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약출판사 창립 20주년을 맞이하여 우리는 함께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고 있습니다. 교회가 힘써야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주님을 의지하면서 한 걸음 내디딘 것인데 20년 동안 70종의 책을 30여만 권 출간했습니다. 그 사이에 교회 안팎에는 큰 변화가 있었지만 주님의 은혜로 이 자리까지 이르렀습니다. 이러한 자리에서는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돌아보며, ‘왜’ 그러한 은혜를 주셨고, 이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를 함께 생각하는 것이 좋을 것입니다.

1. ｢성약출판소식｣ 창간호와 『성탄절 강설』의 출판 기념회

주님께서 주신 은혜를 쉽게 아는 방법은 처음을 돌아보는 것입니다. 이 자리에 그 당시에 나온 두 문서를 가지고 나왔습니다. 먼저는 1986년에 간행된 ｢성약출판소식｣ 창간호이고 다음은 역시 같은 해에 있었던 『성탄절 강설』의 출판 기념회 초청장입니다.

“성약출판소식을 내면서”라는 글에서 당시의 편집인인 최낙재 목사님은 성약출판의 의의와 수고를 다음과 같이 밝혔습니다.

……교회는 진리의 기둥과 터로서 진리를 높이 또 널리 선양(宣揚)한다. 강단은 이 일에 비길 데 없는 자리를 차지한다. 글과 책은 보배로운 소식이 흘러 떠내려가는 데에서 붙잡아 두고, 또 널리 보내기도 한다. 이런 필요를 보고 복음 전파가 성의(聖意)임을 깨달은 성도들의 성원(聲援)으로 성약출판은 탄생되었다. 우리 구주 하나님의 성실하심은 다함이 없어서 20세기가 저물어 가는 이 세대에서도 하나님의 말씀이 온 땅에 두루 퍼지게 하실 줄을 믿으며 성약출판은 이 거룩하신 뜻에 종노릇하기를 원한다.

문명의 발달로, 흘러가는 음성을 붙잡아 활자화하는 일이 사람의 손 안에 있게 되었으나, 힘 드는 과정과 거기에 소요되는 시간을 뛰어넘을 수는 없다. 하나님의 복된 말씀이 글로, 책으로 나가는 것도 마찬가지이다. 아무리 귀중한 생명의 말씀이고 시급하다 해도 거쳐야 할 손은 거치고 기다려야 할 시간은 기다려야 한다. 예수께서 유다로부터 갈릴리까지 오르고 내리는 양장(羊腸)의 길을 한 발 한 발 걸어가시고 행로에 피로하시면 쉬어도 가셨다. 우리인들 거쳐야 할 과정을 생략할 수 있겠는가?……

성약출판사가 단순히 기독교 서적을 제작 판매하는 곳이 아니라 이 땅에 복음을 전하시려는 하나님의 거룩한 뜻에 종노릇하기를 원하여서 성도들의 후원으로 시작한 사실을 밝혔습니다. 또한 출판의 수고를 예수님께서 구불구불한 길을 한 걸음 한 걸음 옮기신 것에 비유하면서 이 일로 수고하는 분들을 격려하셨습니다. 주님의 발걸음을 생각하면서 한 걸음씩 내디뎠지만 주님의 복 주심으로 오늘 여기까지 이른 것을 생각하니 창간사의 글이 새롭게 다가옵니다.

두 번째는 1986년 11월에 있었던 『성탄절 강설』의 출판 기념회 초청장입니다. 1984년에 출판사를 시작할 때는 주님께 의탁하면서 작게 시작했고, 2년이 지난 다음에 주님의 은혜를 확인하면서 교회적으로 출판 기념회를 가졌습니다. 지금 그 초청장을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에게 복사해서 나누어 드렸는데, 타자기로 쳐서 마스터 인쇄한 것입니다. 한자(漢字)는 손으로 써서 넣었는데 펜글씨에 숙련된 사람의 솜씨입니다. 달필이지만, 초청장의 전체 모습은 어설프게 보입니다. “모시는 말씀”을 읽어보면, 지금과 맞춤법이 다른 것도 있고, 또 동신제현(同信諸賢), 상사(商事), 왕림(枉臨) 등 요즈음에는 잘 사용하지 않는 단어도 있습니다. 초청장의 형태나 용어를 보면 격세지감(隔世之感)이 듭니다.

“대내외적으로 혼란에 혼란이 가중되는 상황이지만” 하면서 말문을 여는데, 1986년은 참으로 앞이 보이지 않는 때였습니다. 1984년에 출판사 허가를 얻으려 했지만 5공화국 때에는 허가를 내 주지 않았습니다. 어렵사리 전주에서 출판사 등록을 하고 서울에서 편집과 인쇄의 일을 했습니다. 출판사가 있는 서울역 주변에는 항상 최루탄 가스가 가득했습니다. 제가 가지고 있는 원본에는 최루탄 냄새가 배어 있는 것 같습니다.

대내외적으로 어두운 상황이었지만, 주님께서는 이러한 시기에도 교회에 ‘계시의 해명자’를 세우셨고, 성약출판사는 복음 전도자의 심정을 품고 그 일에 자신을 드리면서 나아왔습니다. 출판사 설립 2년 후에 열렸던 출판 기념회의 촌스러운 초청장이 주님께서 그동안 우리에게 주신 은혜를 조용히 상기시켜 줍니다.

2. 왜?

성약출판사가 설립되기 이전에는 김홍전 목사님의 책들을 다른 곳에서 출판했습니다. 1982년에 ꡔ찬송ꡕ이 나왔는데, 인쇄한 곳은 평화사이고 총판은 종로서점입니다. 그런데 그 두 곳은 모두 역사 속으로 사라졌습니다. 20년이 지나면서 많은 출판사들이 문을 닫았습니다. 그러나 성약출판사는 70종의 책을 30여만 권이나 출간했습니다. 왜 그렇겠습니까? 영업부에 계신 분들이 성실하게 일하시지만, 영업과 광고를 잘해서 그런 것은 아닐 것입니다.

우리 모두는 그 답을 알고 있습니다. 성약출판사가 복음 전도자의 심정을 품고 하나님의 말씀이 땅에 전파되는 일에 종노릇해 왔기 때문입니다. 단순한 출판이 아니라 교회의 복음 전파에 종노릇하기를 원하였고, 종의 심정으로 그 일을 하였기 때문에 교회 안에서 함께 복을 받았습니다.

대전에서 목회하는 사람으로서 저는 성약출판사가 복음의 종노릇을 잘하고 있다고 증언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성약출판사의 책을 읽고 성은교회를 찾아오는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입니다. 이 자리에 함께 참여하신 독립개혁장로회의 목사님들도 동일한 증언을 하실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주님께서 독립개신교회의 교회들에게 복을 주시기 때문에 성약출판사도 그 안에서 함께 복을 받고 있습니다. 마치 근실하게 사는 신자들이 주류(主流)를 이루는 교회는 나라의 경제적 위기 속에서도 큰 영향을 받지 않고 지나는 것처럼, 성약출판도 교회와 함께 그리고 교회 안에서 주님의 복을 받고 여기까지 이르렀습니다.

3. 어떻게?

주님께서 우리에게 이러한 은혜와 복을 주셨는데,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되겠습니까? 주님의 은혜와 복 주심이라고 말하고 그냥 헤어진다면 오늘 모임의 의의는 반감될 것입니다. 은혜의 선물(Gabe)은 우리에게 사명(Aufgabe)으로 다가옵니다. 우리에게는 뒤를 돌아보면서 힘쓸 것이 있고 앞을 바라보면서 노력할 것이 있습니다.

1) 고전(古典)을 공부하듯이

과거를 돌아보면서 힘쓸 것이 있다고 했는데, 그것은 앞의 “모시는 말씀”에서 ‘계시의 해명자’로 지칭된 고(故) 김홍전 목사님에게서 잘 배우는 것입니다. 그분은 우리가 잘 아는 것처럼, 주님께서 다방면의 은사를 갖추어 주신 분이고 그것을 주님께 드려서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주님께서 교회에 말씀의 사역자로 주신 분에게서 잘 배워야 합니다. 지금까지 출간된 책을 탐독하고 공부해야 하는데, 그 책의 어휘는 방대하고 사상은 호방하기 때문에 쉽게 읽을 수 없습니다. 젊은 사람들에게는 더욱 그렇습니다.

성은교회의 어떤 교우(敎友) 이야기를 하나 소개하겠습니다. 그는 어렸을 때부터 축구 선수로 생활하다가 부모님과 함께 성은교회에 가입하면서 진로를 바꾸어 집 근처의 대학에 진학했고 지금은 군 복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청년은 말하기를, 자신은 운동만 하느라 공부를 소홀히 해서 제대 후에 10년 쯤 공무원 시험을 준비해서 공무원이 되고 싶다고 했습니다. 공무원은 주일에 예배드리는 것이 보장된 직업이기 때문이라고 그 이유를 덧붙였습니다. 저는 그 청년에게 어떤 사람이 축구 선수가 되기 위해서 20세에 운동을 시작하면 가망 없는 일인 것과 마찬가지로 사람이 제대 후에 10년을 목표로 공무원 시험 준비를 하는 것은 지혜로운 일이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대신 다른 현실적인 직업을 찾아서 건실한 가정을 세우는 것이 좋은 교인이 되는 길이라고 지도했습니다. 그리고 공부를 하되 공무원 시험 공부를 하는 대신 김 목사님의 책을 일주일에 한 강씩 요약하면서 공부할 것을 권했습니다. 그 말을 들은 그는 얼굴이 밝아졌고 그 뒤로 김 목사님의 책을 꼼꼼히 요약하면서 재미있게 공부하고 있습니다.

우리의 삶이 향방이 없는 것이 아니므로 공부도 방향이 있어야 하는 것처럼, 좋은 교인으로 살기 위해서 고 김홍전 목사님의 책을 부지런히 공부하도록 다음 세대의 젊은이들에게 권해야 할 것입니다. 고전을 공부하는 것처럼 성약출판사의 책들을 부지런히 공부해서 우리의 것으로 삼아야 합니다. 그래야 주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은혜가 다소 어려운 어휘나 사상 때문에 소실되지 않고 다음 세대에 창조적으로 전수될 수 있을 것입니다.

2) 사시(社是)와 헌장의 정신을 따라

우리는 앞을 바라보면서 힘쓸 것이 있습니다. 독립개신교회의 기초를 놓고 세 교회를 세우는 일에 쓰임을 받은 고 김홍전 목사님께서는 지금 이 땅에서의 일을 마치고 주님의 품에서 쉬고 계십니다. 그러나 주님의 교회는 계속 전진해야 합니다. 주님께서 쓰신 사역자에 대해서는 기독론적이고 교회론적으로 이해하면서 교회는 계속 앞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어떻게 전진할 것인가는 독립개신교회의 헌장에 명시되어 있고, 또한 성약출판사는 사시에서 그것을 잘 요약하고 있습니다. 독립개신교회의 헌장 2조의 1항에서 “우리는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主流)의 신앙과 그 신학을 우리들의 시대에 받은 자로서 또한 이것을 다음 시대에 이어 줄 자로서의 교회이어야 할 것을 명심하고 이에 주력한다”고 밝힙니다. 성약출판사의 책이나 출판소식에 명시된 성약출판사의 사시는 “역사적인 개혁 신앙과 그 신학을 오늘날 이어받고 전파하며 전수하는 일에 작은 도움이라도 되기 위하여 서적을 출판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헌장 2조 1항에서 언급한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그 신학’을 ‘역사적인 개혁 신앙과 그 신학’으로 바꾸어 표현하고 있습니다.

헌장 2조 2항에서는 교회가 택하고 있는 신앙고백서를 열거하여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그 신학’이 무엇인가를 밝힙니다. 이어지는 3조 1항에서는 하나님의 말씀과 성신의 역사(役事)하심에 의지하여 성도의 교제의 본의를 구현한다고 천명하여 신앙고백서의 정신이 교회의 강설과 밀접한 관련이 있음을 밝힙니다. 순서를 바꾸어 표현해 보면, 교회에서 베풀어지는 말씀(3조 1항)이 교회적인 신앙고백(2조 2항)으로 표현되면서 함께 가는 것이고, 그것이 바로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의 신앙과 그 신학’(2조 1항)인 것입니다.

‘역사적인 개혁 신앙과 그 신학’을 표방하는 성약출판사는 사시에 부합하게 금년에 ꡔ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ꡕ을 출간했습니다. 주님께서 힘을 주시는 대로 앞으로 다른 고백서들을 간행하는 일에도 힘을 기울여야 할 것입니다. 또한 새로운 시대에 내려 주시는 말씀도 부지런히 받고 나아갈 뿐 아니라 주님의 인도하심을 따라서 이 세대와 후대에 전하며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성약출판사가 교회의 진행과 함께하고 그 안에서 복을 받았기 때문에 앞으로도 교회에 내려 주시는 복을 기대하고 그것을 펼치는 데 종노릇한다면 주님의 복 주심을 더 크게 기대할 수 있을 것입니다.

4. 2014년을 기대하며

1986년의 초청장과 2004년의 초청장을 비교하면 격세지감이 있습니다. 설립 30주년이 되는 2014년에는 어떤 모습이 될지 우리로서는 다 알 수 없습니다. 다만 교회의 진행과 함께 주님의 복 주심을 기대할 뿐입니다.

전도자의 심정으로 이 일에 자신을 다 드리면서 조용히 정진하시는 출판사 직원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리고 우리의 앞길도 주님의 손에 의탁합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