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인 바울이 편지한다”(딛 1:1 상반절, 표준신약전서).

1. 디도서

신약성경은 모두 27권이다. 복음서 네 권과 역사서와 묵시록이 각각 한 권씩 있고 나머지는 모두 서신서(편지 글)이다. 다 아는 사실이지만, 서신서는 책 권수는 많으나 분량이 복음서보다 많은 것은 아니다. 그중에 서신서는 단순히 문안하는 것 이상의 목적을 두고 쓴 것이다. 편지이니만큼 자연히 받는 대상이 있겠는데, 그게 교회일 수도 있고 어느 개인일 수도 있다.

우리는 어느 교회로든지 아니면 어떤 사람 앞으로 보낸 편지 글이 포함된 신약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는다. 편지 글은 보통 첫 머리를 인사로 시작하는데, 그 인사 내용은 장중하면서도 전체 내용과 관련하여 필요한 말을 담고 있다. 그중에서도 편지를 쓰는 자기 자신에 대한 소개가 인상적이다. 특히 바울 서신에서 그런 예들을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전통적으로 디모데전후서와 디도서를 일컬어 ‘목회 서신’이라 부르는데, 대체로 그런 분류를 익숙하게 받아들인다. 그러나 과연 디모데전후서는 디모데에게만, 그리고 디도서는 디도에게만 보낸 개인 서신으로 그치는 것일까? 이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은 한 사람 이름 앞으로 보낸 이 편지 글들을 어떻게 받아들여야 할까? 이를 알기 위해서는 신약 성경을 전반적으로 이해해야 한다. 그 가운데 있는 어느 한 권만을 따로 떼어 공부해서는 그 내용을 다 깨닫기 어렵다.

디도서의 시작을 보면 이 글을 쓰는 자신이 누구인지를 밝히는데, 먼저 ‘바울’이라는 자기 이름을 말하고 이어 자신은 ‘하나님의 종’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라 하였다. 바울 선생이 서신서 첫 머리에서 자신을 이렇게 소개하는 것은 새삼스러울 것이 없다. 그렇지만 바울이 쓴 다른 서신서와 비교하여 디도서의 인사말에 특이한 점이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이다. 바울이 자신을 일컬어 ‘그리스도의 종’이라 한 적은 있지만, 여기에서처럼 ‘하나님의 종’이라고 한 것은 이 디도서가 처음이자 마지막이다. 그레데 섬에 남아 사역하고 있는 디도와 그곳 교회들에게 보낸 글에서 바울 선생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소개한 까닭은 무엇일까? 자연스럽게 나온 말일 수 있지만, 의미 없는 말이거나 생각 없이 한 말은 아닐 것이다. 여러 성경 해석자들은 나름대로 그 이유가 됨 직한 것을 밝힌다. 그러나 ‘꼭 그렇다’고 말하지는 않고 ‘그렇지 않겠는가’ 하는 식으로 설명한다.

2. 하나님의 종

누가 하나님의 종일까? 바울 선생처럼 하나님께로부터 크게 쓰임을 받은 위대한 분만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을까? 또 우리 시대에는 목사라야만 하나님의 종이고, 그 가운데서도 모든 사람이 인정하고 하나님께서도 인정하신다 할 만한 훌륭한 분이어야 ‘하나님의 종’이라 할 수 있을까?

여기서 바울 선생이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했을 때는 앞에 열거한 식으로 자기를 평가하고 인정해서 그렇게 표현한 것은 아닐 것이다. 그러나 디도서를 ‘목회 서신’이라고 부르면서 바울 선생이나 디모데나 디도를 이 시대 목회자들의 한 표본으로 인정하고 이 편지를 주고받은 양측을 ‘목회자’로 한정해서 본문을 해석하려고 한다면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에 대한 오해가 여전히 계속될 것이다.

신자는 하나님 아버지를 ‘주’(主)로 인정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천지와 그 속에 있는 만물들을 다스리시는 주시다(시 86:8-10; 95:3-6).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엄위 앞에 숨을 수 없다(시 139편). 그러니 무엇이든지 누구든지 하나님을 ‘주’로 인정해야 할 것이고, 하나님을 ‘주’라 부른다면 그 피조물의 위치는 당연히 ‘종’의 자리이다. 그러나 신자들은 이러한 하나님을 ‘다스리시는 주’로만이 아니고, 또한 ‘구주’로 믿는다.

“너희가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사람의 종이 되는 줄을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죽음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른다. 내가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그것은 너희가 죄의 종이었으나 너희를 맡은 교훈의 규범을 너희가 마음으로 순종하여 죄에서 해방되어 의의 종이 되었기 때문이다”(롬 6:16-18).

신자는 처음 구원받았을 때로 돌아가 하나님과 주종의 관계가 어떻게 맺어졌는지를 기억해야 한다. 주께서 구원해 주셨을 때 비로소 자기가 죄의 노예 상태 가운데 있다가 자유를 얻었다는 것을 깨닫는다. 이런 깨달음은 ‘아, 나는 이제껏 죄의 종이었구나’ 하고 탄식하게 한다. 깨달음은 탄식하게 하는 데 그치지 않고, 죄의 종이었던 내가 자유함을 입었으니 이제는 어떻게 살아가야 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그 결과, 자유함을 주시려고 대신 값을 치르신 그분을 나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이 순리이다. 나를 구원하신 그분을 당연히 나의 주인으로 인정하고 모시는 것이다. 이렇게 주종의 관계가 맺어졌다.

“너희가 죄의 종이었을 때에는 의에 매이지 않았었다. 그러면 그때에 너희가 무슨 열매를 거두었더냐? 지금은 너희가 그 일들을 부끄러워한다. 그것은 그 결국이 죽음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을 위한 열매를 맺고 있는데 결국은 영원한 생명이다”(롬 6:20-22).

그레데에 있는 신자들은 그런 면에서 바울 선생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종이다. 바울 선생은 자신을 ‘하나님의 종’이라 일컬어서 그레데에 있는 신자들과 자신이 하나님 앞에서 다르지 않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다. 즉 이 편지를 받아야 할 그레데의 신자들을 높이며 따뜻한 마음으로 품고 있다. 결코 ‘하나님의 종’이라는 말로 거스르는 자나 반대자들을 누르려는 것이 아니었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의 종인 줄 알았고, 종노릇하기를 기뻐하였다. 이처럼 종은 종노릇을 해야 종이다. 그레데에 있는 신자들도 자신처럼 하나님의 종이라는 것을 깨닫고 종으로 살기를 바라서 자신도 ‘하나님의 종’인 것을 밝힌 것이다. 그러나 또한 바울의 직분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도이다. 다 함께 죄의 종에서 의의 종이 되었지만, 직분은 그리스도의 사도라는 것이다. 이어 3절까지 자신의 사도됨에 대해 말한다. 하나님의 종에 대한 설명은 없다. 자신의 직분에 대해 구주 하나님의 명령에 따른 하나님의 권위를 전한다.

우리는 이 ‘계시의 말씀’을 여전히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야 한다. 우리가 믿는 대로 하나님의 말씀에는 권위가 있다. 그렇지만 이 권위 있는 말씀을 가지고 사람이 권세를 부려서는 안 된다. 성신님께서 이 말씀과 더불어 우리들에게 역사해 주시기를 바라야 한다. 이 편지를 쓴 그때만이 아니라 오늘 우리에게도 같은 의취로 말씀하신다는 사실을 기억하고 그 뜻을 찾고자 겸손히 구할 때 깨닫게 하실 것이다. 우리도 바울과 그레데 교회의 신자들처럼 ‘하나님의 종’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