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들을 재우고 하루의 흔적을 더듬어 살피는 이 순간, 오래 전에 미국의 한 신학자가 주일의 경험을 담담한 필치로 적어 놓은 글이 새삼스레 떠오른다. 글의 정확한 제목이나 주제는 전혀 떠오르지 않지만, 그 신학자가 주일에 겪었던 아픔은 뚜렷이 기억할 수 있다.

두 아이를 둔 이 신학자는 주일과 예배의 중요성을 절감하는 사람이다. 그는 아이들이 함께 예배에 참석하여 하나님께 찬송하고 진지하게 하나님 말씀을 듣기를 바란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오는 자동차 안에서는 목사님이 전해 주신 말씀에 관하여 깨달은 바를 서로 주고받고 싶은 바람이 간절하다. 하지만 현실로 돌아오면 그의 꿈은 산산이 부서진다. 아이들은 예배식이 시작되자마자 곧 닥칠 무료함을 이겨내기 위해 나름대로의 준비에 돌입한다. 잦은 부스럭거림과 치기 어린 장난이 이어진다. 강설이 시작되면, 졸음을 견디지 못하는 아이들의 고개는 연신 방아질이다. 집으로 돌아가는 자동차 안의 사정도 예외는 아니다. 주일의 거룩함과 복스러운 분위기가 가득하기는커녕 삐걱거리는 대화에 그의 신경이 거슬리고 불편하고 허전한 마음이 그의 마음을 채운다…….

수필의 내용이 정확하게 이런 것이었는지 아니면 수필을 읽으면서 느낀 이미지가 나의 체험과 뒤섞여서 이런 정경이 나의 기억 속에 아로새겨졌는지 분명히 알기 어렵다.

하나님 말씀대로 아이를 양육하고자 하는 사람이라면 이런 경험을 한번씩은 해 보았을 것이다. 그런데 그 신학자의 글에는 적어도 내가 경험하는 또 다른 점은 기록되어 있지 않았다. 자신의 사회적 신분과 지위를 기준 삼아 거기에 미치지 못하는 현실을 부끄러워하는 심정을 엿볼 수 있는 식의 표현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이지 않았다. 혹은 다른 사람의 시선을 의식하고 심기 불편해 하는 심정의 표현도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지만 비슷한 상황에 처한 나는 그렇지 못한 게 사실이다. 때로는 예의라는 이름으로 포장하거나 때로는 ‘집에서 새는 쪽박 들에서도 샌다’는 속담처럼 부실한 가정교육이 드러나는 부끄러움을 덮어보려 하면서, 보이지 않는 시선 좀더 정확하게는 나의 마음속에서만 배회하는 ‘이웃’이라는 존재의 시선을 강하게 의식하곤 한다. 어느 문화인류학자의 적절한 구분처럼 한국인인 나에게 수치심 문화(shame culture)의 폐습이 강하게 자리 잡고 있음을 부인하기가 어렵다.

물론 수치심 문화에도 장점은 있다. 공동체의 일원으로서 공동체의 질서와 미풍양속을 해치는 것이 부끄러운 일이며 다른 구성원에게 폐를 끼쳐서는 안 된다는 책임감이 그런 것일 것이다. 하지만 수치심 문화에는 이런 장점으로 도무지 상쇄할 수 없는 폐단 또한 엄연히 존재한다. 그것은, ‘부끄러운’ 일을 저질렀어도 그 현장을 벗어나면 그만이라는 불철저한 삶의 태도이다. 이웃 사람 볼까 창피하다는 우리의 표현을 뒤집어 놓으면, 정당하지 못한 일이 이웃 사람이 보지 않는 곳에서 이루어졌거나 이웃 사람이 볼 수 없도록 은폐될 수 있으면 별로 상관없다는 뜻이 감추어져 있다. 이런 태도는, 누가 보건 보지 않건, 이웃 사람이 옆에 있건 없건 하나님의 백성과 자녀로서 성신의 능력으로 하나님의 법의 요구를 이루고 산다는 신령한 삶의 태도에서 벗어난 것이며, 하나님의 법을 어겼으면 설사 보는 이가 없다 하더라고 모든 것을 감찰하시는 하나님 앞에 범죄한 것이고 따라서 한 몸을 이룬 주님의 교회의 진행에 장애가 된 것이니 하나님께 용서를 구하고 회개한다는 철저한 태도와는 대척적인 것이다. 사람과 사람의 평가를 하나님의 법과 평가보다 우선시하는 일종의 인간 중심의 태도인 것이다.

아이들의 연약과 결핍을 바라볼 때 마음을 가득히 자리 잡는 기대의 좌절이라는 것도 마찬가지인 듯하다. 집에서 그만큼 가르쳤고 단단히 주의를 주었으니 당연히 바른 태도로 예배를 드릴 것이라는 기대가 무참히 무너져서 생기는 좌절 말이다. 그러나 이것은 내가 그만큼 노력했으니 그만한 결과가 나올 것이라는 어쭙잖은 기대이며, 결국 인간에 대한 신뢰에 불과하다. 가르치고 양육하는 나에 대한 신뢰와 배우고 양육받는 아이에 대한 신뢰에 지나지 않는다. 스퍼전(Spurgeon)이 말한 바 있는 “인간은 나면서부터 아르미니우스주의자”라는 진리를 뼛속까지 체득하지 못한 태도이다. 아침에 함께 배운 말씀을 저녁에 물었는데 아이의 대답이 깜깜 무소식일 때 ‘대체 이 아이가 하나님 말씀을 어떻게 생각하고 있을까’ 하며 마음 깊숙이 잦아드는 실망과 좌절 역시 마찬가지이리라. 사람이 나면서부터 죄인이므로 본성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할 리가 없고, 성신께서 은혜를 주시지 않으면 하나님을 사랑하고 복음을 사랑할 수 없으며, 가르치는 사람의 가르침과 생활이 부실하므로 그것으로는 도무지 효과가 날 수 없다는 너무도 명백한 사실을 망각하기 때문에, 쉽게 실망하고 쉽게 좌절한 것이다. 기대가 그렇게 컸으니 실망과 좌절도 쉽사리 드는 것일 터이다.

이런 인간에 대한 신뢰는 아이가 잘못할 때 나무라는 데서도 여실히 드러나는 것 같다. “왜 이렇게 했니? 형이 되어 동생을 괴롭히면 되니? 부모님 말씀을 잘 들어야 하지 않니?” 나의 입에서 쉴 새 없이 터져 나가는 질문은 아이의 ‘도덕적’인 능력을 당연한 것으로 전제하고 그 능력을 발휘하지 못한 점을 질책하는 것으로 끝나는 때가 많다. 하나님 백성이 하나님의 법에 어긋난 일을 했으니 그것이 잘못이라고 지적하고, 함께 기도하며 주님께 죄를 회개하고 하나님의 법을 행할 수 있는 능력을 구하며 그런 태도에서 신앙 교육이 되어야 할 텐데, 아이의 행위 자체와 그 결과에만 관심을 집중하는 도덕 교육으로만 끝나고 만다. 성인도 성신의 힘주심으로가 아니면 하나님의 법을 이루며 살 수 없듯이 아이도 똑같지 않는가? 아이가 잘못했을 때 사람이 죄인 된 것과 스스로는 선을 행할 능력이 없는 것과 주님의 힘주심을 구해서 그 힘으로 주님의 법을 이루고 살 수 있음을 가르치고 아이와 손을 맞잡고 함께 하나님께 기도하여 용서를 구하고 선을 행할 힘을 구해야 마땅한 일이 아닌가?

이런 저런 나의 결핍을 생각하니 오늘도 마음이 아프다. 하지만 다시금 나의 아이들이 나의 자식이기에 앞서 하나님의 자녀이며 나의 소유물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사실을 되새겨 본다. 그런 각성이 철저하면, 아이들을 대할 때 맡은 자로서의 태도와 책임이 동반될 것이며 맡기신 분의 바람과 뜻에 부응하는 것이 무엇인지 더욱 분명해질 것이다. 아이에게서 결핍과 연약이 드러날 때 남의 시선을 의식하거나 나의 기대가 좌절된 것에 신경 쓰기보다 하나님께 대한 직무 유기와 아이에 대한 진정한 사랑의 결핍으로 인한 결과가 아닌지 냉정하게 자신을 살피는 참된 죄책감과 회개가 있을 것이다. 그리고 이런 회개는 괴롭고 힘든 것이긴 해도 주님의 은혜로 선을 이룰 것이며, 동시에 아이의 모든 것이 나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어리석은 생각과 거기서 비롯되는 중압감에서 벗어날 수 있게 할 것이다. 오직 주님의 은혜만을 구하고 마음의 고요한 평안을 맛보게 할 것이다. 주께서 한 걸음씩 인도해 주시기를 바라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