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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0호

 

은혜의 수단이 말씀과 우리 교회
김명순  (성약교회 )

강단에서 전해진 말씀  

성약출판사는 금년 6월에 새로운 책을 출간하였습니다. “믿음의 기초를 돌아보라는 제목으로 믿음의 기초시리즈 첫째 권이 나왔는데 우리 교우들이 얼마나 관심을 갖고 계신지 살펴보고 있습니다. 앞으로 이 주제로 5권이나 6권 정도의 책이 더 나올 것입니다. 고 김홍전 목사님께서 지금부터 40년 전, 1976년 가을에 토론토에서 서울에 있는 교회로 신앙의 기본 강령이라는 제목으로 보냈던, 모두 83회에 걸쳐 전한 말씀을 정리해서 펴내는 것입니다. 그때 이 교회 강단에서 녹음으로 전해졌던 강설들이 서취되고, 보존되어 오다가 이제야 책으로 나오게 된 것입니다. 비단 출판사 직원들만이 아니라, 그 동안에 자신을 드려 성약교회의 사명을 지지해 온 교우들의 수고가 있어서 이런 결과가 있게 된 것입니다.

이것으로 우리 교회에 내리신 말씀이 그냥 소리로 공중에 흩어져 버리지 않고, 지역의 한계를 넘어 훨씬 널리 전해졌고, 또 시간의 한계를 넘어 다음 세대까지라도 전달되었는데, 주께서 이 일을 이 시대에 이 교회에 속한 우리에게 계속 맡겨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우리 교회는 출판의 일을 사명이라고 여겨 책을 펴 왔는데, 돌이켜 보면 지나온 30년 어간에, 이 일로 인해, 주께로부터 우리들 개인 또 우리 교회와 교회 연합이 함께 받은 은혜, 은택은 또한 매우 큰 것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에 출간된 믿음의 기초를 돌아보라는 이 책은 참으로 오늘 우리 교회와 우리 교회 연합에 속한 교회에 시의 적절한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성약교회 강단을 통해 전해진 말씀을 정리해 펴낸 책을 접한 이들은 자기가 처한 시대, 자기 형편을 돌아보면서 그 내용을 자기에게 적용해야 할 것입니다. 우리들 대부분은 1976, 이 책의 내용이 강단에서 말씀으로 전해질 때, 성약교회에 속해 있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오늘 여러분은 성약교회에 속해 있습니다. 그러니 성약교회 역사 안에 가담되었고, 지금 성약교회의 역사를 지어가고 있는 존재들입니다. 그러니만큼 책으로 펴낸 1976년에 내리신 이 말씀이 성약교회 교인인 우리에게는 좀 더 특별합니다. 오늘날과 단절되어 과거에 전해진 말씀이 아니라 오늘 내가 깨닫고 행해야 할 말씀으로 다가옴을 느껴야 할 것입니다.


말씀을 받은 교회 모습  

이 세상에 교회가 존재하는 동안에는 사이비적인 세력과 그 가르침은 참교회를 언제든지 해치려 할 것인데, 마지막 때에 더욱 그러할 것입니다. 그러니만치 참교회를 해치려는 사이비적인 것, 곧 마귀와 그 종자들의 계교를 분별하는 능력은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것보다 먼저 있어야 할 것은 신앙의 기본에 대한 확고한 지식과 믿음입니다. 그리고 바른 교회가 무엇인지를 아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 신앙의 기본이 되는 것, 그것을 확고히 붙잡을 필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우리 자신과 우리들이 이루고 있다고 자부하는 교회가 어찌해야 참되고 바른 교회가 될 수 있는가를 더듬어 살펴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어떠합니까? 늘 하는 말이지만, 우리들은 우리가 속한 이 교회를 참교회라고 생각하고 덮어놓고 확신을 가집니다. 이런 생각은 구체적이지 않고 어찌 보면 대단히 막연한 관념에 불과합니다. 그것도 다른 교회와 비교해서 얻은 귀결로써 그렇게 생각한다는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 있는 크고 작은 교회들이 세상이나 또 지성인이라 할 사람들에게조차 지탄을 받고 있으니까, 그에 비해 우리 교회들은 그렇지 않다라고 하면서, 자부심을 갖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런 태도를 곧바로 교만해서 그렇다라고 비판할 것은 아닙니다. 우리 교인들은 스스로 자신의 모습을 보면서 참교회의 분자로서 늘 미치지 못한다고 여기고 반성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우리에게는 훌륭한 지도자와 내려진 말씀이 있고 기타 빛나는 전통이 있다고 여기고, 자기 자신이 아닌 물려받은 유산들을 가지고 우리 교회는 더 낫다고, 참교회로라고 여기고 있다는 것입니다.

이 교회가 주께로부터 받은 바 크나큰 은혜를 부인하기 위해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은 아닙니다. 단지 우리들의 막연하고도 낙관적인 태도를 문제 삼아 하는 말씀입니다. 그동안 우리들이 성약교회라는 이름 아래 있으면서, ‘이 교회는 말씀이 바르게 선포되고 성례가 온전히 행해지며 권징이 바르게 시행되는 참교회이고 그 안에 나도 속했다하는 소속감과 자부심으로 안심하며 평온을 구가하지 않았는가 하는 것을 생각해 보려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찮은 일 없이 이런 상태가 계속되기를 막연히 기대하면서, 그냥 별생각 없이 지내시는 분들의 마음에 불편을 끼치려고 이 말씀을 드립니다.

만일 실제로 지금 말씀드린 대로 우리 교회의 많은 사람들이 막연히 그런 생각을 하고 있다면, 그리고 그렇게 교회 생활을 하고 있다면, 어떻게 이 교회가 참교회라는 증거를 가졌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말씀, 구원의 능력   

우리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만이 구원에 이르게 하는 독담적(獨擔的) 은혜가 있다고 믿고, 이 말씀의 은혜를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말씀의 깊고 오묘한 뜻을 배워 깨닫고자 노력했고, 진리의 말씀을 배우는 일을 게을리하지 않았습니다. 그런 만큼 늘 이 강단을 통해서 하나님의 말씀이 공급되어 왔다고 믿습니다. 이것은 우리 교회가 특별해서가 아니고 모든 주의 교회에 내리는 은혜이고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은혜의 약속은 한없는 것도 아니고 자동적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니 만큼 40년이 지난 오늘, 성약교회에 내리신 강설들을 다시 접하면서, 성약교회의 역사 안에 있고 그 역사를 지어 가고 있는 주체자인 우리는 반성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40년 전에 내가 또는 우리 중 다수가 없었다 할지라도 지금은 내 자신도 이 교회가 지어 온 역사 안에 포함되었다고 인식하기 때문에 오늘 내 모습을 반성합니다. 그러하기에 과거에 이 교회에 내려진 해명된 계시가 강단의 말씀이 아닌 서책으로 전해졌을지라도 성신님의 조명하심과 감화하심이 말씀을 내리시던 그때와 같이 이 책의 내용과 함께하시기를 구합니다. 그리고 오늘 우리도 동일하게 깨닫고 능력 있는 삶을 살 수 있게 되기를 소원하는 것입니다.

이런 생각이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매우 조심스럽게 이 교회와 그리고 우리들 자신에게서 찾아보아야 할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이 이 교회에 은혜의 수단으로 사용되어진 증거들입니다. 교회를 전면에 놓고 그 교회 이름 뒤에 자기를 숨기고 사는 것은 신자의 바른 태도가 아닙니다. 자기 자신을 숨기지 말고 교회를 이루는 지체로, 자신을 교회의 한 단위로 놓고 자기에게서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으로 작용한 증거가 있는가를 찾고 확인해 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많은 경우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유리한 것은 자기에게 재빨리 적용시키고, 귀찮고 제약을 주는 내용들은 보고 들어도 귀담아 듣지 않고 지나쳐 버리기가 쉽습니다. 쓴소리는 나 말고 다른 사람들을 향해서 하시는 말씀이라 여기고 그 말씀에서 자기를 제외시켜 버리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것은 우리가 하나님의 말씀을 들을 때 참으로 주의해야 할 일입니다.

 

말씀, 죄를 깨닫게 하심  

말씀이 은혜의 수단으로 임했을 때, 거기에 나타나는 첫 번째 열매는, 구원입니다. 말씀이 복음으로 임하는 것입니다. 로마서 1:16-17절의 말씀대로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둘째는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

여기서 말하는 복음이란 기쁜 소식입니다. 곧 그리스도의 죽으심과 다시 사심이 우리에게 내린 바 된 거룩한 기쁜 소식입니다. 그리고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죽으심은 단순한 죽음 그 자체가 아니라 대속의 죽으심입니다.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려고 희생의 대가를 치르신 것이 인류를 위한 속죄의 죽으심입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으로 작용한 첫 번째 증거일 터인데, 오늘 여기서 새삼스럽게 로마서 1:16-17절에 근거해서 여러분들께 복음을 받은 증거가 있습니까?” 하고 물으면 아마 여러분들은 무슨 전도 집회도 아닌데 도의 가장 초보적인 것을 묻는냐?’고 할 것입니다.

그러나 복음이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라고 할 때 이 구원은 과거의 경험만을 일컫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믿음으로 구원을 받았고 뿐만 아니라 주께서 우리의 죄를 위해 죽으심으로 우리가 받아야 할 죄책이 면제되어서 하나님의 법정에서 의롭다 칭함을 받았습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있어 과거의 일이 되었습니다. 그러면 우리의 현재는 어떻습니까? 복음의 능력의 발휘는 과거사가 되어 버렸고 이제는 구원의 사실을 회상하면서 때때로 다시 그 감격에 젖어 사는 것이 구원받은 중생한 자의 삶이겠습니까?

복음의 능력은 과거에 묶여 있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은 과거만이 아닌 지금도 능력이어야 합니다. 과거에도 지금도 나는 하나님의 구원의 능력으로 살아가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았고 또 여전히 구원을 받아 나가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을 때에 가장 중요한 문제가 나의 죄와 그 죄책에서 자유함을 얻은 것이었듯이 구원을 이루어 나가는 현재에도 우선되는 문제는 내가 옛사람적인 죄에 더 이상 얽매이지 않는 자유로운 삶입니다. 새 사람으로 자유롭고 자연스럽게 그리스도의 성품을 드러내는 삶입니다. 장성의 자태입니다.

그리스도의 죽음이 우리의 죄와 상관이 있으니까 이 속죄의 죽으심으로 내 죄는 사함받았다. 그러니까 죄 사함을 받은 나는 이제 죄와는 아무 상관이 없다. 이제 나는 다시는 죄를 짓지 않게 되었다.’ 우리는 절대로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우리의 대답은 내가 지은 죄에 대한 죄책은 과거나 현재나 미래의 모든 것이 모두 단번에 죽으신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으심, 그 공효를 힘입어 면제되었을지라도 나는 아직도 여전히 죄의 세력에 사로잡혀서 다시 범죄하는 자라는 것입니다.

이것을 신학 용어로 포텐셜 길트’(potential guilt : actual guilt)라 하는데, “잠재적 죄책”, “가능한 죄책이라 할 수 있습니다. 구원받은 우리들에게는 언제나 품성상 문제가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인간성 저 깊은 내면, 거기에 결핍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새로운 생명으로 난 자라 할지라도 다시 죄에게로 끌려갈 수밖에 없는 잠정적 죄책인데, 이 죄의 근본에 대해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산다면 위험에 처해 있는 것입니다. 심각한 죄의 위협에 노출되었는데 인지하지 못하는 것은 대단히 위험한 일입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은혜의 수단으로 임하면 여전히 우리 안에서 준동하는 죄의 세력에 대해, 그리고 빚어내는 죄책에 대해 그 상념이 깊어질 수밖에 없습니다. 아담의 범죄한 사실에 근거한 우리 죄의 근본과 어찌할 수 없는 우리의 형편을 슬퍼하며 하나님의 능력을 간절히 바라는 것입니다. 우리 속에 잠재한 이런 근본적인 죄에 대한 상념이 박약한 가운데 단순히 우리가 생활하면서 지은 몇 가지 악행들을 들추어내고 눈물을 흘리는, 마치 부흥회 때 통회 자복하는 식의 그런 표면적인 죄들을 들추어내는 행동은 옳은 것이 아닙니다. 그런 요란을 떨 것이 없습니다. 이런 것은 자기감정을 추스르고 무엇인가 께름하고 묵은 것을 씻어내 버리려는 것뿐입니다.

우리 인간성 그 아래 도사리고 있는 사라지지 않는 죄, 그래서 항상 기회를 타서 우리를 다시 죄 가운데로 사로잡아 가는 근원적인 악에 대한 슬픔과 거룩한 말씀의 능력을 힘입어 살려는 각오, 이런 것이 필요한 것입니다. 이런 내 안의 죄를 보고 느끼는 그 상념이 더욱 깊어져야 하는 것입니다.

지금 제가 제 자신과 여러분들에게 던지는 질문은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곧 말씀의 능력으로 이 근원적 죄책, ‘포텐셜 길트로부터 뿜어져 나오는 죄를 이기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여러분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으로 바로 작용했다면 먼저는 새 생명의 활동이 있어야 할 것이고, 속죄하심에 대한 확신이 있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다음에는 죄에 대한 상념이 바르고 깊어야 하는데, 그 결과는 무엇으로 나타나느냐 하면 우리의 생활에서 몇 개의 죄된 행실만을 극복하는 그런 정도를 넘어서 그리스도의 품성에서 나오지 않은 자기라는 것, 곧 아상(我想)이 없는 사람이 되어야 할 것이라는 말입니다. 아니, 아상이 완전히 없어지진 않을지라도 세월이 지남에 따라 아상의 지배가 점점 희미해져야 하는 것입니다. 아직도 아상이 나를 지배하고 있다면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으로 작용한 근거가 충분치 못한 것입니다. 교회의 한 분자라고 스스로 인정하시는 분은 내 안에서 죄에 대한 상념이 깊어지고 거룩한 슬픔이 자리 잡고 있는지, 이런 증거가 있는지 확인해 보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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