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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66호

 

해방 기념일에 즈음하여
김명순  (서울: 성약교회 목사)

 

오늘 8월 15일은 광복절이다. 몇 년 전에 해방 60년을 기념했으니까 우리 식으로 말해 환갑이나 진갑이 지나지 않은 사람은 해방을 경험하지 못한 세대이다. 본인 역시 8․15 해방의 기쁨도, 또 6․25의 고통도 경험하지 못한 전후(戰後) 세대일 뿐이다. 내가 초․중등학교를 다닐 때, 부모 세대의 어른들은 해방도 6․25도 알지 못하는 전후 세대를 걱정하는 눈초리로 바라보곤 하셨다. 그러면서 일본 제국 시대의 핍박과 해방의 기쁨을 전하여 주었고, 다시 5년 만에 전쟁의 나락으로 빠져 들어갔던 고통스럽고 비참했던 전쟁의 참화들을 이야기해 주셨다.


이제 나의 자식들이 성년이 되었다. 때때로 내가 경험한 1960-70년대나 80년대에 있었던 사건을 이야기하면 ‘그게 나와 무슨 상관인가?’ 하는 반응을 보인다. 제3공화국 이후 긴 통치 때의 일이든지, 그 대통령의 비극적인 죽음과 ‘80년의 봄’과 제5공화국의 등장은 최근 역사의 한 페이지를 차지할 것이 분명하지만, 내 아이들의 반응은 별로 마뜩지 않다는 태도다. 그럴 때 내가 그들을 바라보며 느끼는 감정은 마치 내가 어렸을 때 나의 부모 세대가 우리들을 향해 느꼈던 그 감정과 비슷하리라. 그러면서 나 역시 우리 부모님이 그러셨듯이 내가 경험했고 알게 된 것들을 가르쳐 알게 하려고 애쓴다.


물론 내가 근현대사에 관해 체계 있는 역사관을 가지고서 매 사건들을 아이들에게 가르치는 것은 아니다. 대개 살아가다가 기회가 오면 내가 경험한 사건을 이야기하는 것이다. 그런데 명확히 말하면, 그 경험이라는 것이 내가 직접 경험한 일은 아니다. 그저 동시대를 살았으니까 - 그 당시 나를 비롯한 많은 사람들에게 직․간접적으로 관련된 일이었으므로 - 매스 미디어에 회자되었을 것이고 그래서 그것을 통해 듣고 보고 알았기 때문에 경험했다고 하는 것뿐이다. 그러니까 나의 경험이란 기실 그 사건이 있었던 시대를 살았다는 것뿐이다. 혹시 사건 현장에 있었다 할지라도 수만의 군중 가운데 하나였을 뿐, 그 사건의 전말을 현장에서 통투하게 안 것도 아니다. 그러니까 동시대를 살았다고 해서, 또 그 역사 현장에 있었다고 해서 그때 발생한 사건을 다 안다고 주장할 수는 없는 것이다.


어쨌든 내가 아이들에게 최근 일어난 굵직굵직한 일들, 후에 역사적 사건으로 분류될 만한 사건들을 이야기할 때는 대개 잊혀졌던 그 사건들이 재조명되는 때이다. 1990년대에 이르러서야 우리나라는 문자 그대로 정권이 교체되었다. 그리고 이어 권력의 실세들이 바뀔 때마다 가깝게는 10-20년 전의 사건, 멀리는 일제의 강점기나 해방 정국 때, 그리고 정부 수립과 두 차례의 혁명, 또 이어진 공화국들에서 일어난 사건들이 재조명되고 그 결과들이 발표되기도 하였다.


내가 알지 못하던 시대의 일들에 대해서는 나 역시 윗세대에게 들었거나 혹은 학교에서 배워 알게 된 것에 불과하므로, 이런 사건들이 재조명되어 발표될 때는 이미 알고 있는 것은 아는 대로, 모르는 것은 몰랐던 것이므로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러나 내가 살아온 동 시대에 일어난 사건이고 그 당시의 일을 보고 들어서 알고 있다고 생각하던 사건이 새롭게 조명되어 발표될 때 간혹 충격을 느끼기도 한다. 왜냐하면 과거에 내가 알고 있다고 생각했던 내용이 매우 부정확한 것이기도 하고, 더 나아가 왜곡되게 알고 있었다는 것을 깨닫게 되기 때문이다.


“이후에 너희 자녀가 묻기를 ‘이 예식이 무슨 뜻이냐?’ 하거든 너희는 이르기를 ‘이는 여호와의 유월절 제사라. 여호와께서 애굽 사람을 치실 때에 애굽에 있는 이스라엘 자손의 집을 넘으사 우리의 집을 구원하셨느니라’ 하라 하매 백성이 머리 숙여 경배하니라”(출 12:26-27; 참조. 13:14-16).


해방 기념일을 당하면, 나이든 신자들은 얼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애굽에서 해방된 사건을 떠올리게 된다. 아마 주일학교에서나 교회 강단을 통해서 들은 내용들이 있는 까닭에 그러할 것이다. 그러나 같은 해방일지라도 1945년 8월 15일에 우리 한민족에게 온 해방과 지금부터 3천 5백 년 전에 애굽의 바로 왕으로부터 히브리 민족이 맞은 해방은 격이 같지 않다. 몇 가지 공통점이 있다고 해서 같은 격으로 추어올릴 것은 아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시면서 처음 유월절을 제정하여 주실 때부터 “너희는 이날을 기념하여 여호와의 절기를 삼아 영원한 규례로 대대에 지킬지니라”(출12:14) 하고 명하셨다. 유월절은 구약의 성례다. 이 명에 따라 이스라엘 백성들이 대대로 이 절기를 지킬 때, 그 부모는 자녀에게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자신들의 조상을 어떻게 구원해 주셨는가를 가르쳐야 했다. 즉 하나님께서 얼마나 큰 능력을 베푸셔서 자기들을 애굽의 종 되었던 데서 건져 내셨는가를 알게 해야 했다. 그 후대에도 대대로 이날을 기념하여 하나님께서 행하신 크신 구원을 전하고 또 전하도록 하셨다.


내가 내 자식보다 앞서 살면서 경험한 사건을, 그것도 훗날 역사적 사건이 될 만한 것들을 기억하여 내가 듣고 보고 알았던 것들을 전하려 할 때 그 안다는 것이 얼마나 부정확한가? 그 지식은 이지러졌기도 하고, 어떤 경우는 매우 제한되어 사건의 실체에 접근하지 못한 경우도 많다는 것을 깨닫는다. 지금부터 3천 5백 년 전에 애굽에서 노역에 시달리며 ‘이 무지막지한 곤경에서 언제나 건짐을 받을 것인가?’ 하고 기다렸던 야곱의 자손들, 그래서 하나님의 크신 은혜로 해방의 기쁨을 맛본 그들은 그들이 ‘경험한 것’을 자녀들에게 전했던가?


아니다. 그들이 모세를 통해 바로와 애굽에 행하신 열 가지 재앙을 목도하고 해방의 기쁨을 맛보았으며, 구름 기둥과 불 기둥으로 인도하사 홍해를 평지같이 건너게 하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어 먹이시는 구원을 경험했을지라도,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보았고 들었고, 또 먹었고 마셨으며, 건너기도 하고 만져 보기도 했던 경험들을 전하라고 하지 않으셨다. 왜냐하면 사람의 경험이라는 것은 단편적이고 그 사람의 한계에 머물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는 처음부터 출애굽 사건이 사람에 의한 것이 아닌,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이었음을 알게 하셨다. 이스라엘 백성에게만이 아니라, 애굽과 바로 왕에게, 그리고 열방에 하나님이 어떠하신 분이신가를 알리셨다. 그리고 그들의 후손에게 전할 내용, 그들이 기억하고 믿어야 할 내용을 계시하여 주셨다.


간증 집회라는 이름으로 유명인들이 교회에서 예배를 인도하기도 한다. 그 예배에 참석한 사람들이 많은 은혜를 받는다고 하지만, 그것이 바른 예배일까 하고 생각하게 된다. 예배가 아닌 특별한 모임에서라면 그 나름대로 감동이 있을 수 있겠다. 그러나 간증은 개인의 한계를 넘어서기가 어렵다. 예배 시간에는 계시, 곧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되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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