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년 여름에 개혁 교회들의 국제 모임(ICRC)에 우리 독립개신교회의 대표를 파견한 이후, 금년 들어서 우리 교회를 방문하는 외국 개혁 교회 목사님들이 몇 분 생겼다. 지난 6월과 9월에는 캐나다 개혁교회의 고재수(N.H. Gootjes) 목사님과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의 페일스(H.G.L. Peels) 목사님이 각각 방문하였고, 12월 18-23일에는 뉴질랜드 개혁교회의 고리스(J. Goris) 목사님이 방문할 예정이다.
페일스 목사님은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의 신학교인 아펠도른 신학교의 구약학 교수이고 그 교회의 대외교류위원회 의장이다. 그는 독립개신교회를 방문하여 9월 22일 주일에 성은교회에서 말씀을 전하고 9월 25일과 26일에 강변교회당에서 ‘구약에서의 하나님의 보복’과 ‘구약에서의 저주의 기도’라는 주제로 특강을 하였으며, 9월 26일 오전에는 독립개신교회 목사들과 두 교회에 대해서 서로 소개하고 묻는 ‘교회적인 모임’(ecclesiastical meeting)을 가졌고 오후에는 성약교회와 성약출판사를 방문하였다.
1. 성은교회에서의 말씀 봉사
페일스 목사님은 예레미야 17:5-8을 본문으로 여호와를 의뢰하는 것에 대해서 말씀을 전했다. 본문에서는 사막의 떨기나무와 물가에 심긴 나무가 대비되고 있는데, 그 대비는 외적인 것에 그치지 않고 무엇을 신뢰하는가를 표현한다.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권력을 삼고 마음에서 여호와를 떠난 자는 여호와의 저주를 받아서 사막의 떨기나무처럼 되지만(17:5), 여호와를 의지하고 의뢰하는 자는 복을 받아서 물가에 심긴 나무처럼 된다(17:7). 외적이고 내적인 대비는 시편 1편의 말씀과 비슷하지만, 예레미야는 이스라엘이 여호와를 의지하지 않고 다른 나라를 의지하다가 저주를 받아 떨기나무처럼 된 상황에서 이 말씀을 전했다. 이스라엘 역사가 “만물보다 거짓되고 심히 부패한 것이 마음”(17:9)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드러내었다. 이처럼 부패한 사람으로서는 스스로 구원의 길을 찾을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패역한 상태를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내셔서 여호와를 의뢰하도록 부르신다. 이러한 부름에 응답하며 여호와를 의지하는 자는 생명의 길을 걷는 자이다(마 7:13-20).
2. 하나님의 보복과 저주의 기도에 대한 특강
‘하나님의 보복’이라는 특강 제목은 페일스 교수가 수년간 연구하였던 그의 박사 논문 제목이기도 하다. 페일스 목사는 처음 목회지에서 어느 교인으로부터 구약에 나타난 하나님의 보복에 대한 구절을 어떻게 이해해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받고 이 주제를 탐구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현대 사회에서는 보복이라는 말이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되지만 그의 연구 결과는 일반적인 생각과 정반대였다. 성경에서는 하나님의 보복이 부정적이 아니라 긍정적으로 사용되었기 때문이다. 왕과 재판장이신 하나님께서 언약적 행위로서 보복을 하시기 때문에 구약 백성들은 하나님의 보복에 소망을 두었고 하나님의 보복이 나타날 때에는 구원과 기쁨이 있었다. 예를 들어 신앗시리아가 이집트까지 점령하여 세계 최강국이 되고 아무도 그 나라의 잔인한 행위를 막을 수 없었을 때 나훔 선지자는 하나님의 보복에 소망을 두고 ‘하나님의 보복의 복음’을 전하였다(나 1:2-3).
하나님의 보복의 복음은 구약에만 국한된 것이 아니라 신약에서도 계속된다. 하나님의 보복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서 분명히 나타났고 또한 종말에도 나타날 것이다. 큰 음녀 바벨론에 대한 하나님의 심판은 곧바로 어린양의 혼인 잔치로 이어진다(계 19:6-10).
‘저주의 기도’에 대한 두 번째 강의는 첫 번째 강의의 구체적인 예가 되었다. 페일스 교수는 저주의 기도가 성경에서 주변적인 현상이 아니라 150편의 시편 가운데 100편 이상에서 언급될 정도로 중요한 문제임을 지적하였다. 강연자는 특히 저주가 성경에서는 언약의 맥락에서, 즉 언약의 복과 저주와 관련하여 사용되었음을 강조하였다. 따라서 시편에 나오는 저주의 기도는 개인적인 감정에 따라서 자신의 상대에게 하는 저주의 말이 아니라 언약의 맥락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저주를 자기의 입에 담아서 하나님께 호소하는 것이다. 악인이 하나님의 언약을 파기함으로써 하나님의 이름과 영예가 위태롭게 되었을 때 의인은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에 호소하여 악인에 대한 언약의 저주를 시행하여 주시기를 하나님께 기도하였다. 언약에 기초한 기도를 들으신 하나님께서 보복을 시행하며 왕권을 행사하시는 것이 의인에게는 소망이고 복음이다.
성경의 교훈을 충실히 따르려는 강연자는 신약에서 저주의 기도가 적게 나오는 사실에 대해서도 주의를 기울였다. 신약에서는 그리스도의 오심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은혜의 사실이 현저하게 나타나기 때문에 저주의 기도가 적게 나온다. 그러나 ‘영원한 멸망과 저주’를 이야기할 정도로 그 깊이는 깊어졌다(살후 1:9 등). 따라서 구약은 공의와 보복이고 신약은 사랑이라는 식으로 대립시킬 수 없다. 또한 아직은 하나님 나라가 완성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우리는 성신의 인도를 받아서 하나님 나라의 원수에 대항하여 하나님께 기도한다. “마귀의 일들과 주님께 대항하여 스스로를 높이는 모든 세력들, 그리고 주님의 거룩한 말씀에 반대하는 모든 악한 의논들을 멸하여 주옵소서”(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123문) 하는 기도가 신약 시대의 저주의 기도의 한 예가 될 것이다.
강의의 주제가 쉽지 않은 것이었지만 그동안 주께서 우리 교회들에게 말씀을 바르고 깊고 풍부하게 내려 주신 사실이 있어서 청중들은 큰 어려움이 없이 따라갈 수 있었다. 거의 두 시간씩 진행된 강의였지만 청중들은 귀를 기울여 들었고, 또한 강의 후에 좋은 질문도 하였다. 페일스 교수는 여기에 크게 고무되어서 그가 주께로부터 받은 영적인 은사를 아낌없이 나누어 주었고 서로 위로를 얻었다(롬 1:11-12).
3. 교회적인 모임
9월 25일 저녁 늦게까지 강의를 했음에도 26일 오전 8시 30분부터 과천의 신학연구원에 모여서 독립개신교회와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에 대해서 서로 소개하고 질문하는 시간을 가졌다. 정병길 목사님이 한국 교회사를 간략히 조망하면서 독립개신교회의 설립의 의의를 이야기하고 또한 우리 교회 헌장에 표현된 정신, 그리고 이 교회에서 해명된 말씀과 현재의 상황에 대해서 이야기하였다.
찬찬히 듣던 페일스 교수는 교회의 보편성을 어떻게 추구하는가, 선교의 일은 어떻게 수행하는가, 거룩이라는 말이 많이 사용되는데 어떤 의미로 그 말을 사용하는가 등의 질문을 하였다.
그에 대해서 첫째, 교회의 보편성이라는 말은 니케아 신조의 ‘하나의 거룩하고 보편적인 사도적 교회’를 고백하는 데서 나온 말이므로 사도적 가르침과 분리될 수 없음을 지적하였다. 따라서 신앙 고백의 관점에서 보면, 교회의 보편성은 교회나 교인의 숫자가 많다는 데서 찾을 수 있는 것이 아니며 하나님의 복음을 전체로 전하는 교회가 곧 보편적인 교회라고 대답하였다. 또한 우리는 작년에 개혁 교회들의 국제 모임(ICRC)에 대표를 파견하는 등 교회의 보편성을 드러내는 일에도 힘을 기울이고 있음을 상기시켰다.
두 번째 질문에 대해서, 선교는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것인데 지금은 성약출판사를 통해서 말씀을 전하고 있고 전주 지역의 한 교회를 돌보고 있음을 말하였다. 또한 앞으로도 다른 방식으로 길이 열리면 복음 전파에 계속 힘을 기울일 것이라고 대답하였다.
세 교회 가운데 두 교회의 이름에 ‘성’(聖)이라는 말이 들어갔기 때문인지, 그리고 교회사적으로 볼 때 작은 수의 집단이 자기들의 거룩성만을 강조한 역사적인 예가 있어서인지, 거룩에 대한 우리의 이해를 물었다. 이 질문에 대해서, 우리는 완전주의와는 거리가 멀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을 닮아 거룩하라고 하셨으므로 거룩하게 되기를 힘쓰며, 우리의 힘으로 할 수 없기 때문에 성신을 의지하기를 힘쓰고 그 점을 중요하게 가르친다고 대답하였다.
이러한 답변에 대해서 페일스 목사님은 신앙 고백적인 확신과 목회적 추구와 관심사에서 자신이 속한 교회와 하나임을 느낀다고 기쁨으로 이야기하였다. 그러면서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의 역사, 신앙 고백서, 현재의 상황, 다른 교회들과의 교류, 신학 교육 등의 주제에 대해서 소개하였다.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는 네덜란드 국교회(國敎會)가 자유주의화하였을 때 거기에서 1834년에 분리된 4-5개의 교회들에 뿌리를 두고 있으며, 직접적으로는 1886년의 2차로 분리된 교회와 연합이 이루어졌을 때(1892년) 아브라함 카이퍼의 언약에 대한 주장과 지역 교회를 무시한 연합에 반대하여 거기에 가담하지 않고 남은 세 교회에서 시작한다고 하였다. 세 교회였지만 신학 교육을 중요하게 생각하여서 1893년에 두 명의 교수와 1명의 학생으로 신학교를 시작하였고, 지금은 하나님의 복 주심으로 188개의 교회와 74,000명의 회원이 있다고 하였다.
네덜란드 기독교개혁교회는 1944년에 분리된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와 ‘하나 되는 세 고백서’(Three forms of unity)를 함께 고백하기 때문에 서로 통합하기 위해서 지역 교회 차원의 교류를 도모하고 있으며, 또한 캄펀 신학교(네덜란드 개혁교회)와 아펠도른 신학교(기독교개혁교회)가 공동의 프로그램을 진행하고 있다는 것도 말하였다. 네덜란드 사회가 세속화와 물질주의화 경향에 휩쓸리고 있기 때문에 그러한 흐름이 교회에 들어오는 것을 막기 위해 노력하고 있으며, 여자 집사 제도에 대한 것을 논의하고 있다고 이야기하였다.
세 시간 반에 걸쳐서 두 교회의 역사와 현안에 대해서 여러 이야기를 나눈 후 우리는 성약교회와 성약출판사를 방문하였다. 페일스 목사님은 김홍전 목사님의 ꡔ찬송ꡕ에 대해서 깊은 관심을 표시하였고, 성약교회에 보관된 강설 테이프와 책의 제작 과정을 보면서 강설 말씀에 대해서 귀중하게 여기는 것을 높게 평가하였다.
4. 『파수꾼』: 먼 나라 이웃 친구
네덜란드로 돌아간 페일스 교수는 11월 초에 발행된 그 교회의 격주간 기관지 『파수꾼』(De Wekker)에 독립개신교회를 이렇게 소개하였다: “나는 그처럼 경건한 예배에 참석한 적이 별로 없다. 이 교회는 개혁 신앙 고백이 뿌리까지 침투한 교회이다. 이 신앙 고백을 사람들이 위대한 보화로서 받고 고백한다.……나의 강연은 이 교회들의 연합 모임으로 서울에서 열렸는데 많은 사람들이 참석하였다. 어떤 사람은 편도에 4-5시간 걸리는 거리를 여행하여 참석했다. 강의는 약 30분 정도의 기도회 후에 시작되었다. 한번은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의 답을 인용하였는데 통역자가 참석한 사람들에게 함께 그 질문에 대한 대답을 하도록 하였다. 많은 사람들이, 어린아이들뿐 아니라 어른들도 외워서 대답을 하였다.”
마침 11월 초에 필자는 연구 휴가로 아펠도른 신학교에서 공부하고 있었다. 그때 기독교개혁교회의 어느 목사님 댁에 점심 초대를 받아서 간 적이 있는데, 그 기사를 읽은 목사님은 독립개신교회에 대해 더 자세히 물었고, 이야기를 나누면서 우리는 서로 하나의 보편적 교회에 속했다는 것을 느꼈다. 가까운 한국에서는 독립개신교회가 잘 알려져 있지도 않고 친구를 찾기도 쉽지 않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먼 나라의 이웃 개혁 교회에는 쉽게 소개되고 친구가 됨을 경험하였다. 친구가 되는 것은 공간적인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뜻을 온전히 알고 거기에 순종하는 것에 있기 때문일 것이다(요 15:14-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