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약을 읽다 보면 이따금 막히는 부분들이 생기는데, 이를테면 역대기의 긴 족보나 레위기의 제사 제도에 대한 설명이 그렇습니다. 또한 출애굽기 25-31장과 35-40장에 나오는 성막 건축에 대한 설명도 그에 못지않게 어려운 부분에 속합니다. 그러한 때에는 관련되는 도표나 간략한 해설을 옆에 두고서 성경 본문을 함께 읽으면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는 데 큰 도움이 됩니다.
성막에 대한 부분을 읽을 때에도 ‘성막 평면도’를 옆에 두고서 읽으면 좋습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방식으로 읽는다고 하여서 모든 문제가 다 해결되는 것은 아닙니다. 성막 평면도를 참고하면서 출애굽기 25-31장을 읽다 보면 새로운 문제를 만납니다. 성막에 대한 기록의 순서가 일반적인 방식과 다르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 25장은 지성소의 언약궤에 대한 것부터 기록하고(25:10-22), 성소와 관련하여서는 ‘진설병 상’과 ‘등대’만을 언급합니다(25:23-30, 31-40). 지성소와 가장 가까이 있는 ‘분향단’은 25장에 나오지 않고 30장에 이르러서야 나옵니다. 25-27장에서는 성막의 건설에 대하여, 28-29장은 제사장의 옷을 제조하는 법과 제사장 임직식에 대하여 이야기하고 그 후에 30장에서 비로소 분향단에 대하여 언급하는 것입니다. 성막 건축의 관점에서 기록하였다면 분향단에 대한 내용은 순서상 25장에 나오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런데 그러지 않고 뒷부분에 나오기 때문에, 이렇게 기록된 의미가 무엇인지를 묻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 질문을 해결하려면 먼저 분향단의 기능과 의미부터 살펴보아야 합니다. 그러면 분향단에 대한 기록이 뒤에 나온 것을 이해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분향단에 대한 다른 기록들을 살펴보면 우리의 해석을 확정할 수 있을 것입니다. 열왕기와 히브리서의 기록들을 살펴보고 이어서 예수님에게서 분향단의 의미가 어떻게 성취되었는지를 살펴보겠습니다.
분향단의 모양과 기능
출애굽기 30장을 보면 분향단은 가로와 세로가 1규빗(45센티미터), 높이는 2규빗(90센티미터)이고 네 귀퉁이에 뿔이 있습니다. 분향단 전체는 정금으로 싸였고 아래에는 채를 꿸 수 있는 고리를 금으로 만들었습니다. ‘분향단’은 성소와 지성소를 구분 짓는 휘장 바로 앞에 있고, 조금 떨어진 곳에 ‘등대’와 ‘진설병 상’이 있습니다. 성소에 있는 세 가지 기물 가운데서 분향단이 지성소 가장 가까운 곳에 있습니다. 분향단에서는 하나님께서 지시하신 방식으로 제조한 향만 살랐는데, 그 향은 성소와 지성소를 막고 있는 휘장을 통하여 하나님께 올라갔습니다.
분향단에는 능력을 상징하는 뿔이 네 귀퉁이에 있습니다. 이 점에서는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과 모양이 비슷합니다. 두 단은 모양에서만이 아니라 기능에서도 비슷한 점이 있습니다. 아침과 저녁에 번제와 소제를 번제단에서 드릴 때에, 당번 제사장이 성소에 들어와서 분향단에서 향을 살랐습니다. 이것은 같은 시간에 성전 뜰에서 드리는 상번제(常燔祭)를 분향단에서 드리는 향으로 표시하여 그 제사가 지성소에 계신 여호와께 올라감을 상징한 것입니다. 이처럼 분향단에서 드리는 향은 성전 뜰에서 드리는 제사를 표상하는 것이었습니다. 따라서 그러한 향은 하나님께서 정해 주신 방식으로만 제조해야 하였고 개인적인 용도로 쓰려고 그 향을 만드는 일은 금지되었습니다.
아침저녁의 상번제와 함께 드리던 분향은 하나님의 백성의 기도를 상징합니다. 성전 뜰에 있는 번제단의 연기가 하늘로 올라가고 동시에 성소에 있는 분향단에서 향연이 지성소로 향하여 올라갈 때에, 이스라엘 백성은 손을 들고서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참조. 눅 1:8-12). 옛 시인은 그러한 모습을 이렇게 표현하였습니다.
나의 기도가 주의 앞에 분향함과 같이 되며
나의 손 드는 것이 저녁 제사같이 되게 하소서. (시 141:2)
출애굽기 기록에서 분향단의 위치와 의미
분향이 회막 뜰에서 드리는 제사와 연결되고 성도의 기도를 상징한다는 사실을 생각하면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분향단을 25장이 아니라 30장에 기록한 이유도 알 수 있습니다. 출애굽기 25-30장에서 성막 건설에 대한 순서를 보면 ‘지성소 - 성소 - 성막 뜰 - 제사장 임직 - 분향단’으로 이어지는데 이러한 순서에는 단순히 건축학적인 과정이 아니라 신학적인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조금 풀어서 말하면, 성막을 잘 건설하였으나 거기에서 봉사할 제사장이 없으면 그 성막은 제대로 기능하지 못할 것이고, 또한 성막과 제사장이 준비되었으나 거기에서 제사를 드리지 않거나 분향단에서 제사를 상징하는 분향을 하지 않는다면 성막은 무의미한 것이 될 것임을 암시하는 것입니다.
따라서 이러한 기록 순서는 주님의 백성에게 하나님께 나아오도록 초청하는 역할을 합니다. 여호와께서 성막을 지으시고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거하심을 가르쳐 주시면서 이제 주님의 자녀들로 하여금 아침과 저녁으로 상번제를 드리고 분향을 하면서 주님께 나아오도록 부르시는 것입니다.
열왕기와 히브리서에 기록된 분향단의 위치와 의미
분향단이 성막 건설에 대한 마지막 부분에 기록된 것을 분향단의 의미와 관련하여서 생각해 보았는데, 이러한 해석을 확정하려면 분향단에 대한 다른 기록들을 찾아보는 것이 좋습니다. 분향단에 대한 기록이 나오는 곳은 열왕기와 히브리서인데 그곳에서는 분향단이 마치 지성소에 있는 것처럼 묘사합니다.
먼저 열왕기상 6장을 보겠습니다.
온 성전을 금으로 입히기를 마치고 내소에 속한 제단의 전부를 금으로 입혔더라. 23 내소 안에 감람나무로 두 그룹을 만들었는데 그 높이가 각각 십 규빗이라. (왕상 6:22-23)
솔로몬의 성전에서는 언약궤와 그룹이 있는 곳을 지성소, 곧 내소(內所)라고 불렀는데 ‘내소에 속한 제단’도 모두 금으로 입혔습니다. 여기에서 말하는 ‘내소에 속한 제단’이 무엇인지를 두고 학자들 사이에 의견이 나뉩니다. 분향단은 성소에 있기 때문에 ‘내소에 속한 제단’은 분향단이 아니라 다른 것이라고 주장하기도 합니다. 속죄일에 대제사장이 향을 피우면서 지성소에 들어왔기 때문에 그때에 쓰이던 ‘향로’를 가리킨다고 주장하는 학자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제단’이라는 단어를 굳이 ‘향로’라는 다른 단어로 바꾸어 번역할 이유는 없습니다.
그 대신 ‘내소에 있는 제단’이라고 표현하지 않고 ‘내소에 속한 제단’이라고 표시한 점에 주의를 기울이는 것이 좋습니다. 열왕기에서는 향단의 위치를 지성소 안이라고 확정하지 않고 ‘지성소에 속한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분향단에서 태우는 향이 지성소의 그룹 사이에 좌정하시는 하나님께 올라가기 때문에 ‘속한’이라는 표현을 사용한 것입니다.
열왕기에서는 분향단의 ‘기능’을 강조하면서 위치에 대하여서는 이처럼 모호하게 표현하였는데, 히브리서의 표현은 조금 더 강합니다.
또 둘째 휘장 뒤에 있는 장막을 지성소라 일컫나니 4 금향로와 사면을 금으로 싼 언약궤가 있고 그 안에 만나를 담은 금 항아리와 아론의 싹난 지팡이와 언약의 돌판들이 있고 5 그 위에 속죄소를 덮는 영광의 그룹들이 있으니 이것들에 관하여는 이제 낱낱이 말할 수 없노라. (히 9:3-5)
히브리서 기자는 지성소에 언약궤뿐 아니라 ‘금향로’가 있다고 말합니다. 개역 한글에서는 ‘금향로’로 번역하였지만 대부분의 성경은 ‘금 분향단’으로 번역합니다. 히브리서 기자는 성소와 지성소의 건축학적인 차이를 이야기하지 않고 분향단의 기능, 곧 거기에서 드리는 향이 그룹 사이에 계신 하나님께 올라가는 그 기능을 중심으로 기록하였기 때문에 분향단을 지성소에 있는 것으로 묘사하였다고 생각합니다. 열왕기상 6장에서도 장소보다는 기능을 중심으로 설명하였던 것처럼, 히브리서도 그러한 전통을 따랐다고 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것입니다.
열왕기나 히브리서를 쓰신 분들이 성소에 있는 분향단을 지성소에 속한 것으로 말한 것은 건축학적인 관점에서 분향단을 설명하기보다는 그 의미와 기능을 강조하여서 서술한 것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기도함으로써 성막과 성전 건축의 의미를 구현하면서 살라고 그렇게 기록한 것입니다.
예수님의 기도와 우리의 기도
우리는 예수님에게서 기도의 중요성을 더 분명히 배웁니다.
그는 육체에 계실 때에 자기를 죽음에서 능히 구원하실 이에게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렸고 그의 경외하심을 인하여 들으심을 얻었느니라. (히 5:7)
‘예수님께서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와 소원을 올리셨다’ 하고 말하는데, ‘올렸다’는 말은 ‘제사를 드렸다’ 하는 말과 같습니다(히 8:3이하; 9:7, 9, 14, 25, 28; 11:4, 17).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자기의 몸을 제물로 바치셨을 뿐 아니라, 간절히 기도하시면서 그 기도도 제물로 바치셨습니다. 구약에서도 기도가 제사였듯이, 예수님의 기도도 자신을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의 일부였던 것입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보면 예수님의 기도가 지금도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힘입어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들을 온전히 구원하실 수 있으니 이는 그가 항상 살아 계셔서 그들을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히 7:25)
참된 성전과 제물과 제사장이 되신 예수님의 제사는 완전하여서 다시 드릴 것이 없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완전하신 제사장께서 지금도 항상 살아 계셔서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고 계십니다. 주님의 속죄의 공효를 우리에게 입혀 주시려고 기도하고 계신 것입니다.
하나님 우편에서 기도를 드리시는 이러한 모습은 우리로 하여금 우리도 주님처럼 기도를 드리면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함을 깨우쳐 줍니다. 그리고 실제로 신약 성경에서도 성도의 기도를 향연으로 표시하여 가르쳐 줍니다. 요한계시록을 보면 “이 향은 성도의 기도들이라”(계 5:8) 하였고, “향연(香煙)이 성도의 기도와 함께 천사의 손으로부터 하나님 앞으로 올라가는지라”(계 8:4) 하였습니다. 성전과 제물에 관한 것이 그리스도 안에서 완성되었고, 우리는 그것에 근거하여서 기도를 드립니다. 출애굽기에서 분향단에 대한 기록을 마지막에 두어서 주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기도하면서 살도록 하신 것처럼, 히브리서와 요한계시록도 그리스도의 온전한 제사를 가르쳐 주면서 우리에게 기도하며 주님의 구원의 뜻을 맛보아 알라고 가르쳐 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지금도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시는 것을 알려 주시면서 우리로 하여금 그분의 구속 사역에 근거하여서 기도하도록 초청하시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개혁교회의 중요한 특징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풍성하게 가르치는 것을 꼽습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과 교회의 사명에 대하여 이야기하기를 좋아합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그친다면, 분향단을 출애굽기 30장에 기록해 두신 주님의 뜻은 잘 깨닫지 못한 일이 될 것입니다. 우리가 주님의 말씀을 잘 배우려고 힘쓰는 것은 그 말씀에 근거하여 바른 기도를 드리기 위함입니다. 하나님께서 명하시지 않은 향으로 분향하면 안 되듯이(출 30:9, 34-38), 말씀에서 벗어난 것으로 기도하지 않으려고 말씀의 뜻을 궁구하는 것입니다. 그러한 정신으로 말씀을 배우지만 거기에 분향을 더하지 않는다면 말씀을 공부한다는 것은 아무런 효력이 없을 것입니다. 개혁은 기도하는 사람을 통하여 하나님께서 친히 행하시는 일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