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 5월 12일부터 6월 8일까지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의 목사이자 은퇴 교수인 마리스(J. W. Maris) 교수가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초청으로 방문하였다.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을 표방하는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에서는 우리의 신학적 방향과 수준을 자매 교회들에 못지않게 하려고 교수와 학생이 함께 노력하고 있다. 동시에 이웃 교회에 주신 은혜를 함께 누릴 방안을 모색하면서 자매 교회인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 대외 섭외부에 신학교를 시작한 사실을 알리고, 그 교회의 은퇴 교수인 마리스 목사를 단기간이라도 보내어 주기를 청하였다. 네덜란드에 있는 자매 교회는 우리의 뜻을 마리스 교수에게 전달하였고, 마리스 교수가 우리의 초청을 교회적인 일로 받아들여서 이번 강좌가 성사되었다.
마리스 목사는 1967년에 목사로 임직되어 25년간 목회를 한 후에 15년 동안 그 교회의 신학교인 아펠도른 신학대학에서 교의학을 가르치다가 2008년에 정년퇴직하였다. 이번 방문에서는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에서 자신이 쓴 8편의 논문을 읽고 학생들과 토론하였으며, 그 주제에 대하여 학생들이 영어로 발표한 보고서를 평가하였다. 또한 자매 교회의 목사로서 방문한 마리스 교수는 독립개신교회에 속한 네 교회들을 방문하여서, 두 가지 주제로 대중 강연을 하고 세 가지 본문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였다. 그 기간 동안에 여러 가지 주제를 다루었지만,1) 이 글에서는 "그리스도와 교회"에 대한 강의들만을 간략히 언급하겠다.
그리스도와 교회
‘어머니의 사명’이라는 글을 발표하였는데 이것은 마리스 목사의 교수 은퇴 강연이다. 이 글에서 마리스 교수는 현대에 들어와서 새로운 형식으로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려고 하는 움직임이 있다는 것에 대하여 언급하면서, 어떻게 하면 성경적이고 신앙고백적으로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를 논의하였다. 먼저 교회를 어머니라고 말한 시편 87편과 갈라디아서 4장을 주해하면서, 본문에서 교회를 "위에 있는 어머니"라고 표현하였는데 이것은 교회의 본질과 사명을 나타낸다고하였다. 교회는 이 땅에 있지만, 교회의 정체성은 이 땅에 있는 교회 자체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달려 있다. 특히 시편 87편을 인용하면서 교회를 어머니로 표상(表象)한 것은 교회의 사명, 곧 복음을 전하여서 하나님의 백성을 불러 모으시는 것과 연결됨을 밝혔다. 교회의 본질적인 사명을 성경에서는 어머니라는 표상을 써서 가르친 것이다. 이러한 성경적인 교훈에 근거하여서 키프리아누스는 "교회 밖에는 구원이 없다"고 하였고, 칼빈도 "하나님을 아버지로 모신 사람은 교회를 어머니로 모신다"고 하였다. 요컨대 교회를 어머니로 말한 것의 의미를 잘 알아야 선교와 양육의 직분을 치우침이 없이 바르게 감당할 수 있음을 제시하였다.
또 다른 대중 강연에서는 ‘참된 교회 통일과 거짓 교회 통일’이라는 주제를 다루었다. 참된 교회의 통일은 사도적인 복음을 간직하고 그것을 교회의 신앙고백으로 고백하는 데에서 이루어진다. 그러나 계몽주의 이후에 신앙과 신조에 대한 태도가 달라지기 시작하였다. 성경 말씀이 계시하는 내용보다도 개인의 종교적 체험을 강조하고, 신조에 대하여 말하기는 하여도 그 내용보다는 역사적인 과정만을 연구하는 분위기로 넘어갔다. 이렇게 성경과 신조의 내용을 떠나서 개인적인 감정이나 역사적인 연구만을 추구하기 때문에 기독교 신앙은 상대적이 되어서 이미 다른 주장을 받아들일 준비가 되어 있었고 이러한 역사적 배경에서 20세기에 세계 교회 협의회(WCC)와 같은 단체가 생겨나게 되었다는 것을 논증하였다. 신앙고백에 대한 태도의 변화를 역사적으로 조망하면서 종교 다원주의의 발생과 수용을 제시한 이 강의는 청중의 눈을 교회사적으로 열어 주었다. WCC의 주장을 "용공"(容共)이라는 정치적인 구호로 비판하는데 그치고 말았던 한국 교회의 현실에서는 매우 신선한 강의였다.
강의 후에 질의응답이 뒤따랐다. WCC 총회가 2013년에 한국에서 개최되는데, 그러한 움직임에 대하여서 개혁 교회의 신자로서는 어떻게 대응하는 것이 좋겠는가 하는 질문이 있었다. 발표자는 WCC와 같은 단체는 수 세기를 거쳐서 형성된 것이기 때문에 그 모임 자체에 대한 반대로 어떤 열매를 쉽게 거둘 수 있으리라고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하였다. 그릇된 교회의 통일에 대한 바른 대응은 성경적인 통일을 위하여서 힘쓰는 것이라고 강조하여서 말하였고, 2013년 총회에 대한 반대도 몇 가지 구호로 할 것이 아니고 이 시대의 참된 신자들을 실제적으로 도와주는 데에 초점을 맞추어야 할 것이라고 덧붙여서 말하였다.
최고의 목회자(?)
마리스 교수는 신학교에서 8편의 논문을 읽었고, 강의 후에는 항상 진지한 토론이 이어졌다. 특히 ‘언약론의 역사’와 같은 주제는 하나님의 작정과 사람의 책임을 다루는 예민한 문제였는데, 마리스 교수는 매우 경건한 태도를 취하였다.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 의지를 손쉽게 설명하거나 하나의 틀로 제시하려고 하지 않고, 성경에서 가르치는 만큼만 가르치고 멈추려는 "성경적 긴장"을 유지하였다. 이것은 다른 주제를 다룰 때에도 마찬가지였다. 어떤 주제에서라도 쉽게 예단하고서 접근하지 않고 겸손히 그 주제에 대한 성경적 교훈과 교회사적인 논의를 검토하고서 그 테두리 안에서 결론을 내렸다. "성경적 긴장"을 유지하려는 태도가 있어야 "경건한 학문"을 수행할 수 있음을 모범으로 배웠다.
독립개신교회 신학교의 첫 손님으로 방문한 마리스 교수는 여러 가지로 큰 유익을 끼쳤다. 비록 학생 수는 4명밖에 되지 않지만, 한국에 있는 자매 교회의 학생들이 앞으로 목회할 때에 필요한 것을 가르쳐 주려고 노력하였다. 주어진 주제를 논의하되 항상 성경과 신앙고백을 놓고서 평가를 하였고, 성경적 긴장을 유지하면서 겸손한 태도로 여러 주제들을 탐구하였다. 어떤 학생의 보고서는 성경적인 주해(註解)가 부족하다는 이유로 매우 낮은 점수를 받았다. 목사는 성경을 주해하여서 가르치는 사람인데, 논리적인 연관 관계에서만 글을 진행하는 것은 합당하지 않다고 하면서 그러한 점수를 주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하여서 논리성이 부족한 글이 성경적이라는 이유로 좋은 점수를 받은 것도 아니었다. 정당한 자료를 제시하지만 논리적 연결이 부족한 보고서를, 마리스 교수는 "순례자 설교"라는 말로 비판하였다. 순례자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가는 것처럼, 목사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설교를 하면 회중에 열매가 없다고 하였다. 따라서 길게 쓰지 않더라도 분명한 구조를 갖고 글을 쓰고 발표할 것을 학생들에게 주문하였다. 예과 첫 학기의 학생들로서는 아주 좋은 경험을 하였다. 아펠도른 신학대학에 가서 공부한 것은 아니지만, 그것과 같은 효과를 얻었다.
마지막 시간에는 자유로운 질문 시간을 가졌다. 학생들은 짧은 기간이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쳐 주고, 또한 어떤 주제든지 교회의 역사를 들어서 해명하여 준 것에 대하여서 감사를 표하였다. 어떤 학생이 좌우명이 될 만한 문구를 가진 것이 있느냐고 물었다. 마리스 교수는 학생 시절에 들은
‘최고의 목회자가 되라’는 말을 지금도 마음에 품고 있다고 답하였다. 자신의 스승에게서 들은 이 말은 다른 사람보다 더 뛰어난 목회자가 되라는 의미가 아니라 "자기의 역량과 위치에서 최고의 목회자가 되라"는 뜻이라고 하였다. 마태복음 25장에 나온 달란트 비유를 들면서, 하나님께서 각 사람의 재능을 따라서 달란트를 맡겨 주셨으므로 "재능 그 자체가 달란트는 아니고, 주신 재능을 최고로 사용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였다. 다른 사람과 비교해서 최고의 목회자가 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앞에서 절대적인 의미의 "최고의 목회자"가 되라고 하였다. 경건함에서 나온 학문성의 예를 보여 준 유능한 목사 교수가 직접 "최고의 목회자" 상을 보여 준 기간이었다.
승천일과 오순절과 재림
마리스 교수가 한국에 있던 기간에는 교회력으로 승천일(5월 13일)과 오순절(5월 23일)이 끼어 있었다. 그 기간에 마리스 목사는 승천과 오순절과 재림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강설을 하였다. 한국 교회에서는 승천일을 기념하는 것이 낯선 일이지만, 사도신경에서도 한 항목으로 다루고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서도 18주일에서 중요하게 가르친다. 마리스 목사는 예수님의 승천이 지상 사역의 완성일 뿐 아니라 우주적인 중요성이 있다고 역설하고, 그 증거로 두 천사가 예수님의 승천의 증인으로 하늘에서부터 나타난 것을 언급하였다. 예수님께서 올라가신 하늘은 물리적인 하늘이 아니라 하나님의 보좌가 있는 우주의 중심이고, 거기에서 온 두 천사가 예수님께서 그 하늘에 이르셨다고 증언하였다. 우리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계시기 때문에 이제 신자들은 하늘의 예루살렘에 이르러서 주님께 경배를 드린다.
오순절 주일에는 성신에 대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20주일을 가르쳤다. 하늘로 올라가신 예수님께서는 보혜사 성신을 받아서 신약의 교회에 보내셨는데, 성신의 오심은 새로운 시대의 시작을 알리는 일이다. 미래는 그리스도의 것이고, 교회의 머리이신 주님께서 교회의 방향도 제시하시면서 인도하신다. 따라서 교회는 그러한 확신 가운데서 주님의 성신님을 의지하여서 걸어갈 수 있다. 5월 23일에 강변교회에서 전한 이 말씀은 5월 9일에 고(故) 최낙재 목사님의 소천으로 마음에 슬픔이 있는 교우들에게 큰 위로가 되었다. 교회의 미래는 주님의 것이고, 주님께서 마지막 완성을 향하여서 교회를 인도하신다는 사실에서 큰 위로를 얻고 주님을 찬송하였다.
25년의 목회 후에 15년간 신학교 교수로 봉직한 마리스 교수의 강설은 막힘이 없이 자연스럽게 흘렀고, 청중의 마음에 잔잔한 감흥을 일으켰다. 강설자도 청중이 한 마음으로 강설을 받는 데에서 격려를 받았다. 예배 후에 이야기를 나눌 때에 "네덜란드 기독개혁교회에서 전한 강설을 이곳에서도 동일하게 받는 것을 보니까 두 교회가 진리 안에서 하나임을 더 느낀다"고 설교자의 기쁨을 표현하였다.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
마리스 교수는 어떤 주제든지 성경적이고 교회사적인 검토 속에서 다루었다. 관련된 성경 구절을 검토하고 주해하며, 그 주제에 대한 교회사적인 논의를 살피면서 현실적인 함축이 무엇인가를 생각하게 하였다. 앞에서 언급한 대로 WCC도 하루아침에 생긴 것이 아니라 17세기 이후의 기독교의 점진적 변화의 귀결이었음을 드러내었는데, 이러한 역사적인 조망은 어떤 문제에 대하여서 더 현실적으로 이해하게 만들었다. 그러한 변화가 오랜 시간을 걸쳐서 진행된 것이라면 단순히 몇몇 구호로는WCC의 문제를 풀 수 없고, 나아가서 그러한 경향을 바꾸는 것이 거의 불가능함을 뜻한다는 것이다. 이것은 수긍하고 싶지 않은 결론이었지만, 그것이 사실이라면 그것을 현실로 보고서 대처하는 것이 우리에게 유익할 것이다.
성경적이고 역사적인 조망을 하면서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서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신학’에 대하여서 다시 생각하였다. 그것은 단순한 구호만 가지고 이룰 수 있는 것이 아니라 성경적이고 교회사적인 지식과 함께 비로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주님의 진리는 모든 시대의 성도와 함께 알아 가는 것이고, 경건함에서 나오는 겸손으로만 체득할 수 있는 것이다. 무한하신 하나님을 몇 가지 명제로 표현하기보다는 우리의 무지를 고백하고, 겸손히 주님을 찬송하면서 나아갈 때에 만대의 성도와 함께 주님을 더 알아 갈 수 있다. 이것이 자매 교회의 목사 교수와 함께 공부하면서 배운 중요한 내용이었다.
독립개신교회도 이러한 태도로 전진하고 있었기 때문에 마리스 교수도 우리와 함께 공부하는 것을 즐겼다. 그리고 집필 중에 있는 책을 탈고한 후에, 주님께서 허락하시면 2012년에 다시 와서 다른 주제들을 가지고 강의하겠다고 약속하면서 헤어졌다. 짧지만 우리 신학교의 기초와 목표를 더 분명히 할 수 있었던 기간이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