솔로몬의 재판은 오랜 세월 수많은 사람들에게 지혜롭고 명쾌한 재판으로 기억되고 감탄을 자아내는 유명한 얘기입니다. 그렇게 훌륭한 재판을 하였던 솔로몬이 3천 년 후 코리아의 다섯 살 어린아이로부터 ‘나쁜 왕’이라는 재판을 받고 있습니다. 어처구니없는 일입니다. 다섯 살 어린애가 무얼 안다고 그런 재판을 한단 말인가? 철없는 어린애가 한 말이니 그냥 일소에 부쳐 버리고 말 것인가. 그러나 나는 정훈이의 얘기를 흘려버리지 못하고 6개월이나 지난 지금까지 잊지 못하고 때때로 곰곰이 생각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좋은 왕이었는가? 나쁜 왕이었는가?
성경은 열왕기상 3장에서 11장까지 솔로몬의 행적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솔로몬은 지금으로부터 3천 년 전 고대 근동의 이스라엘 제3대 왕이었습니다. 솔로몬의 아버지 다윗 왕은 실질적으로 이스라엘을 건국한 성군(聖君)이었습니다. 다윗 왕 본인은 물론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이스라엘의 왕으로 경외하도록 신정 정치(神政政治)를 하였고 근동 지역의 모든 나라를 평정하여 부국강병을 이루었습니다. 다윗의 통치 범위는 남쪽 나일 강으로부터 북동쪽으로는 유프라테스 강에 이르는 넓은 영토에 미쳤습니다. 튼튼한 국권을 솔로몬에게 넘겨주었으므로 솔로몬은 40년 동안 외세의 침입이나 국내의 정적(政敵)이 없는 태평세월의 왕권을 누릴 수 있었습니다. 인류역사에서 솔로몬처럼 40년이라는 오랜 세월 태평을 구가하며 권력을 누린 사람은 없을 것입니다.
성경은 솔로몬이 지혜와 학식이 높고 깊었으며 마음이 넓었던 사람이라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잠언 3천을 말하고 노래 1천 다섯을 지었으니 철학자요 시인이요 음악가였습니다. 백향목으로부터 우슬초까지 논했다 했으니 식물학자요, 짐승과 새와 기는 것과 물고기를 논하였으니 동물학자였습니다. 그는 지혜가 뛰어나서 근동의 왕과 지혜자들의 스승이었으니 위대한 철인(哲人)이요 사상가였으며 교육자였습니다. 솔로몬 왕의 치세 동안 모든 백성이 배부르고 평안을 누리고 걱정 근심이 없었으니 위대한 정치가요, 병거의 말의 외양간이 4만이요 마병이 1만 2천이었으니 강병의 군사력을 가진 힘 있는 사령관이었습니다. 또한 주위 국가들과 외교 무역이 활발하였으니 외교가요 경제에 뛰어난 사람이었습니다. 7년 동안 성전을 건축하고 13년간 왕궁을 지은 건축가였습니다. 솔로몬의 재판은 3천 년이 지난 오늘까지도 유명한 얘기로 전해 내려오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율법을 잘 아는 법학자요 지혜로운 판단을 하였던 훌륭한 재판관이었습니다. 이를테면 솔로몬은 철학, 문학, 과학, 음악, 경제학, 공학, 법학, 정치학 등 모든 분야에 해박한 지식을 가진 석학이었습니다. 오늘날 그가 살았다면 모든 분야의 노벨상을 수상하고도 남았을 것입니다.
솔로몬 왕은 부귀와 영화를 누렸던 것으로도 잘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13년에 걸쳐 건축한 왕궁에 살면서 하루에 밀가루 90석, 소 30마리, 양 100마리, 그 외에 수사슴과 노루와 암사슴과 새들을 그의 식솔들과 먹고 즐겼습니다. 그는 자기와 같이 산해진미(山海珍味)를 먹은 사람은 전무후무하다고 말하였습니다. 솔로몬은 크고 화려한 궁전에서 후비 7백 명, 궁녀 3백 명의 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누었습니다.
무엇보다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성전을 건축하는 복을 받았습니다. 그의 아버지 다윗도 하나님께 성전을 지을 수 있는 영광을 구하였으나 하나님께서 허락지 아니하시고 그 영광을 솔로몬에게 주셨습니다. 사람으로서 최고의 영광에 이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솔로몬에게 지혜를 주신 것은 자신의 영예를 뽐내고 자랑하라고 주신 것이 아니요 명철한 지혜로 하나님을 잘 섬기고 백성들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기르고 가르치라고 하신 것입니다. 왕권을 튼튼히 해 주신 것은 자기 위에 계시는 왕이신 하나님을 경외하며 하나님께서 통치하시는 나라를 튼튼히 세워 세계만방에 하나님의 나라를 선양하는 사명을 수행하라고 하신 것이었습니다. 부귀와 영화를 주신 것은 천지를 지으시고 주관하시는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는 자에게는 그러한 복을 주신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알려주려 하심이었습니다. 솔로몬에게 내리신 복은 결코 솔로몬 개인이 잘 먹고 잘살라고 주신 것이 아니라 공적(公的)인 것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솔로몬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을 자기의 행복과 쾌락을 즐기는 데 썼습니다. 사람으로서 솔로몬은 가장 행복했고 가장 성공했고 가장 위대한 일생을 살았다고 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위대한 인생을 살았던 솔로몬은 3천 년 후 코리아의 어린아이로부터 ‘나쁜 왕’이라는 평가를 받았습니다. 다섯 살박이 어린 정훈이의 지적대로 이방의 아름다운 여인들과의 사랑에 빠져 그 여인들이 가져온 우상을 섬기는 죄악을 저지르게 된 것입니다. 솔로몬은 그 죄로 인하여 하나님으로부터 큰 책망과 징계를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사명을 망각하여 나라를 혼란에 빠뜨리고 망하게 하는 원인을 심는 나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솔로몬은 말년에 에돔의 하닷, 소바 르손의 공격을 받게 되고, 안으로는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반역으로 나라가 혼란에 빠지게 됩니다. 솔로몬의 범죄로 언약의 나라 이스라엘은 남과 북으로 나누어지고 북쪽 이스라엘은 B.C. 721년 앗시리아에 망하고 남쪽 유다는 B.C. 587년 바벨론에 망하게 되었습니다. 나라가 망하는 원인을 심은 것으로 볼 때 솔로몬은 나쁜 왕이었음이 틀림없습니다.
솔로몬은 그의 인생을 회개하면서 쓴 전도서에서 다음과 같이 술회합니다. “전도자가 가로되 헛되고 헛되며 헛되고 헛되니 모든 것이 헛되도다. 사람이 해 아래서 수고하는 모든 수고가 자기에게 무엇이 유익한고. 한 세대는 가고 한 세대는 오되 땅은 영원히 있도다.……”라고 하면서 최고 수준의 부귀와 영예와 학식과 지혜를 누린 솔로몬이 인생의 모든 것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고 합니다. 전도서는 열두 장에 걸쳐 인생에서 일어나는 모든 것들에 관하여 논합니다. 의식주(衣食住), 사랑, 희락, 근심, 삶과 죽음, 기쁨, 슬픔, 빈부, 건강, 술, 음식, 지혜, 학문, 권력 등의 의미와 가치와 실상에 대하여 낱낱이 분석하고 정의(定義)합니다. 그 인생사(人生事) 자체가 인생의 목표가 되거나 전부가 된다면 모두 헛되어 바람을 잡으려는 것과 같다고 말합니다.
솔로몬은 사람으로서 가지고 싶고 누리고 싶고 이르고 싶어 하는 권력, 학식, 명예, 부귀, 영화 그 모든 것을 가졌고 누렸고 이루었고 그것들은 모두 최고봉(最高峰)이었습니다. 인류 역사의 모든 사람 중에 솔로몬이 가졌던 지혜와 부귀영화를 누린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그러나 모든 사람은 솔로몬처럼 되고 싶은 욕망으로 삽니다. 최고 수준의 인생을 구가한 솔로몬이 헛되고 헛될 뿐이라고 말한 것들을 인생 목표로 세우고 그 목표를 이루기 위하여 마음과 뜻과 목숨을 바칩니다. 솔로몬이 가졌던 것 중의 하나, 그 하나의 하찮은 정도의 인생 목표에 전 인생을 걸고 살아갑니다.
솔로몬은 전도서 마지막 12장에서 이렇게 말합니다. “너는 청년의 때 곧 곤고한 날이 이르기 전, 나는 아무 낙이 없다고 할 해가 가깝기 전에 너의 창조자를 기억하라.……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 명령을 지킬지어다. 이것이 사람의 본분이니라.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 간에 심판하시리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