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마누엘로서 강생하신(마 1:23) 주님은 공생애 처음에 요한에게 세례 받아 메시아 직분에 공식으로 나아가셨고, 지상 사역을 이루신 후에는 사도들에게 세례를 베풀라 하시면서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함께 있겠다’(마 28:20)고 하셨습니다. 주님께서 공생애 처음에 세례 받으신 것은 ‘우리를 위하여 고난 받으시기’ 위함이고, 승천 직전에 사도들에게 세례 베풀라 하신 것은 ‘우리에게 본을 끼쳐 그 자취를 따라오게 하시기’ 위함입니다(참조. 벧전 2:21). 세례 받은 우리는 말씀과 성신으로 그리스도와 연합된 자답게 죄에 대하여 죽고 의에 대하여 살아야 합니다(참조. 벧전 2:24-25).

  이 복음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성례가 말씀을 좇아 신실하게 시행되는 거기에 거룩한 교회 곧 그리스도의 몸이 있습니다. 이 은혜 방도들이 정당하게 사용될 때에 그리스도의 몸은 그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은혜와 생명을 받아 함께 머리이신 그리스도에게로 자라갑니다. 그리스도의 생명을 받았으니 그리스도의 인격과 사랑을 드러냅니다. 그야말로 ‘그리스도의’ 몸으로 존재하고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삽니다. 함께 그리고 각각 그리스도의 어떠하심을 드러냅니다. 이 새 사람들 가운데서 그리스도께서 전부이시고 전부 안에 계십니다(골 3:11).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십니다(고전 12:12). 과연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성신과 말씀으로 교회를 주님의 몸과 지체로서 세워 나가십니다. 역사는 그리스도의 교회가 머리이신 주님에게 자라가는 무대이고, 세상은 그리스도의 지체들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드러내는 현장입니다.

  이 거룩한 교회에 사시고 참되신 하나님이 친히 임재하셔서,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 이 세상에 친히 그 사랑의 영광을 드러내십니다(요일 4:12). 이 일을 이루시려고 하나님께서 성신을 그리스도의 영으로서 우리에게 부어 주셨습니다(요일 4:13). 성신님은 다른 보혜사로서 우리를 그리스도의 진리 가운데로 인도하셔서 하나님과 교제하는 사회로 서 나가게 하십니다(참조. 요일 4:14-15).

  그런 점에서 마태 사도가 주님의 공생애의 처음과 마지막에 삼위일체의 영광이 환히 드러난 것을 기록한 사실은 우리의 주목을 받을 만합니다. 하나님이신 예수께서 세례를 받아 죄인의 구주로서 공생애를 시작하던 날에, 하늘이 열리고 성신이 비둘기 형상으로 주님에게 임하시니 성부께서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선언하셨습니다. 그처럼 승천하시기 직전에 우리 주님은 ‘아버지와 아들과 성신의 이름 안으로’ 세례 베풀라 하셨습니다. 주님은 아버지에게서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받은’ 분으로서 이 명령을 제자들에게 내리셨습니다. 그처럼 주님은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고 약속하심으로써 곧 성신을 그리스도의 영으로 주님의 교회에 부어 주실 오순절 사건을 예고하십니다.

  주님의 공생애의 처음과 마지막에 기록된 이 말씀에서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친히 죄인을 구원하시고 주님의 교회를 세우심을 배웁니다. 아무도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 세상에 독생하신 하나님께서 친히 사랑이신 아버지를 나타내셨고, 친히 우리 가운데서 성막이 되어 주셨고, 성신을 부어 주셔서 신약 교회가 탄생하게 하셨습니다. 이제 이 교회에 하나님이 임재하셔서 하나님을 본 사람이 없는 이 세상에 친히 그 영광을 나타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할 일은 매 주일 그리스도를 통하여 성신 안에서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그것입니다. 그 장엄하신 어전 앞에 서서 그 거룩한 영광을 뵈옵고, 그 슬하에 나아가 그 사랑의 영광을 맛보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의 얼굴에 나타난 광채로 말미암아 죄인인 우리가 주의 형상으로 변화되어 갈 수 있고, 자기밖에 모르던 우리가 그리스도처럼 하늘 아버지의 온전하신 사랑을 본받을 수 있습니다. 그리스도를 본받아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 되는 우리를 통하여 하나님의 영광이 세상 가운데서 드러납니다.

  오직 우리가 스스로는 아무것도 아님을 겸손히 고백하면서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삼위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이 거룩한 일을 친히 이루십니다. 오직 우리가 스스로는 죄인인 것을 시인하면서 하나님의 자비를 구할 때에 하나님께서 우리를 긍휼히 여기시고 우리를 하나님의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오직 겸손한 자를 가까이 하시지 않습니까?

  그런데 오직 강단에서 그리스도의 복음이 순수하게 전파될 때에, 그리스도의 거룩한 빛 앞에서 우리가 얼마나 연약하고 얼마나 가난하고 얼마나 어두운지 숨길 수 없이 드러납니다. 성경과 복음 강설에서 하나님의 지혜와 능력이신 그리스도를 깨닫는 교회와 신자만이 조금이라도 사람의 꾀와 힘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그리스도 없이는 살 수 없다는 참으로 가난한 마음으로 성찬상에 나아가 하늘의 주님이 내려 주시는 참된 양식과 음료를 간절히 구하고, 지극히 작은 일에도 오직 그리스도를 인하여 살고자 합니다.

  거룩한 교회는 처음부터 이 참된 믿음으로 서 나왔습니다. 이 믿음이 우리에게 언제든지 절실합니다만, 21세기 배도의 큰 도전 앞에서는 ‘오직 믿음’이 더욱 절실합니다.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겸손한 마음으로 주님의 교회에 복음이 순수하게 전파되도록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가 실로 연약하지 않습니까? 이런 겸손한 심정으로 우리가 주님을 간절히 의지할 때에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이 우리의 연약함을 통하여 나타날 것입니다. 바로 거기서 주님께서 그 영광을 우리에게 나타내시고 우리에게서 찬송을 받으실 것입니다.

  이번 개혁교회들의 아시아 태평양 대회에서, 특별히 여러 경건회를 통하여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께서 온 세계에 흩어져 있는 개혁교회들의 강단에서 복음 강설을 통하여 주님의 영광을 나타내 주시고 회중의 찬송을 통하여 영광을 받으시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어서 무엇보다 기뻤습니다. 우리 개혁교회들이 비록 소수이긴 합니다만, 우리의 강단들에서 복음이 순수하게 전파되고 전파된 그 강설이 교우들 가운데서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여진다면, 주님께서 이 소수의 교회들을 통하여 주님의 거룩하신 능력을 이 어두운 시대에도 틀림없이 나타내실 것입니다. 배도의 물결이 아무리 거세게 일어난다고 할지라도 주님은 그 오만한 물결을 밟고서 연약한 우리를 영광의 항구로 더욱 인도해 주실 것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께서 드러내시는 그 거룩한 영광 앞에서 엎드려 찬송 드릴 뿐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