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탁월한 과학논평서이다. 과학자가 신학책을 썼다. 이것은 한국 교회사의 일대 사건이다. 이 때문에 신학은 알고 과학에는 문외한인 평자는 곤란을 당한다. 케플러(1571-1630)라는 한 교인은 신앙과 이에 근거한 과학 연구 때문에 당대의 어떤 교회에서도 환영을 받지 못하고 나그네의 설움과 고난을 받아야 하였다. 케플러는 루터교회에서 설교를 들으면서 과학과 천문학을 새롭게 이해하기 시작하였고, 칼빈의 성찬 이해를 받아들여 가톨릭교회와 루터파 교회로부터 동시에 버림을 받았다. 그러면서 저자는 성찬을 아무렇게나 행하고 타락시키는 우리 시대의 교회를 향하여 경고한다. 목사인 서평자는 이래저래 몸 둘 바를 알지 못한다.

케플러는 갈릴레오와 동시대를 산 사람으로서 그와 함께 코페르니쿠스의 지동설을 과학적으로 검증하여 근대 과학의 토대를 놓은 인물이다. 티코 브라헤의 천문 관측 기록을 검증하고 계산하여 발견한 그의 세 가지 법칙(타원 궤도의 법칙, 면적 속도 일정의 법칙, 조화의 법칙)은 오늘날도 여전히 과학적 진리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케플러는 이 세 법칙들을 통해 지동설(태양중심설)뿐 아니라 고대 이래로 가장 완전하다고 믿었던 원이 아닌 타원 궤도로 행성이 돈다는 사실을 발견함으로써 그때까지 지속되어 오던 중세의 아리스토텔레스 과학 체계를 무너뜨리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다. 그의 제3법칙은 행성의 공전 주기의 제곱은 타원 궤도의 장축의 세제곱에 비례한다는 것으로 뒷날 고전 역학의 핵심인 뉴턴의 만유인력(萬有引力) 법칙의 기초가 된다. 케플러의 세 가지 법칙들은 뉴턴의 역학으로 정확히 설명된다.

플러는 루터파 목사가 되려고 튀빙겐대학에서 공부한다. 그의 고향은 인구 200명에 불과한 가장 작은 황제 직할 도시로서 황제의 종교인 가톨릭을 따라야 했으나, 극소수의 루터파 교인은 근근이 순회 설교자의 설교와 성례를 부정기적으로 받을 수 있었다. 이것이 가능하였던 것은 이 소도시가 1534년에 루터파를 선언한 울리히 공작이 통치한 뷔르템베르크 공국 안에 위치하였기 때문이다. 울리히와 그의 아들 크리스토프 공작은 루터의 가르침을 따라 튀빙겐대학의 교육을 개혁하면서 헬라어와 라틴어, 천문학 등 교양 과목을 강화한다.

그런데 튀빙겐대학은 루터라는 잣대로 가톨릭과 싸웠고, 동시에 같은 잣대로 칼빈주의자들을 탄압하였다. 그 선봉에는 케플러와 동향인 브렌츠(1499-1570)가 있었다. 루터는, 미사 중에 떡과 포도주가 예수님의 몸과 피로 변한다는 가톨릭의 화체설(化體設)을 거부하고(150), 편재설(공재설), 즉 ‘부활하신 그리스도는 신성뿐만 아니라 인성으로도 편재하여 성찬에 공재한다’고 주장한다(49). 뿐만 아니라  루터는 성찬은 ‘주의 죽으심을 기념할 뿐이라’는 쯔빙글리의 기념설도 거부한다. 그러나 칼빈은 위 세 입장과는 달리 빵과 포도주가 물질 그대로 있으면서 그리스도의 몸과 피를 표시하며, 우리는 믿음으로 ‘하늘에 계신’ 그리스도와 연합하여 모든 은혜를 받는다고 가르친다(50). 케플러는 이미 중등 신학교에 다닐 때에 이러한 칼빈의 성찬 이해가 성경에 비추어 옳다는 결론을 내렸고, 튀빙겐대학 학생 시절에는 성찬론의 이해는 그리스도의 인격에 대한 이해로서 루터보다는 칼빈주의의 입장이 옳다는 확신을 가졌다(73).

1594년 케플러는 가톨릭 군주가 통치하는 오스트리아 그라츠시(市)의 수학교사로 청빙을 받는다. 그때부터 그는 가톨릭과 루터파로부터 동시에 버림을 받는 나그네 여정을 시작한다. 고대교회의 교부들을 읽고 루터 이전에는 공재론이 없었다는 것을 확인하고, 칼빈의 입장이 옳다는 것을 더욱 확신한 케플러로서는 루터파의 협화 신조에 서명할 수 없었다. 이것은 양심의 문제였다(169). 이 때문에 튀빙겐대학은 그의 교수 임용을 거절하고, 그의 귀국은 영구히 막히고 만다. 이런 상황에서 그라츠시(市)는 케플러를 추방한다. 루터파의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Confessio Augustana)를 고백하기 때문이라는 공식 이유였다. 이렇게 해서 케플러는 루터파 교회와 가톨릭교회로부터 동시에 추방되었다.

1627년에는 황제가 로마교로 개종을 전제로 하여 프라하대학에서 교수 자리를 제안하자 거절하였다. 그 이유는 그는 유아세례를 받은 때로부터 아우구스부르크 신앙고백서를 따르는 보편교회(가톨릭교회)를 떠난 적이 없기 때문이라고 하였다. 로마교는 신앙의 요지를 세우는 이가 무흠한 교황이라고 하는데 자기 안에는 성신이 계시기 때문에 성경을 읽고 신앙 문서들을 읽을 때 자신을 인도할 교황과 같은 이를 필요로 하지 않으며, 또 자신이 속한 교회의 공재설도 거부한다고 하였다. 케플러가 이렇게 하는 것은 교회의 머리이신 그리스도만을 따르기 위함이다. 그는 보편의 교회에 남기 위하여 황제의 배려도, 천문학까지도 포기할 수 있다고 하였다! 이미 그는 고향과 루터교회, 그라츠와 가톨릭교회로부터 버림을 받았고 더 이상 갈 곳이 없었다. 린츠로 가서 전처의 재산을 찾으려고 하였으나, 레겐스부르크에 잠시 거하다가 1630년 11월 15일에 59세로 나그네 인생을 마친다.

저자가 케플러를 소개하면서 즐기는 모습이 역력하다. 이 책은 케플러의 전기이다. 저자는 신자이고 과학자이다. 케플러 또한 신자이고 과학자이다. 케플러는 과학 논문이나 저술에서 신앙적 고백을 넣고 신앙고백으로 결론을 맺는다. 저자는 현대를 살고 있다. 지금 과학계는 신앙고백적 논문을 수용하지 않을 것이고 설령 수용하여도 조롱거리로 여길 것이다(176, 107, 115). 이런 시대에 과학자로 살면서 저자는 신자의 신분을 결코 잊지 않고 있다.

저자는 신앙으로 과학을 경고한다. 현재 미 항공우주국은 2009년부터 무인 우주선에 케플러의 이름으로 명명된 망원경을 부착시켜 10만개 정도의 별을 관측하여 생명체가 존재하는 행성을 찾으려는 ‘케플러 계획’을 수행하고 있다. 저자는 이 계획이 케플러의 업적을 기린다고 하지만, 생명이 하나님의 창조가 아닌 우주 진화의 결과임을 증명하려는 시도이기 때문에 케플러의 과학 활동의 목적과는 완전히 동떨어진 계획이라고 일갈한다.

과학자인 저자는 신앙과 교회에 대해서도 경고한다. 갈릴레오와 달리 케플러의 과학적 업적은 상대적으로 덜 알려졌다. 게다가 그는 개신교 안에서도 ‘성찬과 같은 하찮은’ 교리 때문에 더 큰 과학적 업적을 성취할 기회를 번번이 놓쳐 버린 어리석은 사람으로 인식된다. 그러나 저자는 루터파 교인으로 평생을 산 케플러가 자기 교회로부터 핍박을 받은 이유가 성찬 때문이라는 사실이 신앙 양심의 문제임을 밝혀 ‘이 성찬을 하찮은 의식으로 여기고 그 의미조차 제대로 모른 채 아무렇게나 행하고 타락시키고 있는 우리 시대의 교회’(49)를 질타한다. 오늘날 교회 안에 들어온 종교다원주의에 대한 저자의 경고도 그러하다(115).

저자는 종교개혁 당시의 성찬 논쟁을 소상하게 이해하고 설명한다. 케플러의 인생 여정에서 성찬의 의미가 결정적으로 중요하기 때문에, 과학자인 저자가 신학자 못지않게 성찬을 설명하는 데에서, ‘학자의 교양’을 아낌없이 보여 준다는 점에서 저자는 한편으로는 과학자요 다른 편으로는 신학자이다. 그렇다보니 케플러의 천문학적 업적뿐만 아니라 본서의 신학적 설명도 기본 지식 없이는 이해하기가 쉽지 않다. 개혁자들과 고대 교회 교부들의 성찬 이해, 초기 루터교회의 역사와 협화 신조와 루터파 신학자들에 대한 이해, 종교개혁 이후 케플러의 생애 동안의 유럽의 정치와 교회와의 관계, 튀빙겐대학이나 오스트리아 교육개혁의 역사와 내용, 그리고 케플러가 나그네 생활을 하였던 지역에 대한 설명을 보면, 저자는 학자로서 ‘교양’을 풍성하게 구비하고 있다.

이 교양에 대한 저자의 애틋한 아쉬움은 한국의 대학과 신학대학원의 교육 현실을 지적하는 데에서도 잘 나타난다. 저자는 교양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이해하기 위하여 필요하며, 하나님의 말씀에 무식한 당시 로마 가톨릭 성직자들과는 달리 “수(數)에 연연하지 않고 실력 있는 자로 하나님의 종을 세우려는 개혁자들의 정신”(62)을 강조한다. 여기에서도 말씀 사역자의 소명 확인의 중요성과 아울러 실력 없이 양산된 목사들로 인하여 한국교회 안에 혼란과 타락이 가중되고 있다고 비판한다.

저자는 루터 선생을 따랐던 많은 이들이 하나님께서 주신 큰 선물인 루터를 오히려 넘어지게 하는 걸림돌로 만들고 급기야는 루터의 가르침과 다른 방향으로 교회를 세워 나갔다고 지적한다(65-69). 모든 공직자와 교사에게 루터교 신조 서명을 요구함으로써, ‘성경 전체’(tota scriptura)의 교훈을 루터의 가르침으로 국한해 버림으로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이라는 루터의 가르침에서 오히려 벗어났다는 것이다. 또 루터교회를 하나로 묶으려고 시도한 신앙고백이 교회의 통일이 아니라 오히려 하나 된 하나님의 교회를 분열시키는 결과를 가져왔고, 루터를 사도같이 높이는 잘못을 저질렀다고 말한다. 그러나 자기를 평생 괴롭힌 루터파의 편협함에도 불구하고 교회를 바로 세우기 위해 기꺼이 고난을 감수하며 살았던 케플러의 공교회적 믿음에는 찬사를 보낸다.

케플러의 공교회적 자세는 교황 그레고리 13세가 1582년에 공표한 새로운 달력에 대한 자세에서 잘 볼 수 있다. 교황은 춘분을 3월 21일경으로 고정하기 위하여 10일을 뛰어넘는 새로운 역법을 도입한다. 이런 유용한 개혁을 튀빙겐대학이 로마교회가 도입하였다는 이유로 거부하면서 개신교의 독립성을 유지하려는 것을 케플러는 편협한 생각이라고 비판한다(103). 세례를 받아 이미 보편 교회에 속한 것을 확신한 케플러는 그리스도를 순종하면서 때로는 로마교회, 때로는 루터교회의 교리를 비판하고 특혜조차 거부하는 고난의 길을 걸었다. 고난 가운데서도 그의 소망은 그리스도를 높이는 그리스도인이 되는 것이었다(171).

저자는 이 책을 통하여 신앙과 학문, 신앙과 직업의 밀접한 관계를 잘 정리한다. 케플러의 과학은 종교개혁의 신앙으로 세워진 교회가 있어서 가능한 일이었다. 자신의 교회를 배반하라는 황제의 개종 요구에는 자신에게 가장 소중한 천문학까지라도 포기하겠다는 자세로 맞섰다. 또 자신의 교회일지라도 하나님의 말씀에 반(反)할 때는 자신의 시간을 바쳐 교회를 바로 세우고자 하였다는 점도 주목한다. 즉 교회의 강단을 통해 주시는 그리스도의 십자가와 부활의 바른 복음만이 바른 과학의 근거가 된다. 세상과 시대를 이기고 나가야 하는데 이 세상과 타협한 교회의 가르침으로는 그 일이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개혁자들은 제도의 개혁보다 ‘전인의 개혁’을 겨냥하였고, 교육과 삶의 목표는 ‘하나님의 영광’이었음을 잘 보여 준다(74, 106).

저자는 케플러의 생애와 그 업적을 단지 과거 역사적 사실로만 다루고 있지 않는다. 저자는 이 시대에서도 케플러처럼 믿음으로 그리고 신앙고백으로 과학을 연구하려는 내적 성찰을 잘 담아낸다. 본서는, 과학에서도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을 추구하는 저자가 한국 기독교 역사에서 신앙과 학문, 교회와 직업의 관계를 내적으로 일관성 있게 매우 철두철미하게 그려 낸 첫 수작(秀作)이다. 저자의 앞으로의 연구와 교수 사역은 필시 이를 증거 하는 귀감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