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의 템스 강변에는 유명한 건물들이 여럿 있는데 영국 국회의사당도 그중의 하나입니다. 국회의사당의 뒤편으로는 비슷한 양식의 다른 건물이 있는데, 그것이 바로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입니다. 두 건물은 작은 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나뉘어 있지만 같은 톤의 대리석으로 지어졌기 때문에 멀리에서 보면 마치 같은 건물인 듯이 보이기도 합니다. 혹시는 국회의사당이 훨씬 크기 때문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이 마치 의사당의 부속 건물처럼 보이기도 합니다.

그렇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국회 소속이 아니라 왕실에 속한 교회입니다. 1066년 이래로 두어 번의 작은 예외를 제외하고는 왕의 즉위식이 이곳에서 열렸을 뿐 아니라 1560년 엘리자베스 1세에게 특허장(charter)을 받은 이후부터는 명실상부하게 왕실 직속 예배당으로서 왕실의 주요 행사가 열리는 곳이 되었습니다. 최근에는 다이애나와 엘리자베스 2세 모후의 장례식(1997, 2002)과 윌리엄 왕세자의 혼인식이 이곳에서 열렸습니다(2011). 그러한 행사들이 텔레비전으로 방영된 덕택에 이곳은 많은 이들에게 관광 명소가 되었고, 17파운드(약 30,000원)의 입장료를 내고 그 사원을 관람하려는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원래 베네딕트 수도원에 속한 건물이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에서 ‘민스터’(minster)는 수도원에 속한 교회를 지칭하는 말이었는데, 웨스트민스터라는 이름은 이스트민스터(Eastminster), 곧 동부에 있는 다른 수도원 교회[성 바울 교회]와 구분하려고 붙인 이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건립에 대하여서는 여러 가지 전설적인 이야기가 있지만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발간한 책자에 의하면 960년에 12명의 수도사들이 모여서 생활한 것이 기원이 되었고, 1065년 고백왕 에드워드(Edward the Confessor, 1005-1066)에 의하여 축성(祝聖)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여러 차례의 중단과 개축, 그리고 증축을 거쳐서 1745년에 이르러 오늘날의 형태가 완성되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수도원 전통을 오늘까지도 유지하여 지금도 하루에 네 번 기도나 찬송을 드리고 있고, 주일에는 여섯 번 집회로 모이고 있습니다. 그뿐만 아니라 매 시간마다 1분씩 기도하는 전통도 있어서 관광객에게도 참여할 것을 권합니다.

박물관과 무덤 사이에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대한 우리의 관심은 다른 데에 있었습니다. 그 사원에서 작성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의 흔적을 찾아보려고 우리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찾았습니다. 관광객들은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북쪽 문으로 입장합니다. 북문을 들어서면 실물보다 큰 입상(立像)들이 입장객을 맞이하는데, 이름들을 보니까 디즈레일리(B. Disraeli, 1804-81), 글래드스턴(W. Gladstone, 1809-98) 등과 같이 역사책에서 이름으로만 알았던 그러한 인물들이었습니다.

‘정치가의 회랑’을 지나서 서문으로 향하면 회랑의 처음 부분에는 교회 음악에 기여한 사람들의 조상(彫像)이 좌우에 나란히 서 있고, 바닥에는 그들의 활동 연대가 새겨져 있습니다. 이 부분은 ‘음악 박물관’이라고 할 만합니다.

그다음으로는 ‘과학 섹션’이 이어집니다. 근대 과학계에 영향을 준 사람들의 조상이 나오는데, 찰스 다윈과 아이작 뉴턴의 조상이 그 중심에 있습니다. 아이작 뉴턴은 나름대로 기독교 신앙을 고백한 사람이었지만, 진화론을 주장한 찰스 다윈의 유해가 여기에 묻혀 있습니다. 지금 예배당에 와 있는지, 아니면 박물관에 와 있는지를 혼동하게 하는 대목입니다.

회랑을 따라 서쪽 문으로 나아가면 1차 세계대전에서 전사한 무명용사를 기념하는 기념비가 바닥에 있고, 회랑의 남쪽에는 영국의 유명한 시인과 극작가를 기념하는 부분이 있습니다. 『캔터베리 이야기』로 유명한 초서(Geoffrey Chaucer, 1342? -1400)가 여기에 묻혔고, 셰익스피어는 그의 유해를 이곳으로 옮겨올 수 없어서 대신 기념비만 세워 두었습니다.

해설자의 인도를 받아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돌아보다 보면 마치 역사박물관에 와서 영국 역사를 공부하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그런데 여기에서 조금 더 주목할 부분은 사원의 중앙과 뒷부분에 있는 무덤들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평면도를 보면 십자가 형태로 되어 있습니다. 십자가의 머리 부분에 고백자 에드워드의 유해가 안치되어 있습니다. 성체 성사를 거행하는 중앙 제단의 뒤에 에드워드 채플이 있는데 10여 개의 계단을 통하여서 올라갈 수 있고, 채플의 중앙에 에드워드의 시신이 안치되어 있습니다. 보석으로 장식된 철제 관에 시신이 있고 그 위는 목재로 장식되어 있습니다. 에드워드의 관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심에 있는 셈인데 이것은 우연히 된 것이 아닙니다. 성인(聖人)으로 추대된 그의 무덤에 와서 기도하면 효험이 있다고 생각하여서 헨리 3세가 1269년에 이 무덤을 중심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개축하였던 것입니다. 지금도 순례자들이 계속하여 찾아와서 이 무덤 앞에서 성인의 이름으로 매일 기도를 하고, 성체 성사(聖體聖事)를 거행하기도 합니다.

그리스도의 교회라면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 그분의 말씀과 성신으로 자기 교회를 다스리는 것이 중앙에 있어야 할 것인데 여기에서는 에드워드의 무덤이 그 자리를 대신 차지하고 있습니다. 부활하시고 승천하신 주님 대신에 성인의 공덕에 의지하여 기도하는 미신적인 일이 이곳에서 행하여진다는 것을 생각하니 웨스트민스터 사원에 대하여 아름답게 생각하였던 마음이 급격하게 바뀌기 시작하였습니다.

에드워드 채플에서 주위를 둘러보면 채플이라고 불리는 작은 방들이 있습니다. 채플은 원래 개인적으로 예배를 드리는 작은 방을 가리켰는데, 16세기 종교개혁의 영향으로 개인적인 예배가 약화되자 채플들은 많은 사람의 관으로 채워졌습니다. 채플들에 들어가서 보면 매우 화려하고 웅장한 관들이 있습니다. 해설자는 그 사람들의 이름과 함께 영국 역사를 이야기하지만, 이제는 역사박물관에서 공동묘지에 들어온 것 같다는 느낌이 들 정도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여기저기에 안치된 시신이 3,000여 구나 된다고 하니까¹⁾ 공동묘지라는 말도 지나친 표현은 아닐 것입니다.

성인의 무덤을 중심으로 예배당을 짓는 것은 중세에 와서 비로소 시작된 일은 아닙니다. 로마 시대에 신자들은 박해를 피하여 지하 공동묘지인 카타콤에서 모였는데, 그것은 핍박 때문만은 아니었습니다. 순교자들의 무덤 곁에서 예배를 드리면 하나님께서 그들의 공로를 보시고 자신들의 예배를 더 잘 받아 주실 것이라는 생각에서 그렇게 하였던 것입니다. 고대 교회의 부족한 점이 결국 중세에 이르러서는 성인(聖人)의 남은 공적으로 다른 사람들이 구원을 얻는다는 주장을 교리로 선언하는 데에까지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중보직을 실질적으로 부인하는 그릇된 주장인데도, 그들은 그릇된 종교적 열심으로 말미암아 막대한 돈을 들여서 기중기도 없던 시대에 그렇게 화려한 예배당을 짓기도 하였던 것입니다.

헨리 7세의 채플 (레이디 채플)

고백왕 에드워드의 채플에서 내려와서 주위의 다른 채플들을 지나 동쪽으로 올라가면 계단 위로 새로운 채플이 환하게 나타납니다. 원래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에게 봉헌하면서 지은 채플이어서 ‘레이디 채플’(The Lady Chapel)이라고 불렸는데, 튜더 왕조를 시작한 헨리 7세(1457-1509)가 막대한 돈을 투자하여 개축하였기 때문에 ‘헨리 7세의 채플’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본 건물에 이어서 지은 이 건물은 고딕 양식으로 건축되었고 장중함과 아름다움을 한껏 뽐냅니다. 이 채플은 천장에 돌로 장식한 아름다운 문양이 있고, 스테인드글라스와 아름다운 조화를 이루고 있습니다.

1503년에 개축이 시작되었고 1519년에 완공된 이 채플에는 헨리 7세와 그의 아내가 묻혀 있습니다. 헨리 7세의 부부관은 유명한 이탈리아 조각가가 청동으로 만든 것으로 매우 사실적으로 묘사되어 있습니다. 손을 모으고 있는 모습은 부활을 기대하며 기도하는 것을 상징한다고 합니다.

이 채플에는 피의 여왕 메리(1553-58)와 엘리자베스 1세(1558-1603)도 나란히 묻혀 있는데, 그들의 비문 아래에는 “자매인 엘리자베스와 메리, 우리는 왕좌와 무덤에서 파트너였고, 부활을 소망하면서 여기에 잠들다” 하는 말이 새겨져 있습니다. 헨리 8세의 이복 누이로서 많은 갈등이 있었던 그들이 부활을 소망하면서 나란히 묻혀 있다는 구절은 여러 가지 감회를 자아내게 하는 말이었지만, 예배당 건물 안에 시신이 있는 것은 부활의 복음을 전하는 교회에는 매우 어울리지 않는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레이디 채플에는 눈에 띄는 대리석 판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올리버 크롬웰이 여기에 묻힌 적이 있었음을 알리는 석판입니다. 왕들이 묻힌 이곳에 크롬웰도 묻혔었는데 왕정복고(王政復古) 후에 왕당파는 그의 시신을 여기에서 빼어 내어서 참수형을 행하고 머리를 장대에 달아두기도 하였다고 합니다. 아름다운 건물에 어울리지 않는 이야기입니다.

헨리 7세의 채플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헨리 7세의 채플은 10여 개의 계단을 통하여 올라가야 하고, 또한 건물의 중앙에는 고백왕 에드워드의 채플이 있기 때문에 그 장소는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다른 부분과는 자연스럽게 격리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이 방에서 개별적인 모임들이 자주 열렸는데,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예배 모범과 장로교 교회 정치를 작성할 임무를 부여받은 151명의 위원들이 처음 모인 곳이기도 합니다.

웨스트민스터 회의는 흔히 생각하듯이 교회적인 모임이나 성총회(聖總會)가 아니었고, 영국 성공회의 수장인 찰스 1세가 의회와 전쟁하는 상황에서 교회적인 현안을 다루려고 의회가 소집한 ‘의회 위원회’였습니다. 잉글랜드 의회는 각 지역별로 2명의 위원을 추천하도록 하여서 121명을 소집하였고, 거기에다 의회에서 임명한 30명을 더하여서 위원회의 위원은 총 151명이 되었습니다. 그들은 1643년 7월 1일에 처음 소집되었는데 69명이 참석하였습니다.

그 위원회에 부여된 첫째 임무는 영국 성공회의 신앙고백서인 ‘39개조’를 수정하는 일이었는데, 그 과정에서 잉글랜드 의회가 스코틀랜드 군대의 도움이 필요하여서 「엄숙 동맹과 언약」을 체결하고(1643년 9월 25일) 그 위원회에 새로운 임무를 부여하였습니다. 의회는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 아일랜드의 세 나라 사이에 신앙적인 통일성을 이루려고 새로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도록 하였고, 후에 스코틀랜드 위원 4명이 도착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하는 데로 한 걸음 더 나아갔습니다.

헨리 7세의 채플에서 모인 위원회는 40명을 개회 정족수로 정하고 의사를 진행하였는데 평균 참석 인원은 60-65명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들을 작성하고 새로운 목회자 임명 등의 임무를 수행하였습니다. 그 위원회의 소집 권한은 의회에 있었고, 의회가 개회 날짜와 안건을 공고하면 그들은 의회가 정한 그날에 모여서 그 안건을 다루었습니다.

레이디 채플은 아름답고 아침 햇볕이 잘 드는 곳이었지만, 날씨가 추워지면서 그곳에서 모이는 것이 힘들어졌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벽난로가 있는 예루살렘 체임버로 회의 장소를 옮겼습니다.

예루살렘 체임버

헨리 7세의 채플에서 나와서 예루살렘 체임버로 가려면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서쪽으로 가야 합니다. 사원의 서쪽에는 수도원 건물이 있는데, 거기에는 사원과 바로 연결된 방들이 있습니다. 그 방들은 그 당시 풍습을 따라서 사마리아, 여리고, 예루살렘이라는 이름을 각각 갖고 있습니다. 수도원 건물의 정면을 바라보면서 오른쪽에 있는 작은 문을 열고 들어가면 ‘사마리아 체임버’라고 불리는 작은 방이 나오고, 거기에서 오른쪽으로 난 문을 열고 들어가면 ‘여리고 체임버’라고 불리는 방이 나옵니다. 여리고 방에는 정원을 향하여 창문이 나 있는데 그 창문을 통하여 정원의 나무들을 볼 수 있고, 좌우에 있는 수도원 건물도 볼 수 있습니다.

여리고 체임버를 지나면 예루살렘 체임버로 연결됩니다. 예루살렘 체임버는 리처드 2세(1367-99)가 기존 건물에 잇대어서 지은 방입니다. 지금은 일반에게는 공개되지 않는데, 2010년과 2012년에 독립개신교회 신학교를 방문한 로버트 레탐(R. Letham) 교수의 주선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원장(Dean)인 존 홀(John Hall) 박사의 안내를 받아서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도 안내하였던 존 홀 박사는 이 방에서 1611년에 킹 제임스 성경을 위한 작업이 진행되었다는 것을 이야기하고, 이 작은 방에 얽힌 여러 가지 비사(祕史)를 들려주었습니다.

예루살렘 체임버의 천장에는 이곳을 지은 리차드 2세의 이니셜인 ‘알(R)’자가 새겨져 있습니다. 그는 사촌인 헨리 4세(1367-1413)에게 왕위를 빼앗기고 죽었는데, 헨리 4세 역시 바로 이 방에서 죽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죽게 한 리처드 2세의 이니셜 ‘알(R)’을 보면서 임종한 것입니다. 이 이야기는 셰익스피어 사극(史劇), 『헨리 4세』를 통해 널리 알려졌습니다. 그 이야기를 따르면, 예루살렘에서 죽으리라는 신탁(神託)을 받은 헨리 4세는 십자군 전쟁에 참가하려고 하기 전에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앙에 있는 고백왕 에드워드의 무덤 앞에서 기도를 하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그가 기도하던 중에 갑작스럽게 쓰러져서 예루살렘 체임버에 눕혔습니다. 의식이 깨어난 그가 자신이 지금 있는 데가 어디냐고 묻자 신하들이 ‘예루살렘’이라고 답하였습니다. 그는 그 방에서 임종하였는데 예루살렘에서 죽으리라는 예언이 그러한 식으로 이루어졌다는 것입니다. 다소 싱겁고 미신적인 이야기입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식의 생각이 사람들의 마음을 오래 붙잡았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실입니다.

그렇지만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의 자취를 찾은 방문자는 그 방 중간에 있는 벽난로에 주목합니다. 왜냐하면 1643년 10월 초순에 웨스트민스터 회의의 신학자와 목사들은 날씨가 추워지자 아름다운 헨리 7세의 채플에서 모이는 대신에 이곳에서 모이기 시작하였기 때문입니다. 벽난로 위에는 나무 장식이 있고, 그 장식에는 찰스 1세와 그 아내 앙리에타 마리아(Henrietta Maria) 두상(頭像)이 새겨져 있습니다. 찰스 1세와 혼인하러 온 앙리에타의 프랑스 사제와 사절단이 이 방에 묵었기 때문에 그들을 위하여 그러한 장식을 만들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당시 청교도들이 찰스 1세를 반대한 이유 가운데 하나가 바로 그들이었습니다. 왕비를 따라서 프랑스에서 온 신부들이 로마 가톨릭의 예전을 따라서 혼인식을 거행하였는데, 이것이 청교도의 눈에는 로마 가톨릭으로 회귀하는 것으로 보였습니다. 이러한 역사가 있는 그 방에서 웨스트민스터 목사와 신학자들이 모여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작성한 것입니다. 또 다른 역사의 아이러니를 보는 것 같았습니다.

예루살렘 체임버는 그렇게 큰 방이 아니고 대체로 60명 정도가 들어가면 가득 찰 정도의 규모입니다. 이 방의 외관은 크게 내세울 것이 없습니다. 예루살렘 체임버에서 모인 당시 회의의 광경을 19세기의 화가는 크고 활기찬 토론 장면으로 그려 넣었지만, 그 그림에는 상상의 요소가 있습니다. 벽난로와 창문 사이의 공간은 대여섯 명만이 앉을 수 있는 정도인데 그 그림에서는 훨씬 더 많은 사람이 앉아 있는 것으로 그리고 있습니다. 우리는 예루살렘 체임버가 작은 방이었다는 것과 그들이 의회의 지휘를 받았다는 사실을 약화시키거나 축소시켜서 말할 필요가 없을 것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예루살렘 체임버의 역사에서 이처럼 여러 가지 역설적(逆說的)인 일들이 있었듯이,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와 관련해서도 그러한 점이 있습니다.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가 신앙고백서와 예배 모범, 교회 정치에서 통일을 기하려고 모였지만, 그것이 오늘날 잉글랜드에서는 별로 효과를 나타내지 못하고 있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맞은편에는 거대한 감리교회가 있고, 영국에서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택하는 장로교회는 30개가 넘지 않으며, 그 교회들조차도 교세가 미약합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 작성된 신앙고백서가 꽃을 피운 곳은 스코틀랜드와 아일랜드이고, 그 후손들이 미국으로 건너가서 그 신앙을 따라서 교회와 사회를 조직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그리고 대체로 그들을 통하여 여러 나라에 장로교 신앙이 전파되었습니다. 이러한 점에서는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를 이어받은 나라는 잉글랜드가 아니라 북쪽에 있는 스코틀랜드나 아일랜드라고 하겠습니다.

역사에서 볼 수 있는 이러한 아이러니는 오늘도 반복됩니다. 그것은 우연히 그렇게 되는 것이 아니라 먼저 된 자가 나중 되고 나중 된 자가 먼저 되게 하는 하나님 나라의 법칙 때문에 그렇습니다. 예루살렘 체임버에서 역사의 아이러니를 생각하면서 우리는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봅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의 중심에는 고백왕 에드워드의 시신이 있고 그 주위에도 시신들이 많이 있습니다. 신자뿐 아니라 불신자의 무덤도 함께 있습니다. 우리는 이 사실을 애써 외면하면서 웨스트민스터 사원을 신앙고백서의 산실로서 성지(聖地)처럼 생각할 필요가 없습니다. 또한 그에 대한 반작용으로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공동묘지이다’ 하면서 비판하는 말을 할 필요도 없습니다.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그때나 지금이나 무덤으로 가득하지만, 더 중요한 것은 의회나 성공회의 성직자들, 그리고 심지어 웨스트민스터 회의에 참석한 목사나 신학자들보다 더 능력이 있는 분은 하나님이시라는 사실입니다. 많은 부족과 연약과 결핍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께서는 그들을 사용하셔서 아름다운 신앙고백서를 작성하게 하셨습니다. 웨스트민스터의 위원회로 모인 목사와 신학자들이 전쟁의 소식이 들려오는 가운데서도 겸손히 주님의 말씀을 의지하여서 신앙고백서를 작성하였고 그 고백서가 주님의 손에 들려서 널리 사용되었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예루살렘 체임버를 거쳐 갔습니다. 이 방에서는 웨스트민스터 표준 문서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고, 웨스트민스터 사원에서도 개혁자들의 흔적을 찾아볼 수 없습니다. 그렇지만 주님을 믿고 신앙고백의 의미를 바르게 아는 사람은 그 방을 들여다보지 않아도 그 방에서 있었던 일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사람입니다. 그들은 역사의 주인이신 주님께서 16세기 중반의 짧은 기간 동안에 신실한 자들을 사용하셔서 선대(先代)의 교회의 신앙고백을 이어받고 후대(後代)의 교회에 큰 도움이 될 신앙고백서와 대소요리문답, 그리고 예배 모범과 장로교 교회 정치를 그 방에서 작성하도록 하신 것을 믿고, 오늘날에도 이교적인 요소가 가득한 이 사회에서 참된 고백을 하면서 나아갑니다. 우리가 바로 그러한 고백을 하면서 살아가는 자들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