였다. 한국이라도 마찬가지 상황일 터이다. 시미즈 목사님은 자신의 옛 사진첩까지 가져오셔서 사진도 보여 주시며 설명을 하셨지만, 그 나라의 시대상도 모르고, 그 변화도 모르는 외방인으로서는 별로 떠오르는 것이 없었다. 해서 두 개의 옛 터를 찾아본 일은 싱겁게 끝나버렸다.

10시에 시미즈 목사님을 만났고 두 군데를 가서 살펴보는 데에 걸린 시간이 한 시간 이십 분 정도였다. 아직 12시가 되기 전이라 다음 장소로 이동하기로 했다. 다시 야가와 역에서 기차를 타고 ‘토요다’(豊田)로 향했다. 토요다는 김 목사님이 신학교를 사임한 뒤에 학교 사택을 비워 주고 옮겨 간 곳으로 영도교회가 마련한 사택이 있던 동네다. 

토요다 역에서 내렸는데, 지형이 낯설었다. 도시의 동남 편은 낮은 지대로 넓게 펼쳐 있고, 또 멀리 아래로는 물이 흐르고 있다. 반대로 북서 편으로는 고원이었다. 한 눈에 뚜렷하게 구별되는 높낮이 중간에 기차 역사를 지어, 동편으로 계단을 내려가면 낮은 지역을, 북편으로 계단을 올라 출구로 나가면 고원에 형성된 도시를 만난다. 토요다는 그렇게 동서로 길게 그리고 넓게 뚜렷한 높이 차이를 이용해서 발달한 도시였다.

기차역에서 먼저 동편 출구로 내려갔다가 역사를 거쳐 다시 높은 쪽 출구로 나갔는데, 그 까닭은 벌써 정오가 가까웠기 때문이다. 오늘 일정 중에 세 번째 목적지를 찾기 전에 먼저 점심을 먹기로 했다. 우리 일행은 아침에 일어나서부터 5시간째 계속 움직이고 있었다. 시미즈 목사님도 우리를 만난 후 2시간 가까이 계속 서서 움직였으니까, 다리를 쉬면서 무엇을 먹기도 하고 여유를 부려야 할 때였다. 토요다역 광장 가까이에 자그마한 덮밥(돈부리) 집이 있어 그리로 들어가 자리를 잡았다.

앉은 지 채 5분이 못 되어 많은 사람들이 몰려 와 금방 테이블을 다 채웠고, 또 줄서서 기다리고 있다. 그때가 12시였다. 무엇을 시켜서 먹은 후에 여전히 많은 이들이 기다리므로 빨리 일어나 주는 게 좋을 듯하여 돈부리 집을 나와서 커피 마실 곳을 찾았다. 거기도 사람들이 가득하였다. 문 앞에서 입장을 못하는 사람에게 종이컵에 거저 커피를 따라 주었다. 다리가 풀려 자리가 나기까지 기다릴 수 없어 길 건너 새로 생긴 쇼핑센터로 가서 쉴 곳을 찾았는데, 거기 중간층에 서울에서도 익숙한 ‘별다방’이 있었다. 

아직 둘째 날 여정이 남아 있지만 계획한 대로 시미즈 목사님도 잘 만났고, 찾아보려 했던 장소도 목사님이 안내해 주셔서 힘들이지 않고 보았고, 듣고 싶은 이야기들도 들을 수 있었다. 시미즈 목사님이 이미 우리가 가기 전에 먼저 찾아가 확인해 두었기 때문에 그처럼 수월하였던 것이다. 또 점심을 먹은 후에 커피 점에 앉아서 세 시간이 넘게 거의 쉬지 않고 그 당시의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40여 년 전 일들과 후에 변화한 일들을 말씀하시고, 살아오면서 자연스럽게 깨달은 것들이랑 또 지금의 생각들까지도 정말 진지하게 힘써 전해 주셨다. 그의 태도와 말씀에서 꾸밈이 없는 진실한 신자요 목회자임을 알 수 있었다.  - 다음 호에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