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 선행(善行)과 『복음의 기쁨』

프란치스코가 한국을 방문한 주요 목적은 순교자 124명을 복자(福者)로 시복하고 아시아 청년 대회에 참석하기 위한 것이었지만, 그는 짧고 바쁜 일정 가운데서도 세월호 참사 유족과 장애인, 새터민, 이주 노동자 등을 만나 위로하는 데에 상당한 시간을 할애하였다. 세월호의 아픔이 온 나라를 덮고 있던 그 시기에 한국을 찾았던 프란치스코는 네 차례에 걸쳐 세월호 유족들을 만났고 어떤 유족이 준 노란 리본을 방한 기간 내내 달고 다녔다. 그들의 슬픔에 공감함을 그렇게 표현한 것이다. 그는 아직 시신을 찾지 못하여 팽목항을 떠나지 못하고 있는 세월호 실종자 가족들에게 “직접 찾아뵙고 위로의 마음을 전하지 못해 송구스럽게 생각합니다” 하는 위로의 편지를 보내면서 자기의 묵주를 함께 전달하게 하였다. 그러한 모습은 자기변명으로 일관하던 한국의 정치가들의 모습과는 큰 대조를 이루었다. 가히 ‘프란치스코 열풍’이라고 할 정도로 매스컴은 그의 일거수일투족을 조명하였고 정치권은 개점휴업을 한 것처럼 보였다. 누가 한국의 지도자인지를 잠시 혼돈케 할 정도였다.

프란치스코는 방한 첫날 청와대를 방문하여 박 대통령을 예방하고 주요 공직자들 앞에서 연설하였다. 그는 국빈(國賓) 자격으로 방문하면서도 한국의 ‘놀라운 경제 성장’과 같은 미사여구 대신 한반도의 평화와 환경 문제, 특히 가난한 사람과 소외 받는 사람에 대한 배려에 대하여 말하였다.

또한 가난한 사람들과 취약 계층 그리고 자기 목소리를 내지 못하는 사람들을 각별히 배려하는 것 역시 중요합니다. 그들의 절박한 요구를 해결해 주어야 할 뿐만 아니라, 그들이 인간적, 문화적으로 향상될 수 있도록 도와주어야 합니다. 저는 한국의 민주주의가 계속 강화되기를 희망하며 ……(2014년 8월 14일. 청와대 충무홀 만찬식 연설)

대통령과 각료들이 있는 그 자리에서 조금도 주저함이 없이 위와 같은 이야기를 하는 것을 보고서 많은 사람들은 크게 박수를 쳤다.

프란치스코의 말이 로마 교회 밖에 있는 사람에게도 울림이 있는 것은 그가 로마 교회 안을 향하여서도 동일한 기조로 말하고 행동하였기 때문이다. 그는 음성의 꽃동네를 직접 찾아가서 어려운 가운데 있는 자들을 위로하였고, 또한 평신도 수도사들을 만나서 그들이 교회의 밑거름이자 중추적 역할을 한다고 격려하였다. 반면 한국의 주교들에 대하여서는 다소 다른 어조로 말하였다. 그는 주교단 모임에서 사목의 일이 본연의 직무임을 이야기하면서 구체적으로 이렇게 덧붙여서 말하였다.

번영의 시기에 오는 위험, 유혹이 있습니다. 위험이란 그리스도교 공동체가 한갓 “사교 모임”이 되는 것입니다. 곧 신비적 측면을 잃고 하느님의 신비를 거행하는 능력을 잃어버린 그러한 공동체는 영적이고, 그리스도교적이며, 그리스도교적인 가치를 지닌 조직이지만, 예언자적인 누룩을 잃어버리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가난한 이들이 교회에서 할 일은 없어지고 맙니다.……교회는 중산층의 공동체가 되어, 가난한 이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고 그 안에 들어가기를 부끄러워할 지경에 이르렀습니다. 이는 또한 정신적 웰빙, 사목적 웰빙에 대한 유혹입니다. 곧 가난한 이들을 위한 가난한 교회가 아니라 부자들을 위한 부유한 교회, 또는 잘사는 자들을 위한 중산층의 교회가 되려는 유혹입니다. (2014년 8월 14일. ‘한국 주교들과의 만남’에서 행한 연설)

프란치스코는 한국 사회가 발전하고 번영하면서 한국에 있는 천주교도 그러한 유혹에 노출되어 있음을 강력히 경고하였다. 그는 번영의 시기에 교회가 받는 유혹을 정확히 지적해 내었고, 가난한 자들이 교회 안에서 수치심을 느끼는 지경에 이른 것은 교회의 신비한 성격을 잃은 것이라고 바르게 설파하였다.

그는 124명을 복자로 선언하는 미사에서도 순교의 현대적 의의에 대하여 이야기하였다.

막대한 부요 곁에서 매우 비참한 가난이 소리 없이 자라나고 가난한 사람들의 울부짖음이 좀처럼 주목받지 못하는 사회들 안에 살고 있는 우리에게 순교자들의 모범은 많은 것을 일깨워 줍니다. 이러한 속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우리가 어려움에 처한 형제자매들에게 뻗치는 도움의 손길로써 당신을 사랑하고 섬기라고 요구하시며, 그렇게 계속 우리를 부르고 계십니다. (2014년 8월 16일. 시복 미사 강론)

프란치스코가 현대의 사회 구조 속에서 신음하는 가난한 사람들을 순교적인 정신으로 돌보자고 권면한 것은 그의 사목 활동과 긴밀히 연결되어 있다. 그는 아르헨티나에서 주교로 활동할 때에도 검소한 삶을 살면서 가난하고 소박한 사람들에 대하여 지속적인 관심을 기울였을 뿐 아니라, 소외와 빈곤을 낳는 체제나 구조에 대하여 매우 비판적이었다.

1200여년 만에 비유럽 출신으로 교황이 된 프란치스코는 교황의 자리에 오른 뒤에 『복음의 기쁨』(evangelii gaudium)이라는 권고의 글을 발표하였다. 288항에 이르는 긴 문서이지만, 저자의 경건과 겸손, 그리고 사람에 대한 친근한 사랑을 느낄 수 있도록 쓰인 책이다. ”복음의 기쁨은 예수님을 만나는 모든 이의 마음과 삶을 가득 채워 줍니다. 예수님께서 주시는 구원을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죄와 슬픔, 내적 공허와 외로움에서 벗어나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있는 기쁨이 끊임없이 새로 생겨납니다“ 하는 말로 시작하는 그의 책은 매우 순하게 읽힌다. 그는 ‘복음의 기쁨’이 현대 과학 기술이 증대시킨 ‘쾌락’과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지적하면서 그리스도 안에서 누리는 기쁨을 역설하였다(7항).

프란치스코는 교회의 사명이란 단순히 도덕적인 진리를 선포하는 것이 아니라 복음의 기쁨을 모든 사람에게 전하는 것이라고 하면서 그 맥락에서 가족의 붕괴, 불평등한 경제 체제, 소득의 불평등과 같은 것을 언급하고 그에 따른 소비주의, 물질주의, 향락주의, 비인간화 등을 다룬다(52-60항). 현대 자본주의의 비인간화된 체제 아래에서 교회의 구조가 복음의 기쁨으로 가득하게 되도록 변모하여야 하며, 밖을 향하여서 복음의 기쁨을 전하는 일을 하여야 한다고 그는 말한다. 이러한 주장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이후의 새로운 흐름인 ‘선교적 교회론’과 궤를 같이하는 내용이다.

프란치스코는 사목에 종사하는 사람들이 이기적인 태만과 영적 세속성에서 벗어나서 강론을 잘 준비하라고 권고한다. 강론은 주해와 장르가 다르기 때문에 학문적인 추구와 제시를 넘어서는 것이고, 사람을 죄와 압제에서 해방시키는 능력이라고 그는 지적한다. 그는 더 나아가서 그러한 강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이 전파되는 지역 교회가 핵심적인 위치를 차지하고 있다고 말한다. “개별 교회는 복음화의 첫째 주역입니다. 하나인 교회를 세상의 특정한 장소에서 구체적으로 드러내고, 그 안에서 ‘하나이고 거룩하고 보편되며 사도로부터 이어 오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참으로 내재하며 활동하기’ 때문입니다. 개별 교회는 특정한 장소에 구현되고, 그리스도께서 주신 구원의 모든 수단을 갖추고 있지만, 그 지역의 얼굴을 지닌 교회입니다”(30항) 하면서 복음이 선포되는 지역 교회의 중요성도 바르게 강조하였다. 이러한 부분을 읽을 때에는 개신교 신학자의 글을 읽는 것처럼 느껴지기도 할 정도이다.

그렇지만 프란치스코의 행보와 연설들, 그리고 그가 쓴 『복음의 기쁨』을 읽다 보면 ‘복음이란 무엇인가’를 다시 생각하게 하는 부분들이 있다.

첫째, 죽은 자를 위한 기도와 복음을 믿는 것에 대하여 진지하게 살펴볼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는 세월호 유족을 특별히 만나기도 하고 그가 집전하는 미사에 그들을 초청하기도 하였는데 그때에 죽은 자를 마리아에게 의탁하는 기도를 하였다.

우리는 특별히 “세월호” 침몰 사건으로 인하여 생명을 잃은 모든 이들과, 이 국가적인 대재난으로 인하여 여전히 고통 받고 있는 이들을 성모님께 의탁합니다. 주님께서 세상을 떠난 이들을 당신의 평화 안에 맞아 주시고, 울고 있는 이들을 위로해 주시며, 형제자매들을 도우려고 기꺼이 나선 이들을 계속 격려해 주시길 기도합니다. (2014년 8월 15일 대전 월드컵 경기장의 기도)

프란치스코의 세월호 희생자를 위한 기도는 그 내용의 진위(眞僞)를 떠나서 세월호 참사로 말미암아 큰 슬픔 속에 있었던 많은 사람들을 감성적으로 위로하는 효과가 있었다. 아마 로마 교회의 교리에 따르면 마리아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였기 때문에 그들에게는 특별히 다른 은혜의 여지가 있다고 생각할 것이다.

그렇지만 죽은 자를 위하여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은 동정의 관점에서 볼 것이 아니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나 성모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은 ‘오직 그리스도’와 ‘오직 은혜’의 교훈을 약화시키기 때문이다. 생전에 예수를 믿지 않고 죽은 사람이라도 마리아와 같은 성인이 기도하면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암시는 사랑이 많은 말처럼 들려도 사실은 그릇된 교훈이기 때문에 많은 사람에게 해를 끼치게 된다. 사람이 살아 있는 동안 그리스도를 믿지 않아도 사후에 구원을 얻을 수 있다는 식의 생각을 갖게 하기 때문이다. 죽은 자를 위한 기도는 로마 교회의 뿌리 깊은 폐단이었고, 연옥설이나 면벌부(indulgence)와 연결되어서 교회에 큰 해악을 끼쳐왔다.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은 면벌부로 말미암은 외적인 타락을 지적하지 않고 그 뿌리가 되는 주장, 곧 ‘죽은 자를 위한 기도’나 ‘죽은 자를 위한 미사’가 그릇되었다고 밝히 가르쳤다.

기도는 합당한 것을 위하여 드려야 하며, ……죽은 사람이나 사망에 이르는 죄를 범한 것으로 알려진 사람을 위하여 드려서는 안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21장 4절)

그러나 미사는 첫째, 그리스도가 산 자들이나 죽은 자들을 위해서

      사제들에 의해 지금도 매일 드려지지 않으면,

      그리스도의 고난에 의해서는 그들이 죄 사함을 받지 못한다고 가르칩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80문답)

둘째, 가난한 자를 돕고 압박을 당한 자의 슬픔에 동참하는 것은 좋은 일이다. 그렇지만 그러한 선행 자체가 강조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가리는 일이 된다. 참된 ‘복음의 기쁨’은 ‘오직 믿음’에서 나오는 것이다. ‘믿음이 없는 선행’은 오히려 죄악적이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16장 “선행에 관하여”에서도 동일한 진리를 고백한다.

우리의 최선의 행위라도 하나님에게서 사죄와 영생을 얻는 공로가 될 수 없는데, 이는 우리의 선행과 장차 올 영광 사이에 무한한 격차가 있기 때문이며 또한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무한한 간격이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우리의 선행으로써 하나님께 무엇을 보태 드릴 수도 없고 우리의 이전 죄에 대한 책임을 만족시킬 수도 없습니다.……선한 것이 있다면 그것은 성신에게서 나온 것이며, 우리가 행한 점에서는 더럽혀졌고, 심한 약점과 결핍으로 혼합되었기 때문에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견딜 수 없습니다. (4절)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도 동일한 정신으로 가르친다. 62문에서는 ‘우리의 선행은 왜 하나님 앞에서 의가 될 수 없으며 의의 한 부분이라도 될 수 없습니까?’ 하고 묻고 “우리가 이 세상에서 행한 최고의 행위라도 모두 불완전하며 죄로 오염되어 있습니다” 하고 답한다.

이처럼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은 일관되게 사람의 선행이 하나님 앞에서는 ‘악행’일 뿐이고 하나님의 준엄한 심판을 견딜 수 없다고 고백한다. 우리는 이러한 복음 진리를 프란치스코의 방문 기간에 들을 수 없었다.

셋째, 성경에서 가르치는 복음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고, 그 아들에 대한 것이지만(막 1:1; 롬 1:2-5), 『복음의 기쁨』은 그리스도와 더불어서 ‘마리아’가 나오고, 마리아를 ‘살아 있는 복음의 어머니’라고 부른다. 이 책은 마리아에게 기도하는 것으로 끝난다.

경청과 관상의 동정녀, 사랑의 어머니,

영원한 혼인 잔치의 신부, 교회의 지순한 모상이시여,

교회를 위하여 전구하시여

교회가 스스로 자기 안에 갇히지 않고

하느님 나라를 세우려는 열정으로 불타오르게 하소서.……

살아 있는 복음의 어머니,

작은 이들을 위한 기쁨의 샘이시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아멘, 알렐루야!

앞에서 살펴본 것처럼 마리아나 다른 성인의 중보 기도[전구]를 인정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훼손하는 것이고, 오직 그리스도께서 주시는 ‘참된 복음의 기쁨’과는 거리가 멀다.

6. 16세기의 고백과 우리의 고백 - 누구를 고백하는가?

우리는 프란치스코의 방한을 계기로 로마 교회에 대하여 조금 더 알게 되었고, 그것을 기회로 삼아서 종교개혁자들이 고백한 내용을 살펴보았다. 좋은 지도자가 없는 현실에서 ‘프란치스코 열풍’이 부는 것을 보았으나 우리는 그러한 현상에 대하여 직접적으로 반응하기보다는 종교개혁의 신앙고백서에서 관련 구절들을 살펴보았다. 조금 더 근본적인 문제들을 검토하려고 종교개혁의 선배들이 로마 교회의 그릇된 교훈에 대하여 고백한 내용들을 몇 가지로 나누어서 검토한 것이다.

지금까지 살펴본 주제들은 ‘누구를 어떻게 고백하느냐’로 묶을 수 있다. ‘오직 그리스도’를 고백하느냐, 아니면 ‘그리스도와 함께’ 마리아나 성인을 고백하느냐가 종교개혁과 로마 교회의 차이점이다. 종교개혁은 ‘오직 그리스도’ ‘오직 은혜’ ‘오직 믿음’ ‘오직 성경’ ‘오직 하나님께 영광’을 고백하였으나 로마 교회는 여기에 다른 것을 ‘덧붙여서’ 고백하였다. 그 점에서 16세기나 21세기나 로마 교회는 동일하다. 따라서 16세기의 신앙고백서의 내용은 21세기의 우리에게도 적실성이 있다. ‘오직’과 ‘더불어’의 차이는 사소한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매우 큰 차이를 나타낸다. 이 점을 ‘참된 개혁’과 ‘참된 지도자’로 나누어서 살펴보겠다.

첫째, 프란치스코는 ‘개혁가’라는 별칭을 얻었고 주교단이나 추기경단을 중심으로 화석화한 로마 교회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은 사람으로 기대된다. 사람들은 비유럽계로 교황의 자리에 오른 그가 로마 교회를 개혁할 것을 기대하고 있다. 실제로 프란치스코는 ‘교황’ 대신 ‘로마의 주교’라 불리기를 좋아하고, 교권이 소수의 직분자에게 집중되는 것보다도 말씀이 선포되는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선교의 일을 해야 한다고 바르게 말하였다. 그러나 ‘거기까지’(!)이다. 그는 교황 제도를 부정하거나 지역 교회를 중심으로 일하지도 않고, 교황의 무오성을 포기하거나 마리아의 무염 수태와 육체 승천, 죽은 성인이 산 자를 위하여 중보 기도하는 것 등을 포기하지 않고 있다. 그럼에도 그의 대중적인 인기 때문에 근본적인 교리에 대한 질문과 반성이 묻혀 버리고 있다.

이러한 때에 우리는 무엇이 참된 개혁인지를 생각해 보아야 한다. 16세기의 종교개혁은 그 당시 로마 교회의 부패에 대한 반응이 아니었고, 부패한 행위의 뿌리에 그릇된 교훈이 있음을 지적해 내면서 ‘오직 은혜’와 ‘오직 믿음’을 가르치고, ‘오직 성경’과 ‘오직 그리스도’를 통하여 그러한 은혜를 깨우칠 수 있음을 가르쳤다. 종교개혁은 부패한 사회에 대한 개혁이 아니라 근본적으로 ‘교리의 개혁’이고 ‘복음의 재발견’이었다. 오늘날에도 필요한 것은 외적 개혁이 아니라 바른 교훈과 그것을 잘 해명하여 가르치는 목사이다.

둘째, 참된 지도자에 대하여서도 생각할 필요가 있다. 프란치스코는 한국에서 가장 작은 차를 타고 싶다고 하여서 기아에서 나온 ‘쏘울’을 타고 공식 일정을 시작하였다. 공항에서 영접을 받은 후에 앞에 대기하고 있던 ‘쏘울’을 타고 떠나는 모습이 사람들에게 신선한 느낌을 주었다.

  프란치스코의 방한을 계기로 40여 권의 책이 출판되었는데 그 가운데는 “사람을 얻는 프란치스코 리더십의 12가지 비밀” “따뜻한 리더, 교황 프란치스코” 등과 같은 제목도 있었다. 참된 지도자를 바라는 열망을 충분히 공감하지만 우리는 16세기의 종교개혁을 다시 생각한다. 왜냐하면 참된 복음을 선포한 16세기의 개혁은 교황처럼 교회에서 뛰어난 지도자를 부각시킨 것이 아니라 목자장이 되신 그리스도를 높였고, 그리스도 아래에서 모든 직분자들이 독립되고 평등하다는 진리를 가르쳤으며 그 진리를 교회 안에서 구현하였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작은 교회에서 선포되든 큰 교회에서 선포되든 동등한 권위를 갖기 때문에, 작은 교회의 목사나 큰 교회의 목사나 모두 그 직분에서 동등하고 서로에 대하여 독립적이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31조에서는 “말씀의 사역자들은 그들이 어느 자리에 있든지 그 권위와 권한이 서로 동등한데, 왜냐하면 그들 모두가 유일하신 보편적 감독이시며 교회의 유일한 머리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종들이기 때문”이라고 분명히 고백하였다. 재세례파와 회중교회는 직분의 독립성을 바르게 주장하였으나, 직분자와 교회들이 모두 그리스도와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교회들이 상호간에 ‘연합’되어 있다는 진리에 대하여서는 바르게 제시하지 못하였다. 그렇지만 개혁교회에서는 직분의 동등성을 이야기하면서도 동시에 교회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연합된 점을 바르게 이야기하였고, 그 내용을 교회법으로도 잘 표현하였다.

소수의 목사에게 집중하지 않고 그리스도 아래에서 모든 직분자가 동등함을 가르치는 개혁교회에서는 교인들의 수준이 함께 높아진다. 따라서 목사가 바뀌어도 교회는 크게 요동함이 없이 전진하는 것이다. 소수의 지도자를 높이고 그를 따르면 사람들이 ‘맹신’(盲信)의 수준에서 벗어나기 힘들지만, 오직 그리스도만을 높이는 개혁교회에서는 ‘교인들’ 중에서 ‘장로’가 나왔고 그들이 목사와 직분적으로 동등하게 교회에서 봉사하였다. 종교개혁 당시에 많은 목사들이 순교를 당하고 핍박을 당하였어도 그러한 장로들이 있었기 때문에 교회는 흩어지지 않고 전진할 수 있었다. 말하자면 일반 신도들이 교황의 계획을 좌절시킨 것인데 이것을 서양 장기인 체스의 예를 들어서 ‘체스의 졸(卒)이 교황을 잡았다’ 하고 표현하기도 한다.

프란치스코의 열풍에 대한 반발로, 남미의 해방신학으로는 현대 사회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는 비판의 말도 나왔다. 그렇지만 우리는 그러한 현상 뒤에 있는 것을 보아야 한다. 좋은 지도자를 갈망하는 현실을 보고, 스스로 서지 못하였기 때문에 소수의 지도자에게 쏠리는 현상을 동정적으로 이해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종교개혁의 후예들답게 ‘교리를 개혁’하고 그것을 ‘직분적으로도’ 구현하면서 나아가야 한다. 주님께서 그분의 교회에 속한 사람들을 모두 왕과 같은 제사장으로 세워 주셨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따뜻한 교황’이나 ‘마리아’가 아니라 ‘참된 구주’이고 그분에 대한 바르고 풍부한 지식인 것이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