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에서 40은 특별한 숫자입니다. 중요한 인물 및 사건과 자주 관련되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40년 동안 광야 생활을 하였고, 구약의 대표적 지도자인 모세와 엘리야도 각각 40년과 40일을 광야에서 보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생애를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광야 생활을 하셨고,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도 40일 동안 땅에 계셨습니다. 40은 우리가 주목하여야 할 숫자입니다.
40이라는 숫자에는 특별히 ‘준비의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모세는 40년간 미디안 광야에서 준비한 뒤에 이스라엘 민족을 인도하였고, 이스라엘 백성도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40년 동안 준비를 하였습니다. 모세가 십계명의 돌판과 성막의 규례를 받았던 40일도 이스라엘이 거룩한 나라로서 민족 사명을 감당하기에 필요한 것을 준비한 기간입니다. 엘리야는 40일 동안 광야를 여행하여서 시내 산에 도달하였고, 거기에서 앞으로 될 일에 대한 지시를 받았는데, 그 40일도 다음 시대를 준비하는 의미가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신 후에 성신에게 이끌려서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셨습니다. 그 40일은 공생애의 준비 기간입니다.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로 올라가시기 전에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시고 십자가와 부활의 복음을 전파하는 사명을 맡기셨습니다. 사도의 직분을 세우신 것이 이 기간 동안에 행하신 핵심적인 일입니다. 예수님의 마지막 40일은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하늘에서 행하실 일을 준비하신 기간이고, 한자로 표현하면 사순절(四旬節)이 되겠습니다.
고난의 사순절?
그런데 교회사에서 사순절은 예수님의 ‘부활 이후’가 아니라 ‘수난 이전’의 40일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40일이 시작하는 날을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이라 하고 그 40일 동안에는 고기를 먹지 않고 그리스도의 수난에 대한 연극을 상연하면서 지냈습니다. 고난의 사순절을 지키는 전통은 고대 교회에서 시작하였지만 로마 교회에서 더 정교하게 발전하였습니다. 그런데 40일을 산정하는 방식이나 지키는 방법은 지역마다 달랐습니다. 그것에 대한 성경적 근거가 없고 사도적 전통이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의 사순절은 사람이 만든 전통일 뿐입니다. 이것에 대하여서는 다른 제목으로 더 살펴보겠습니다. (☞ 논단, ‘고대 교회와 로마 교회의 사순절’)
부활 후의 사순절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40일 동안 소수의 신자들, 특히 앞으로 사도로 세우실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셨습니다. 대중에게 나타나지 않고 제자들에게만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셨고, 그들을 사도로 세우신 후에 하늘로 올라가셨습니다. 이 기간은 주님의 몸인 교회를 사도의 기초 위에 세우시려고 준비하신 기간입니다. 교회의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높이 되신 위치에서 주님의 몸인 교회를 통하여서 행하실 일을 준비하신 40일이었습니다. 주님을 부인하고 도망한 제자들을 다시 세워서 교회의 기초로 삼으시려고 주님께서는 다음의 세 가지를 가르쳐 주셨습니다.
첫째, 부활하신 주님께서는 ‘부활의 사실’을 알려 주셨습니다. 의심하는 도마에게 손과 발의 못 자국을 보여 주시면서 주님은 혼령이 아니라 몸으로 부활하신 분임을 확신시켜 주셨습니다. 못 자국을 보면서도 믿지 못하는 제자들에게 주님께서는 먹을 것을 달라고 하여서 드심으로써 자신의 부활을 분명히 나타내셨습니다. 사도행전 1:3에서는 그 사실을 분명히 가르칩니다. “해 받으신 후에 또한 저희에게 확실한 많은 증거로 친히 사심을 나타내사.”
둘째, 주님께서는 ‘부활의 의미’도 알려 주셨습니다. 부활의 의미를 모르면 부활의 사실도 믿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예수님의 제자들은 예수님께서 부활하셨다는 여인의 말을 듣고서도 부활을 믿지 않았고(막 16:11), 주님께서는 다락방에 있는 제자들에게 나타나셔서 “자기의 살아난 것을 본 자들의 말을 믿지 아니함”을 책망하셨습니다(막 16:14). 예수님께서는 부활하신 몸을 보여 주셨을 뿐 아니라 구약의 모든 말씀이 주님의 죽으심과 부활하심을 가리킴을 깨우쳐 주셨습니다(눅 24:44-47). 예수님께서 부활의 의미를 성경으로 가르쳐 주셨기 때문에 제자들은 부활의 사실도 더 분명히 알고, 주님의 부활에 대한 증인이 될 수 있었습니다(눅 24:48).
셋째, 부활하신 주님과 ‘교제하는 방법’도 알려 주셨습니다. 십자가와 부활 이전에는 예수님께서 제자들과 함께 계시면서 말씀을 가르치셨지만, 부활 이후에는 주님께서 원하시는 때에만 제자들에게 나타나셨습니다. 앞으로는 제자들과 다른 방식으로 교제를 나누실 것임을 알려 주신 것입니다. “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셨을 때 제자들은 주님께서 이전과는 다른 방식으로 그들과 항상 함께하시면서 복음 전파의 일을 친히 행하실 것을 기대하였을 것입니다.
주님의 세 가지 가르치심은 ‘사도를 세우심’이라는 한 가지 사실로 요약할 수 있습니다. 부활의 사실과 의미를 바르게 알려 주시고 신령한 교제의 방법을 알려 주신 것은 그 제자들을 사도로 보내시려 하심입니다. 40일 동안 제자들에게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것은 제자들이 사도로서 주님의 보내심을 받고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바르게 하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사도를 세우고 임명하는 것이 예수님의 마음에 가득하였다는 것은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하신 말씀과 부활 후에 하신 말씀에서도 명백히 드러납니다. 주님께서는 감람산으로 기도하러 가시면서 “내가 살아난 후에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리라”(마 26:32)고 하셨습니다. 부활절 아침에 무덤을 찾은 여인이 천사로부터 받은 소식도 같은 내용이었습니다. “빨리 가서 그의 제자들에게 이르되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나셨고 너희보다 먼저 갈릴리로 가시나니 거기서 너희가 뵈오리라”(마 28:7)는 말을 제자들에게 전하라고 하였습니다. 예수님께서도 돌아가는 그 여인들을 만나서 “무서워 말라. 가서 내 형제들에게 갈릴리로 가라 하라. 거기서 나를 보리라”(마 28:1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 여인들의 말을 듣고 바로 갈릴리로 가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들에게 나타나서 말씀하신 후에야 그들은 주님께서 명하신 갈릴리의 어떤 산으로 나아갔습니다. 어떤 산인가는 기록되어 있지 않기 때문에 모릅니다. 많은 주석자들은 산상보훈을 내려 주시던 그 산이 아닐까 하고 추정합니다. 만일 마태복음 5장의 산과 28장의 산이 같은 산이라면, 여기에 큰 의미가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예수님의 사도로서 천국 복음을 전한다는 것을 상징적으로 잘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산에서 산상보훈을 권세자로서 가르치신 것처럼(마 7:28-29) 사도들이 예수님의 뒤를 이어서 그 자리에서 가르치는 일을 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갈릴리 호숫가나 회당이 아니라 갈릴리의 어떤 산에서 사도를 세우시고 임명하신 것에는 이러한 큰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성경에 짧게 기록되었지만 예수님의 마지막 40일은 예수님께서 제자들을 어떠한 방식으로 준비시켜서 예수님의 심부름꾼으로 삼았는가를 가르쳐 줍니다. 40일 동안 때때로 나타나서 하나님 나라의 일을 말씀하신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가지고 있던 전통적인 메시야관을 씻어 내시고 바른 메시야관을 가진 사도들로 세우심으로써 주님께서 높아지신 지위에서 행하실 일을 예비하셨습니다.
사순절 동안에 잘 배웠던 사도들이 먼저 한 일은 사도직의 상징적인 숫자를 채우는 것이었습니다(행 1:15-26). 사도들은 가룟 유다 대신에 맛디아를 제비 뽑아서 세웠습니다. 오순절의 성신을 기다리면서 제자들이 행한 그 일에서 우리는 사순절의 의미가 사도직을 세우는 것이었음을 확증할 수 있습니다.
사순절과 오순절
광야에서 40일 동안 금식하신 뒤에 시험을 받으시면서 지상의 사역을 준비하신 예수님께서는 하늘에서의 사역을 시작하시기 전에 40일 동안 때때로 사도들과 함께하시면서 높아지신 지위에서 사역하실 것을 예비하셨습니다. 이것이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순절입니다. 로마 교회의 사순절은 그리스도의 고난을 사람들이 재현하는 것에만 관심을 기울이지만,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순절은 부활하시고 하늘에 오르신 주님과 나누는 신령한 교제를 가르쳐 줍니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 49문에서는 그리스도께서 하늘에 오르심의 유익을 ‘약혼 관계’로 설명합니다.
둘째,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으며,
이것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그의 지체(肢體)인 우리를
그에게로 이끌어 올리실 것에 대한
‘확실한 보증’입니다.
셋째, 그리스도는 ‘그 보증’으로
그의 성신을 우리에게 보내시며,
우리는 성신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앉아 계신
위의 것을 구하고
땅의 것을 구하지 않습니다.
여기에서 ‘확실한 보증’과 ‘그 보증’이라는 말을 사용하는데, 이것은 혼인하기로 약속한 두 사람이 약혼반지를 교환하는 것과 비슷합니다. 땅에 있는 우리의 몸이 그리스도 안에서 하늘에 있고[보증] 하나님의 성신이 땅에 있는 우리에게 있는 것은[그 보증] 둘이 하나가 되는 날을 기대하게 합니다. 역사의 마지막에 있을 어린양의 혼인 잔치를 기대하면서 우리는 ‘아멘. 주 예수님, 어서 오시옵소서’ 하고 기도합니다. 예수님의 사순절은 땅에 있는 우리를 참하늘로 이끄시려고 준비하신 기간입니다.
사순절을 제대로 이해하면 오순절의 의미도 더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준비의 사순절을 끝내고 승천하신 그리스도께서는 약속하신 성신을 성부로부터 받아서 신약의 교회에 보내셨습니다. 이것은 땅에 있는 우리로 하여금 전능하신 성부 하나님 오른편에 앉아 계신 예수님과 거룩한 교제를 나누도록 하시려는 것입니다. 진리의 성신께서 사도적인 복음 전파를 쓰셔서 우리에게 신령한 진리를 깨닫게 하고 땅에 붙은 우리를 하늘로 끌어올리십니다. 세상 끝 날까지 우리와 항상 함께하시리라고 약속하신 예수님께서는 지금도 말씀을 전하는 직분자를 교회에 세우셔서 그분의 양 무리를 하늘로 인도하는 일을 행하십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사순절은 복음을 분명하게 깨우쳐 줍니다. 예수님께서 행하신 일을 알려 주기 때문입니다. 인류 역사에 40일이라는 기간은 얼마든지 있고, 수천 년 동안에 40일은 수없이 반복되었지만, 부활 후의 40일은 그처럼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 기간 동안에 사도들이 예수님께서 어떤 분이신가를 깨닫고 전통적인 메시야관에서 벗어났기 때문입니다. [참조. 김홍전, 『내 증인이 되리라』(사도행전 강해 1), 제3강, “부활 후 40일의 의미”, 특히 64-65, 70쪽.]
로마 교회의 사순절은 복음을 가립니다. 사람의 모범과 선행을 강조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로마 교회와 비슷한 사순절만 지키고 성경적 사순절을 모른다면, 또한 수난은 강조하지만 부활은 덜 강조하고, 더 나아가서 승천일과 오순절에 대하여서 관심을 기울이지 않는다면, 그러한 개인이나 교회는 어린양의 혼인 잔치와도 무관한 것이 아닌가 하는 두려운 마음이 들기도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