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약교회의 원로이신 김덕순 여사는 2007년 3월 21일, 95세를 일기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이 글은 다음날인 3월 22일 수요 기도회 후에 고인을 추모하는 자리에서 낭독한 내용입니다. - 필자 주

우리가 사랑하던 김덕순 여사께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아 예수 그리스도께서 계신 곳으로 떠나셨습니다. 홀홀히 웃음 지으며 기쁨으로 그 자리에 들어가셨을 그분의 모습을 생각하면서 마음 가득히 잔잔한 평온이 밀려옵니다.

믿음의 선배이신 그분의 삶의 궤적을 좇아 돌이켜 봅니다.

여사께서 일찌감치 신후사(身後事)를 교우들에게 부탁하셔서 장례를 앞두고 여러 일들을 나누어 하는 가운데 저는 고인의 자료들을 들추어 보고 정리하여서 소략한 자료집을 꾸미는 일을 맡았습니다.

여사의 앨범을 뒤적이며 고인의 삶의 편린들을 돌아보면서 비록 자여손이 없이 사신 생애였지만 믿음 안에서 수많은 형제, 자매, 자식들을 만나고 기르고 가르치고 교제하고 사셨다는 것을 다시 한번 확인할 수 있었습니다.

그 속 깊은 교류의 내용과 치열한 삶의 자취를 사진 몇 장, 서신 몇 편으로 어찌 헤아려 알 수 있겠습니까만 미욱한 사람의 눈으로 보아도 여사께서 한결같은 삶을 살아 오셨다는 것을 한눈에 알아볼 수 있었습니다. 성약교회의 설립과 함께 창립 회원이 되어서 하나님이 부르시는 날까지 변치 않고 충성스럽게 그 길을 걸어오신 사실만을 보아도 그렇습니다. 그 사실 하나만으로도 우리에게 큰 빛을 던져 주고 가신 것이지요. 물론 그분이 삶으로 우리에게 보이신 본은 더욱 특별합니다. 원로가 드문 이 시절에 참다운 원로의 본을 보이셨다고 말할 수 있겠습니다.

일제 시대부터 시작해서 평생 수많은 시련 가운데 단련된 신앙을 가지신 세대의 분이라서 그런 것일까요? 이전 세대의 믿음의 선배들은 유달리 굵직한 선을 그리며 강렬한 삶의 자취를 남기고 가신 분들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물론 우리가 당하는 싸움과 유혹의 양상은 매우 달라졌다는 것을 배워서 알고는 있지만, 그러한 시험이 교회 앞에 닥쳐왔을 때에는 실제로 선배들의 삶의 본과 믿음의 본을 지켜 나가기가 쉽지 않다는 사실이 여실히 드러나고 말았습니다. 편안한 시절에 외부적인 큰 도전 없이 지내어서인지 내성(耐性)이 없고, 바람이 불라 치면 흔들거리는 세태와도 같은 저희 세대의 삶의 태도를 여지없이 깨우치는 교훈들이 선배들의 삶에는 있었습니다.

전날의 사진들 속에는 지난날의 모습들이 차분한 시선으로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카메라 너머를 응시하던 시선들은 우리의 가슴에까지 와서 꽂혀 무언가 우리에게 이야기를 건네는 듯도 싶습니다. 처음 교회가 섰을 때의 온기도 느껴집니다. 말씀을 전하시던 목사님의 입가의 미소는 단단한 확신으로 전해집니다. 둘러싸고 있는 여러 교우들의 모습에서 말씀을 좇아 평생을 살기 원하는 각오도 보이는 듯싶습니다.

교회가 선 지 43년이 흐른 지금, 믿음의 선배들 안에 있던 그러한 확신과 각오가 우리 가운데 이어져 꺼지지 않고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에서, 세대를 넘어 우리를 교회로 불러 모으시는 하나님의 자비와 사랑을 확인합니다.

수요 기도회를 마치고 연락을 받은 저는 빈소가 차려질 병원을 향해 떠났습니다. 한사코 함께 가고 싶다고 하던 저희 아이가 부모의 만류로 단념하고 집으로 향해 가는 도중에, 최근에 배운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57문을 떠올리면서 김덕순 여사께서 예수님 곁으로 가신 것을 기념하는 것이 좋겠다고 엄마에게 제안을 하였답니다.

57문: “육신의 부활”은 당신에게 어떠한 위로를 줍니까?

  답: 이 생명이 끝나는 즉시

          나의 영혼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에게 올려질 것입니다.

        또한 나의 이 육신도

          그리스도의 능력으로 일으킴을 받아          

          나의 영혼과 다시 결합되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몸과 같이 될 것입니다.

아이의 마음에 심겨지고 입을 통해 고백되는 믿음의 내용은 우리에게 얼마나 큰 위로와 확신을 주는지요! 저희의 생각은 자연히 제1문의 고백으로 옮아갔습니다.

1문: 살아서나 죽어서나

        당신의 유일한 위로는 무엇입니까?

답: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입니다.

     그리스도께서는

                그의 보혈로 나의 모든 죗값을 완전히 치르고

                나를 마귀의 모든 권세에서 해방하셨습니다.

        또한 하늘에 계신 나의 아버지의 뜻이 아니면

                머리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않도록

                나를 보호하시며,

                참으로 모든 것이 합력하여

                나의 구원을 이루도록 하십니다.

        그러하므로 그의 성신으로

                그분은 나에게 영생을 확신시켜 주시고,

                이제부터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를 위해 살도록 하십니다.

과연 나의 몸과 영혼 모두가 그리스도 예수의 것이라는 사실만이 우리의 영원한 위로가 됩니다. 이제 그리스도를 위해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살아오신 한 분을 추억하면서, 여사께서 보여 주셨던 단정한 생활의 본과 하나님을 향한 감사와 우리를 향한 참다운 사랑을 기억합니다. 이제 잠시 헤어져 먼저 예수님께 가셨지만 노년의 떨리는 목소리 속에도 결코 잦아듦이 없는 분명한 역사의식으로 이 교회의 역사와 신앙을 또렷한 확신으로 분명하게 들려주시던 모습을 결코 잊을 수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