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 역사서를 읽는 것은 성경의 다른 부분을 읽는 것보다 더 쉽습니다. 역사서 중에서도 열왕기나 역대기보다는 사무엘서가 더 쉽게 읽힙니다. 열왕기나 역대기에는 왕들의 이름이 많이 나와서 줄거리를 붙잡으며 읽기가 쉽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서는 사울과 다윗이라는 두 명의 왕만을 다루기 때문에 내용이 비교적 단순하게 보입니다.

동일시하며 사무엘서를 읽는 일

더구나 다윗은 시편을 통하여 우리에게 친숙한 인물입니다. 이를테면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가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하는 시를 읽을 때에 우리는 자연스럽게 시인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읽습니다. 여호와께서 나의 목자가 되신다는 이 구절을, 양을 위하여 목숨을 버리신 선한 목자 그리스도 안에서 읽기 때문입니다.

시편을 읽을 때에 시인 다윗과 자신을 동일시하면서 읽는 이러한 경향은 때때로 사무엘서를 읽을 때에도 그대로 투영이 되기도 합니다. 그래서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도망하는 이야기를 읽을 때에도 자신을 다윗의 편에 두고 읽습니다. 그리고 직장이나 교회에서 자기에게 어려움을 주는 사람을 사울의 편에 둡니다. 나에게 어려움을 주는 저 사람을 하나님께서 벌하시기를 바라면서 읽게 되는 것입니다. 다윗이 사울에게 쫓겨 다니면서 지은 시편들을 읽을 때에는 그러한 생각이 더 깊이 발전합니다. 다윗이 블레셋 지역으로 피하였다가 미친 체하면서 지은 시편들(34, 56편), 동굴에 피하여 지은 시편(52편), 유다 광야에서 지은 시편(63편) 등을 읽다 보면 사무엘서의 사울과 다윗에 대한 무의식적인 동일시가 더 분명한 형태를 띠고 나타나기도 합니다.

그러나 자신과 다윗을 동일시하면서 사무엘서를 읽는 것은 정당한 방식이 아닙니다. 이러한 식으로 성경을 읽으면 우선 다윗과 사울이라는 인물을 바르게 볼 수 없고 동시에 사무엘서의 내용도 정당하게 이해하지 못하게 됩니다. 사무엘서는 사울과 다윗이라는 두 인물을 통하여 ‘이스라엘의 왕이신 여호와께서 어떠한 분이시고 또 그분이 어떠한 나라를 이루어 가시는가’를 가르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의 왕권을 도외시한 채로 두 인물에 초점을 맞추어서 읽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읽는 일이 아닐 것입니다.

사무엘서의 세 가지 대조

사무엘서는 여호와의 왕권이 지닌 성격을 잘 나타내는데, 세 가지 대조를 통하여서 그것을 제시합니다. 첫째는 사울과 다윗의 대조이고, 둘째는 순종하는 다윗과 불순종하는 다윗의 대조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대조를 통하여서 셋째, 사람을 모델로 삼을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어떻게 언약을 이루어 가시는지를 기록합니다.

(1) 사울과 다윗: 왕권의 성격을 대조하여 표현함 (삼상 9-31장)

첫째로 사무엘서에서는 사울과 다윗이 대조되고 있습니다. 외모에서도 사울은 모든 백성보다 키가 크고 준수하지만 다윗은 일곱 형들만큼 외모가 준수하지는 않은 사람으로 묘사되고 있습니다. 두 왕에 대한 백성의 기대도 달랐습니다. 사울은 이스라엘 백성이 ‘우리도 열방처럼’ 왕을 달라고 하면서 택한 왕입니다. 사람들은 어떤 외적인 기준을 가지고서 사울을 왕으로 택한 것입니다. 반면 다윗은 ‘여호와의 마음에 합한 왕’이었습니다.

왕의 직분을 행사하는 점에서도 두 사람은 대조를 이룹니다. 사울은 자기의 왕권을 유지하기 위해 다윗을 죽이려 하였고 심지어 놉의 제사장들도 죽였습니다. 그가 왕권을 수행한 방식은 전형적인 이방 나라의 왕들과 같았습니다. 반면 다윗은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읊조리면서 시편을 지어 불렀고 백성을 가르쳤으며 성전을 세우는 데에 자기의 모든 노력을 바쳤습니다(참조. 시편 132편).

사무엘서에서 이렇게 백성과 왕의 측면에서 두 왕을 대조하여 기록한 것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신정(神政)의 성격을 알려 주려는 뜻이 있었습니다. 여호와의 율법을 주야로 읊조리면서 나아가는 왕이 진정한 왕이고(시 1:1-2), 반면에 헛된 것을 읊조리면서 사람들을 규합하는 왕은 열방의 왕이라는 사실을 사무엘서는 우리에게 생생하게 제시합니다(시 2:1-3).

(2) 다윗의 순종과 불순종 (삼하 1-20장)

이렇게 사무엘서에서 사울과 다윗을 대비하는 것이 사실이고 그것만 보자면 다윗은 가장 모범적이며 단정한 신자이고 사울은 반대로 부정적인 예라고 보아야 할 것입니다. 그러나 사무엘서의 저자는 사람을 그렇게 유형으로 나누어서 가르치지 않습니다. 사무엘서는 다윗의 죄에 대하여서도 기록하고 그뿐 아니라 그 죄를 중심에 놓고서 다윗의 생애를 둘로 나누어 서술합니다. 사무엘하 1-10장은 다윗이 온 이스라엘의 왕으로 즉위한 일과 사무엘하 7장에 기록된 대로 영원한 언약을 맺으신 사실을 기록합니다. 다윗이 성전을 지을 뜻을 밝히자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언약을 주시고 언약 관계에 들어갔습니다. 주님께서는 거기서 다윗에게 영원한 왕위를 약속하셨으나 그의 후손이 죄를 지으면 하나님께서 사람 막대기와 인생 채찍으로 징계하실 것이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이 말씀은 바로 다윗에게도 적용되었습니다. 사무엘하 11-20장에 길게 기록된 내용은, 다윗이 이방 나라의 왕처럼 되어서 신하의 아내를 빼앗고 더 나아가 신하를 죽인 일과 이 일에 대하여 그가 받은 징계에 대한 기록입니다. 심지어 다윗의 왕권 안에서조차 이방적인 요소가 있음을 선지자의 관점에서 지적한 것입니다.

(3) 만군의 여호와와 사람의 대조 (삼하 21-25장)

다윗의 왕권에 순전한 요소와 순전하지 못한 요소가 함께 있다는 것을 사무엘서의 결론 부분에서는 아래와 같은 대차 대구법으로 선명하게 표현합니다.

   A) 기브온 사람들에 대한 사울의 범죄와 속죄 (삼하 21:1-14)

  B) 다윗의 용사들 (삼하 21:15-22)

    C) 다윗의 감사의 시 (삼하 22:1-51)

    C′) 다윗의 마지막 노래 (삼하 23:1-7)

  B′) 다윗의 용사들 (삼하 23:8-39)

A′) 인구 조사에 대한 다윗의 범죄와 속죄 (삼하 24:1-25)

대차 대구의 중간에는 다윗이 지은 감사의 시와 마지막 노래가 있는데, 두 노래를 중심에 두고 앞의 흐름과 뒤의 흐름이 대조를 이룹니다. 첫째 이야기를 보면, 사울이 기브온 사람과 맺은 언약을 어겼던 일에 대하여 하나님께서 심판하신 결과 사울의 집안에서 남자 일곱 명이 죽임을 당하였습니다[A]. 이 일은 사울의 집안 전체의 멸망을 상징합니다. 그다음 부분에서는 이후에 블레셋과의 전투에 참여한 용사들을 기록합니다[B]. 그리고 중간에 하나님의 구원[C]과 영원한 언약[C"]을 노래하는 시편이 나옵니다. 그리고는 이어서 다시금 다윗의 용사들의 목록이 나옵니다[B"]. 그런데 이 둘째 목록의 마지막에 열거된 사람은 헷 사람 우리아입니다. 즉 여기서 다윗의 죄를 다시금 상기시키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무엘서 결론의 마지막 부분에서는 다윗이 인구 조사를 한 이야기가 나옵니다. 그는 더 많은 군대를 두려고 그렇게 시도한 것이었습니다[A"]. 이렇게 사울의 죄와 다윗의 죄를 함께 이 결론 부분의 바깥 틀로 사용하고 있는데, 이렇게 함으로써 다윗의 인구 조사가 사울의 죄와 동일한 성격의 죄였음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다윗의 불순종은 사울의 경우보다 나은 점이 하나도 없었습니다.

다윗이 다른 나라들처럼 군대를 잘 갖추려고 인구 조사를 하려다 징계를 받은 부분에서 주목할 만한 표현이 있습니다. 그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로부터 칠 년의 기근과 석 달의 유랑 생활, 삼 일간의 온역, 이 세 가지 가운데 한 가지 형벌을 받게 되었을 때에, 다윗은 하나님께서 치시는 전염병을 택하면서 “내가 곤경에 있도다. 여호와께서는 긍휼이 크시니 우리가 여호와의 손에 빠지고 내가 사람의 손에 빠지지 않기를 원하노라”(삼하 24:14) 하고 고백하였습니다. 다윗은 여호와께로부터 직접 형벌 받는 것을 택하면서 그 형벌 안에서 하나님의 참된 긍휼을 기대하였던 것입니다.

사무엘하의 마지막 22장에 기록된 노래는 다윗이 모든 대적과 사울의 손에서 구원함을 받은 다음에 하나님께 드린 찬송입니다. 이 찬송에서는 여호와의 구원을 찬송하고, 자신이 얻은 승리가 자신의 부르짖음을 들으신 여호와께서 주신 것임을 거듭 반복하여 노래합니다. 이 시편은 이방 세계의 전승가에서처럼 그 영광을 왕이나 어떤 장수에게 돌리는 것이 아니라, 진정한 승리자요 구원자이신 하나님께 돌리며 그분을 찬송합니다. 이러한 다윗의 찬송은 “여호와께서 그 왕에게 큰 구원을 주시며 기름 부음 받은 자에게 인자를 베푸심이여, 영원토록 다윗과 그 후손에게로다”(삼하 22:51) 하는 말로 끝납니다. 여호와께서 친히 기름 부으신 왕을 높이신 일이 이 찬송의 주제인 것입니다.

사람과 대조되는 하나님의 왕권이 사무엘서에서 다루는 중요한 주제라는 사실은, 사무엘서의 처음과 마지막에 기록된 노래에서도 분명히 나타납니다. 사무엘서에서 처음 기록된 노래는 한나의 노래입니다(삼상 2:1-10). 한나의 노래는 “내 뿔이 여호와로 인하여 높아졌으며”로 시작하여(삼상 2:1) “여호와께서…… 자기의 기름 부음을 받은 자의 뿔을 높이시리로다” 하는 말로 끝납니다(삼상 2:10). 여호와께 간구함으로 아들을 얻어 힘과 지위가 높아진 한나는 그러한 자기의 이야기로 만족하는 것이 아니라, 왕이 없어서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 대로 행하던 이스라엘 나라에(삿 17:6)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왕을 세우시고 그 나라를 강성하게 하시기를 소원하였습니다. 한나의 소원과 찬양과 기도는 여호와께서 기름을 부어 세우신 다윗을 통하여 이스라엘 집에 성취되었습니다.

사무엘서 읽기와 시편 읽기

시편을 읽을 때에 시인과 자기 자신을 동일시하여 읽는 것은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허용된 복입니다. 우리는 나 자신을 다윗과 동일시하면서 시편을 읽고 거기서 위로를 얻습니다. 물론 다윗처럼 우리도 거룩하신 하나님을 높이는 가운데서 시편을 읽고 마음의 어려움도 호소하여야 합니다. 이렇게 시편은 우리가 그것으로 기도하고 찬송할 수 있도록 친히 내려 주신 책입니다. 그렇지만 사무엘서를 읽을 때에 자신을 다윗과 동일시하고 다른 누군가를 사울과 동일시하면서 읽는 일은 없어야 합니다. 사무엘서는 이스라엘의 참된 왕권이 지닌 성격이 무엇인지를 가르쳐 주는 책입니다. 따라서 다윗이 아니라 다윗의 주가 되신 그리스도 그리고 사랑하시는 아드님을 보내신 만군의 여호와와 성신 하나님 안에서 이 책을 읽어야 합니다.

한 가지를 첨언하자면, 사무엘서를 정당하게 읽는 방식을 배우면 성경의 다른 부분, 특히 시편을 읽을 때에도 큰 도움이 됩니다. 사무엘서에서 하나님의 왕권에 대하여 바르게 깨달은 사람은 시편에 나오는 의인과 악인에 대하여서도 더 분명한 이해를 갖습니다. 쉽게 자기를 의인과 동일시하고 다른 사람을 악인으로 생각하지 않게 됩니다. 말씀과 성신으로 다스리시는 하나님의 왕권을 바르게 알았기 때문에 자기 안에 있는 완고한 것을 더 정직하게 볼 수 있고 인자하심을 베푸시는 주님을 의지하면서 그러한 근원적인 연약함을 잘 해결하면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참으로 가난한 자로서 시편의 말씀을 바르게 읽고 그 말씀을 따라서 기도할 수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