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 성인과 성지(聖址)

프란치스코는 8월 16일 광화문 광장에서 약 20만 명의 천주교인이 운집한 가운데서 한국의 순교자 124명을 복자(福者)로 추대하는 시복(諡福) 미사를 집전하였다. 로마교회에는 복자(福者) 혹은 성인(聖人)으로 선포된 이들이 있다. 가톨릭대사전에 따르면, 성인은 “생존 시에 영웅적인 덕행으로써 모든 사람의 모범이 되어 교회가 보편적인 교도권(敎道權)에 의해 성인으로 선포하는 사람들, 또는 ‘성인록’에 올라, 장엄한 선언에 의해서 성인으로 선포된 분들”이라고 한다. 성인이 되면 전 세계 사람들이 그 성인의 이름으로 세례명을 받을 수 있고 또한 그 성인을 통하여 바라는 바를 기도할 수 있다. 복자도 영웅적인 덕행에서 다른 사람에게 모범이 된다고 공적으로 선언된 자를 가리키지만 성인과는 달리 전 세계가 아니라 어떤 지역 교회나 단체에서만 공적으로 공경할 수 있다.

천주교가 한국에 처음 들어왔을 때에 제사 문제로 인한 큰 박해가 있었다. 신해박해(1791)부터 병인-무진박해(1866-68), 그리고 1888년의 순교자들까지 포함하면 거의 한 세기 동안 조상 제사를 거부한다는 이유로 많은 사람이 순교를 당하였다. 한국 천주교에서는 1857년부터 순교자들을 복자로 선언하기 위하여 조사를 시작하였고 1925년에 79명을 한국인 복자로 선언하였다. 그 후에 다른 순교자 24명이 복자로 선언되었으며, 한국 천주교 창설 200주년에 요한 바오로 2세가 방한하여 한국인 복자 103명을 성인으로 시성(諡聖)하였다. 그 직후부터 한국 천주교회는 다른 순교자들을 복자와 성인으로 선언하려는 노력을 기울이다가 이번에 프란치스코가 방한하여 124명의 순교자를 복자로 선언하는 시복식을 거행한 것이다.

성인이나 복자에 대하여 그렇게 큰 관심을 기울이는 것은 가톨릭의 신학과 관련이 있다. 가톨릭 교리를 따르면 신자들은 성인이나 복자에게 기도를 할 수가 있고, 그들 또한 이 땅에 있는 교회들을 위하여 기도할 수 있다. 프란치스코의 한국 방문과 시복식을 위한 공식 기도문은 이러한 말로 마친다.

한국 교회의 수호자이신 성모 마리아와 성 요셉,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한국의 모든 순교 성인들이여,

저희를 위하여 빌어 주소서.

로마교회에서는 성인뿐 아니라 성지(城址)도 강조한다. 보통 성지(聖地, terra sancta)는 성경의 배경이 된 이스라엘을 가리키지만 성지(城址, sanctuarium)는 성인이나 순교와 관련하여 교회사적으로 중요한 가치가 있다고 로마교회에서 결정한 곳을 지칭한다. 그들에게 성지가 중요한 이유는 그곳에 가서 순교자들의 신앙과 삶을 본받을 뿐 아니라 거기에 묻힌 성인이나 복자에게 기도하면 하나님께서 잘 들어주실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번 시복식을 광화문에서 시행한 것도 그 근처에 천주교 신자들이 옥고를 치른 형조와 우포도청, 의금부 등이 있었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순교지에서 시복식을 거행한 것이다. 또한 프란치스코는 124명 시복식을 하기 직전에도 한국의 성인 103명 중에 44명, 이번에 시복되는 124명 중에 27명이 순교했다고 하는 서소문 순교 성지를 찾아가서 참배하고 거기에서 기도한 후에 시복식을 집례하였다. 그는 짧은 기간 동안에 솔뫼 성지, 해미 성지 등을 방문하였을 뿐 아니라, 마지막 미사를 마친 후에는 명동 성당의 지하 묘역에 묻힌 순교자 묘지를 방문하여 기도하고 로마로 떠났다.

성인과 성지에 대한 로마교회의 주장은 화체설을 강조하는 것과 비슷한 점이 있다. 그들은 높이 되신 그리스도를 바라보며 믿음으로 그분께 나아가는 대신에 눈앞에서 성찬의 떡이 그리스도의 몸과 살로 바뀌는 것을 더 중요하게 가르친다. 눈에 보이는 것을 강조하는 이러한 경향은 성인을 높이거나 순교자의 일생과 관련이 있는 성지를 강조하는 것과 일맥상통한다. 신앙의 신비가 즉물적(卽物的)으로 되는 것이 그들의 중대한 약점인 것이다.

이러한 일반적인 평가와 함께 16세기 종교개혁의 관점에서 세 가지를 지적하려고 한다. 첫째는 ‘성인’이라는 개념이다. 어떤 신자가 주님을 신실히 섬긴다고 하여도 자기의 선행으로 자신을 구원할 수 없으며 또한 자기를 구원하고도 남은 공적이 있어서 다른 사람을 도울 수는 더더욱 없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14문에서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이 세상에 살 동안에는 이러한 순종을 겨우 시작했을 뿐입니다” 하고 고백한다. 감사한 마음으로 계명을 지키고 사는 사람, 곧 ‘거룩한 사람’(성인) 정도가 아니라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여전히 이처럼 부족한 상태임을 분명히 밝히는 것이다.

둘째로, 성지에서 성인에게 기도를 하는 것은 그리스도의 유일한 중보직을 부인하는 일이다. 천주교에서는 성인들의 모범과 중보 기도가 그리스도의 중보권을 돕는다고 하지만, 그러한 주장은 성경적인 근거가 없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30문에서는 이 점을 매우 분명히 가르친다.

30문: 그렇다면 자신의 구원과 복을

      소위 성인(聖人)에게서,

      혹은 자기 자신이나

      다른 데서 찾는 사람들도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믿는 것입니까?

  답: 아닙니다.

      그들은 유일한 구주이신 예수를

              말로는 자랑하지만

              행위로는 부인합니다.

      예수가 완전한 구주가 아니든지,

      아니면 참된 믿음으로 이 구주를 영접한 자들이

              그들의 구원에 필요한 모든 것을

              그에게서 찾든지,

      둘 중의 하나만 사실입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94문에서도 “내 영혼의 구원과 복이 매우 귀한 것이기 때문에 나는 온갖 우상 숭배, 마술과 점치는 일과 미신, 성인(聖人)이나 다른 피조물에게 기도하는 것을 피하고 멀리해야 합니다” 하고 답한다. 성인에게 기도하는 것은 우상숭배이고 영혼의 구원과 복을 포기하는 일이 된다고 하면서 엄히 경계한다(참조. 102문).

끝으로, 일부 신자를 성인으로 높이는 것은 그들이 높이려는 사람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일이고 그리스도께서 구원하시는 성도[성인] 전체를 낮추어 말하는 일이 된다. 네덜란드 신앙고백서 26조, “그리스도의 중보 직분에 관하여”에서는 “그러므로 성인(聖人)들 운운하며 그들이 한 번도 행하거나 요구한 적이 없는 일들을 행하면서 성인들을 영예롭게 하려는 관행들은 사실 그들을 불명예스럽게 만드는 일이고, 순전히 믿음이 없기 때문이었습니다” 하고 고백하였다. 또한 일부 신자를 높이는 일은 성도[성인] 전체를 낮추는 일이 된다. 앞에서 인용한 114문의 앞부분에서는 가장 거룩한 사람이라도 순종을 겨우 시작했을 뿐이라고 하였는데 이어서 ‘하나님께 돌아온 사람’은 “굳은 결심으로 하나님의 일부 계명만이 아니라 모든 계명에 따라 살기 시작합니다” 하고 덧붙여서 말하였다. 하나님의 말씀에 청종하는 성도가 바로 성인인 것이다.

4. 일곱 종교 지도자들과의 만남

프란치스코는 한국 방문의 마지막 날인 8월 19일 오전 9시에서 9시 40분 사이에 명동 성당에서 7대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다. 가톨릭을 포함하여서 불교, 기독교, 원불교, 유교, 천도교, 한국민족종교의 대표자를 만났다. 프란치스코는 한 사람씩 악수하면서 덕담을 나누고 아래와 같은 인사말을 하였다.

삶이라는 것은 길입니다. 혼자서는 갈 수 없는 길입니다.

다른 형제들과 함께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걸어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이 자리에 함께해 주신 여러 종교지도자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함께 걸어가는 겁니다.

하느님의 현존 안에서, 아브라함이 하느님께 향했던 길이기도 합니다.

형제 여러분, 우리는 형제들입니다.

형제들로 서로를 인정하고 함께 걸어가도록 하십시다.

감사드립니다.

마지막으로 저를 위해서 기도해 주십시오.

감사합니다. 대단히 감사합니다.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형제’라고 부르고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달라고 청하는 데에서 매우 부드럽고 겸손한 모습을 볼 수 있다. 그렇지만 그 기사를 찬찬히 읽어 보면 숨겨진 의도를 볼 수 있다. 프란치스코가 일곱 종교 지도자들을 만났는데 실제로 그가 만난 사람은 열두 명이다. 일곱 종교에는 개신교와 가톨릭도 포함되고, 또한 기독교계에서는 가톨릭의 대표를 포함하여 일곱 사람이 참석하였으므로 다섯 종교의 대표자 다섯 명과 기독교의 대표자들 일곱 명이 합하면 열두 명이 된다. 일곱 종교의 대표자와 기독교계의 일곱 대표, 그렇지만 합하면 열두 명이 되게 하였다. 그 모임은 일곱과 열둘의 숫자에 의미를 부여하면서 주선한 것임을 쉽게 알 수 있다. 그런데 여기에서 주목할 점은 프란치스코는 열둘 중의 하나가 아니라 열두 대표자를 만나는 사람이라는 사실이다. 교황이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대리한다는 것을 그러한 방식으로도 표시한 것이다. 그리고 그는 그 열두 명을 인도하여서 자기가 집례하는 미사로 데리고 갔다. 비록 다른 종교 지도자들을 ‘형제’라고 불렀지만 여전히 로마교회의 주도 아래에서 통일을 이루겠다는 의지가 거기에 담겨 있는 것이다.

프란치스코가 다른 종교 지도자를 ‘형제’라고 부른 일의 배경에는 1962-65년에 열린 제2차 바티칸 공의회가 있다. 1870년 제1차 바티칸 공의회가 무기한 휴회한 이후 거의 한 세기 동안 공의회가 열리지 않다가, 급변하는 세계의 상황에 대처하기 위하여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열렸다. 라틴어 미사 대신에 각국의 언어로 미사 드리는 것을 허용하고 평신도의 역할을 강조한 이 공의회는 여러 면에서 이전의 로마교회와는 다른 모습이 있는 것처럼 보였다. 회의를 마치면서 16개의 중요한 문서를 발표하였는데, 개신교도에 대하여서도 ‘형제’라고 부른 것과 관련된 문서는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3항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이다.

하느님의 이 하나이고 유일한 교회에서는 처음부터 이미 분열이 생겨났으며, 사도는 이 분열을 단죄하여야 한다고 엄중히 책망하였다. 후세기에는 더 많은 불화가 생겨, 적지 않은 공동체들이 가톨릭교회의 완전한 일치에서 갈라졌으며, 어떤 때에는 양쪽 사람들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그리고 지금 이러한 공동체들 안에서 태어나 그리스도를 믿게 된 사람들이 분열 죄로 비난받을 수는 없으며, 가톨릭교회는 그들을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끌어안는다.  (후략)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3항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

16세기에 열린 트렌트 공의회에서는 “이신칭의를 가르치는 자는 저주를 받는다” 하고 선언하였는데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어떤 때에는 양쪽 사람들의 잘못이 없지 않았다” 하고 말하면서 로마교회의 잘못도 있었음을 인정하는 표현을 하였다.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이라는 표현이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문서에서 자주 등장하는데 이것은 개신교뿐 아니라 그 이전에 나뉜 동방 정교회도 포함하여서 사용하는 표현이다. 그들은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회에도 구원을 받은 사람이 있음을 지적하면서 ‘형제적 존경과 사랑’으로 끌어안는다고 하였다. 이러한 태도는 이전과 매우 달라진 것처럼 보인다.

그렇지만 위에 인용한 글은 3항,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의 첫 문단에 속한 것이고 마지막 문단은 다음과 같다.

그러나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은 개인이든 그들의 공동체이든 교회이든 예수 그리스도께서 모든 이가 한 몸을 이루고 새 생명으로 다시 태어나 함께 살아가도록 그들에게 베푸시고자 하신 저 일치, 성경과 교회의 거룩한 전통이 천명한 저 일치를 누리지 못하고 있다.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기 때문이다. 주님께서는 베드로가 앞장서는 한 사도단에 신약의 모든 보화를 맡기셨다고 우리는 믿는다. (후략) (『일치 운동에 관한 교령 (일치의 재건)』, 3항 “가톨릭교회와 갈라진 형제들의 관계”)

동방 정교회와 개신교회를 ‘갈라진 형제’라고 부르지만 “구원의 보편적 수단인, 그리스도의 가톨릭교회를 통해서만 구원 수단이 완전한 충만함에 이를 수” 있다고 하면서 자기들에게 돌아오라고 한다. 교회 분열에서 자기들의 책임을 어느 정도 인정하고 개신교도들을 ‘형제’라고 부르면서도, ‘우리에게서 갈라진 형제들’은 자기들에게 돌아와야 한다고 주장한다. 주님의 진리를 중심으로 통일되는 길을 찾는 대신에 소위 베드로의 후계자인 자기들에게 신약의 보화를 맡기셨으므로 로마교회로 돌아와야 한다고 하는 점에서는 16세기와 근본적인 차이점이 없다.

또한 제2차 바티칸 공의회에서는 다른 종교를 신봉하는 사람들도 형제라고 불렀다.

만일 우리가 하느님의 모습으로 창조된 사람들 가운데서 한 사람이라도 형제로 대하기를 거부한다면 우리는 결코 하느님을 모든 사람의 아버지라고 부를 수 없다. 하느님 아버지를 대하는 인간의 태도와 이웃 형제들을 대하는 인간의 태도는 서로 깊이 연결되어 있다. 성경은 이렇게 말한다. “사랑하지 않는 사람은 하느님을 알지 못한다”(1요한 4,8). (『비그리스도교와 교회의 관계에 대한 선언 (우리 시대)』, 5항, “보편적 형제애”)

다른 종교인을 형제라고 부르는 데에서 더 나아가서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음을 이야기하였다.

사실, 자기 탓 없이 그리스도의 복음과 그분의 교회를 모르지만 진실한 마음으로 하느님을 찾고 양심의 명령을 통하여 알게 된 하느님의 뜻을 은총의 영향 아래에서 실천하려고 노력하는 사람은 영원한 구원을 얻을 수 있다. 또한 하느님의 섭리는 자기 탓 없이 아직 하느님을 분명하게 알지 못하지만 하느님의 은총으로 바른 생활을 하려고 노력하는 사람들에게는 구원에 필요한 도움을 거절하지 않으신다. 사실 그들이 지닌 좋은 것, 참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교회는 복음의 준비로 여기며, 모든 사람이 마침내 생명을 얻도록 빛을 비추시는 분께서 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후략) (『교회에 관한 교의 헌장 (인류의 빛)』, 16항, “교회와 비그리스도인”)

물론 위에서 인용한 문단의 뒷부분에서 “그러나 사람들은 흔히 악마에게 속아 허황한 생각에 빠져 하느님의 진리를 거짓과 뒤바꾸고 창조주보다 피조물을 더 섬기며(로마 1,21.25 참조), 또는 이 세상에서 하느님 없이 살다가 죽어 가며 극도의 절망에 놓인다” 하는 말을 덧붙이기는 하지만, 다른 종교인을 ‘형제’라고 부르거나 그들이 양심의 소리를 따라서 행하면 구원을 받을 수 있다고 말하는 것은 다원주의적인 견해를 받아들인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여기에서 생각할 점들이 있다. 첫째는 ‘보편 교회’와 관련한 것이다. 로마교회에서 개신교를 향하여 ‘돌아오라’고 이야기한 것은 제2차 바티칸 공의회 때에 처음 하였던 말이 아니었다. 16세기부터 그들은 늘 같은 주장을 반복하여 왔다. 우리가 잘 아는 대로 사돌레토 추기경이 제네바 시민에게 ‘돌아오라’ 하는 편지를 보냈고, 당시 스트라스부르에 있던 칼빈이 그에 답하여 “사돌레토에게 보내는 편지”를 보냈다. 그 논쟁의 핵심은 ‘보편적 교회’에 대한 것이었다. 사돌레토는 1500년의 전통이 있는 교회가 30년 전통의 개신교보다 더 정통성이 있다고 하면서 베드로를 계승한 로마교회로 돌아오라고 하였고, 그에 맞서 칼빈은 교회의 전통보다 더 중요한 것은 성경의 교훈이고 성신께서 그 말씀을 쓰셔서 깨우치시는 곳이 진정한 보편적 교회라고 답하였다.

그러한 전통에 서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4문은 거룩한 보편적 교회의 핵심은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신으로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심에 있다고 고백하였다. 로마교회처럼 제도적인 연속성에서 찾는 것이 아니라, 가르치는 내용과 성신의 활동이 있는 곳을 보편적 교회로 고백한 것이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4문의 마지막 문장은 인용할 필요가 있다. “나도 지금 이 교회의 살아 있는 지체이며 영원히 그러할 것을 믿습니다” 하는 말로 끝나는데, 우리의 선배들은 보편적 교회를 추상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이 아니라 자기의 실존과 관련된 문제로 고백한 것이다. 이것은 사도권의 계승과 전통을 이야기하되 추상적이고 정치적으로 논하는 로마교회와 중요하게 다른 점이다.

둘째, 16세기의 선조들은 그리스도 이외에 다른 구원자가 없다는 점도 분명히 선언하였다. 로마교회에서 다른 종교에 구원의 가능성이 있는 것처럼 말하는 것도 새로운 일은 아니다. 중세 스콜라 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철학에 근거하여 신학을 구성하면서 ‘자연과 은총’으로 나누어서 설명하였다. 이러한 구분에 근거하여서 그들은 ‘자연 신학’을 전개하였다. 즉 그리스도 없이도 하나님을 알 수 있는 가능성을 열어 놓은 것이다. 물론 중세의 이원론이 지금의 종교다원주의와는 다르지만 자연 신학의 경향이 있었던 것도 사실이다. 그러한 때에도 우리의 선배들은 “그러면 아담 안에서 모든 사람이 멸망한 것처럼 그리스도를 통하여 모든 사람이 구원을 받습니까?” 하는 질문에 대하여 “아닙니다. 참된 믿음으로 그리스도에게 연합되어 그의 모든 은덕(恩德)을 받아들이는 사람들만 구원을 받습니다” 하고 답하였다(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0문. 참조 29문).

전도서 기자가 말한 것처럼 “해 아래 새것이 없다.” 로마교회가 제2차 바티칸 공의회를 지나면서 새 옷을 입고 나아왔지만 동일한 오류를 조금 더 정교하게 만들어서 나온 것에 지나지 않는다. 그리스도를 친숙히 알고 그분과 연합되어 사는 성도는 ‘거룩한 보편적 교회’와 관련한 그들의 그릇된 주장에 대하여서, 그리고 ‘양심이나 선행에 의한 구원’을 주장하는 것에 대하여서도 제대로 파악하고 나아갈 수 있다.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는 그리스도의 통치를 받는 우리가 바로 ‘거룩한 보편적 교회’에 속한 자들이고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을 증언하는 자들이다.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