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갈은 요단 강 서편에 있는 땅으로 이스라엘이 요단을 건너 처음 진을 쳤던 곳입니다(수 4:19). 사무엘하 19장에 보면 그곳에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었습니다. 그 까닭은 다윗 왕이 아들 압살롬의 난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났다가 난을 수습하고 다시 돌아오는 것을 맞이하기 위함이었습니다. 사울의 손자요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도 예루살렘에서부터 와서 무리와 함께 다윗을 영접하였습니다. 그때 다윗 왕은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하고 물었습니다.

이 이야기는 사무엘하 19:24부터 나오는데, 바로 그 앞에는 다윗 왕이 아들의 난을 피해 예루살렘을 떠나갈 때 자신을 저주했던 시므이를 너그럽게 용서한 일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도망하는 다윗 왕과 따르는 무리를 향해 사울의 집 족속인 게라의 아들 시므이가 “피를 흘린 자여, 비루한 자여, 가거라, 가거라” 하면서 저주하고, 산비탈로 따라가면서 다윗 일행에게 돌을 던지고 티끌을 날렸던 적이 있습니다. 그 시므이가 왕이 돌아올 때 길갈에 왔고, 먼저 강을 건너 요단 동편에까지 가서 왕을 영접하면서 머리를 조아렸습니다. 이때 시므이가 혼자 오지 않고, 베냐민 사람 일천 명과 함께 왔는데, 그들 중에는 시바와 그의 아들 열다섯 명과 종 스무 명도 함께하였다 했습니다(19:16-17).

사무엘하 16장에 보면, 시바가 제 주인 므비보셋을 따돌리고 주인의 것을 제 것인 양하여 예루살렘을 떠나는 다윗 왕에게 나아와 물품들을 바친 기사가 있습니다(1-4절). 그때 왕은 시바에게 ‘주인인 므비보셋은 어디에 있느냐?’ 하고 물었습니다. 주인을 속인 시바는 이때도 왕에게 거짓말을 했습니다. 그런데 왕은 시바가 주인을 참소하는 말의 진위를 확인하지도 않고 ‘므비보셋에게 있는 것이 다 네 것이다’ 하고 시바가 관리하던 므비보셋의 재산을 그에게 다 주어 버렸습니다. 그다음에 시므이가 왕을 저주한 기사가 나옵니다(16:5 이하).

그런데 19장을 보면 시므이가 먼저 등장해서 용서를 구하는 장면이 있고, 그다음에는 주인을 참소한 시바의 이야기가 나와야 할 것 같은데, 시바 이야기는 없고 므비보셋과 다윗 왕의 대화가 기록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사가(史家)는 므비보셋을 요나단의 아들로가 아니라 사울의 손자로 소개합니다. 그는 시바가 자기를 속이고 왕에게 거짓을 아뢴 까닭에 혹시는 왕이 오해하셨을지라도 왕께 대한 자신의 태도와 마음은 늘 한결같다는 것을 밝힙니다. 므비보셋은 이 말로 자기를 변명한 것도 아니고, 억울함을 호소한 것도 아니었습니다. 다만 왕께 자기 마음을 펴 보였을 뿐입니다. 그래서 아무것도 요구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왕이 자기 마음을 알아주지 않는다 해도 개의치 않겠는 태도를 보였습니다. 오직 다윗 왕에 대한 한없는 신뢰가 있을 뿐 자기가 어떻게 될 것인가에 대해서는 괘념치 않았습니다. ‘어떻게 이런 순전한 마음을 가질 스수 있었을까?’ 하는 기이한 생각이 듭니다.

므비보셋은 다섯 살 때까지 왕의 손자로 지냈고, 아버지 요나단이 왕이 된다면 서열상 그다음은 그의 차례입니다. 므비보셋 이외에는 요나단의 다른 아들의 이름이 성경에 없으므로 그렇게 생각해 볼 수 있을 것입니다. 어쨌든 그만한 지위에서 아무 부족이 없이 보살핌을 받다가 하루아침에 집안이 쑥대밭이 되었습니다. 블레셋이 왕궁을 침범하여 모두 도륙할 위험 앞에서 므비보셋을 돌보는 유모가 아이를 안고 급히 도망치다가 땅에 떨어뜨려 그만 불구가 되었습니다. 두 다리가 부러진 것인데, 말이 그렇지 그때 통증이 얼마나 심했겠습니까. 그 큰 부상에서 회복되기까지 많은 고생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의 의료 수준을 감안할 때 마땅한 치료가 있을 리 만무하고 그저 자연적으로 낫기를 바랐을 것이고, 그 상태에서 나름대로 몸을 기동할 수 있기까지는 한두 해가 아니라 수년이 걸렸을 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블레셋 사람의 세력이 미치지 않는 요단 강 동편의 길르앗 땅으로 가서 지내고 있었습니다. 그의 모친에 대해서는 성경에 아무 기록도 없습니다. 그러니까 아버지를 전쟁에서 잃고 어머니마저 없는 터에서 이 사람 저 사람의 불쌍히 여김 아래 어린 시절과 소년 시절을 보냈을 듯합니다.

사무엘하 9장을 보면 다윗이 요나단과 여호와 앞에서 맹세한 일을 기억하고 ‘사울 집안에 은혜를 베풀 후손이 있는가?’ 하고 찾았습니다. 성경의 기록들을 따라 추정해 볼 때 므비보셋의 나이는 이때 스물 서넛쯤 되었을 것입니다. ‘누가 사울 집안의 일을 잘 알까?’ 하고 알 만한 사람을 찾다가, 오래전부터 사울 집에서 종노릇하던 시바를 불러왔습니다. 다윗은 시바에게서 길르앗 땅 로드발이라는 곳에 있는 암미엘의 아들 마길의 집에 요나단의 아들인 므비보셋이 살아 있음을 듣고 사람을 보내서 므비보셋을 데려오라고 명하였습니다.

므비보셋이 엎드려 절하니

다윗이 “므비보셋이여!”

대답하기를 “주의 종이 여기 있나이다.”

가로되 “무서워 말라.”

“내가 반드시 네 아비 요나단을 인하여 네게 은총을 베풀리라. 네 조부 사울의 밭은 다 네게 도로 주겠고 또 너는 항상 내 상에서 먹을지니라.”

저가 절하며 “이 종이 무엇이관대 왕께서 죽은 개 같은 나를 돌아보시나이까?”

다윗이 사환 시바를 불러 이르되 “사울과 그 온 집에 속한 것은 내가 다 네 주인의 아들에게 주었노니, 너와 네 아들들과 네 종들은 저를 위하여 밭을 갈고 거두어 네 주인의 아들을 공궤(供饋)하라.”

시바가 고하되 “내 주 왕께서 온갖 일을 종에게 명하신대로 하겠나이다.” (참조. 삼하 9:6-11)

사무엘하 19:25-30을 보면, 이렇게 되어 있습니다.

사울의 손자 므비보셋이 예루살렘에서부터 내려와서, 길갈의 요단 나루에서 다윗 왕을 맞을 때에, 왕이 묻되 “므비보셋이여, 네가 어찌하여 나와 함께 가지 아니하였더뇨?”

대답하되 “내 주 왕이여, 왕의 종 나는 절뚝발이이므로 내 나귀에 안장을 지워 타고 왕과 함께 가려 하였더니 나의 종 시바가 나를 속이고 내 주 왕께 이 종을 참소하였나이다. 내 주 왕께서는 하나님의 사자(使者)와 같으시니 왕의 처분대로 하옵소서. 내 아비의 온 집이 내 주 왕 앞에서는 다만 죽을 사람이 되지 아니하였었나이까? 그러나 종을 왕의 상에서 음식 먹는 자 가운데 두셨사오니 내게 오히려 무슨 옳음이 있어서 다시 왕께 부르짖을 수 있사오리이까?”

다윗 왕이 므비보셋에게 이르되 “네가 어찌하여 또 네 일을 말하느냐? 내가 이르노니 너는 시바와 밭을 나누라.”

므비보셋이 왕께 고하되 “내 주 왕께서 평안히 궁에 돌아오시게 되었으니 저로 그 전부를 차지하게 하옵소서.”

므비보셋은 20년 전이나 마찬가지로 다윗 왕에 대해 변하지 않은 마음을 품고 있습니다. 자신의 처지가 어떤지를 잊지 않고 있고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이 한결같음을 보여 줍니다. 다윗이 베푼 은총을 자신의 권리로 여기지 않았기에 다윗이 그것을 다시 거두어 간들 그에 대해 고까워하거나 불평하지 않았습니다. 오히려 자기 자신보다는 다윗 왕의 지위가 회복되는 것을 중요하게 여겼고, 왕이 평안하다면 그것으로 족하였습니다. 다른 마음, 두 마음을 품지 아니하였습니다. “나의 간절한 기대와 소망을 따라 아무 일에든지 부끄럽지 아니하고 오직 전과 같이 온전히 담대하여 살든지 죽든지 내 몸에서 그리스도가 존귀히 되게 하려 하나니, 이는 내게 사는 것이 그리스도니 죽는 것도 유익함이라”(빌 1:20-21).

다윗에 대해 기이한 사랑을 품었던 요나단처럼, 그 아들 므비보셋도 다윗에게 그런 변치 않는 마음을 품었습니다. 불구의 몸과 암울한 환경 가운데서도 어떻게 그런 순전한 심정을 가졌고, 또 끝까지 자신을 정당하게 평가할 수 있었을까요? 그것은 그가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믿었고, 다윗을 하나님의 종이요 이스라엘의 왕으로 믿었기 때문입니다.

북쪽 이스라엘이나 유다나 자기들의 유익을 따라 다윗 왕을 자기들의 골육이라 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종이요 하나님께서 자신들에게 주신 왕으로 인정하는 일에는 인색하였습니다. 그러나 므비보셋은 입에 발린 말로 다윗 왕을 ‘여호와의 사자’라 하지 않고, 이스라엘의 왕을 참으로 여호와의 사자로 인정하였습니다. 다윗이 지닌 여러 가지 약점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알고 대접한 므비보셋은 하나님께 복을 받았습니다.

므비보셋에게는 다윗을 만나기 이전에 미가라는 아들이 하나 있었습니다. 그 후 미가는 여러 아들들을 낳았고 자손이 대대로 이어졌습니다. 이로써 요나단과 다윗이 한 맹세가 이루어졌는데, 다윗이 그 약속을 지킨 것이라기보다는 하나님이 친히 이루신 것이었습니다. 그 결과 사울의 집안은 이스라엘에서 끊어지지 않았습니다(대상 8:34 이하, 9:40 이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