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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 101호

 

『믿음의 기초를 돌아보라』를 읽고
유원달  (성약교회 장로)

 

저자는 책의 서두에서 교회가 때때로 믿는 도리의 기본을 반성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한다. 그 이유는 교회가 위기에 봉착하였을 때 참된 기독교의 능력을 발휘하지 못하고 타락하는 것은 예수 믿는 도리의 기본이 확실하지 못함이고, 신자 개인이 참된 신앙생활에서 멀어졌음에도 불구하고 종교적인 형식만을 쥐고 만족하는 것도 믿는 도리의 기본이 제대로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라고 한다. 참으로 오늘의 교회에도 필요한 시의적절한 말이다. 이 책을 몇 차례 읽은 필자로서는 어느 내용하나 소홀히 다룰 것이 없고 다 마음에 새겨야 할 것이라고 여긴다. 그러나 나의 부족한 역량으로는 모든 내용을 다 소화하기 힘들고 한 가지라도 좀 더 구체적으로 이해하여 내가 속한 교회에서 적용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유익하겠다는 생각을 하였다. 그래서 본 글에서는 저자가 제1강에서 중요하게 다룬 하나님께서 인류를 공동 운명체의 사회적 존재로 두셨다는 말을 좀 더 깊이 음미하여 보려고 한다.

 

저자는 하나님께서 인류를 내실 때 개인적인 존재로 두시지 않고 공동 운명체 안에 사회적 존재로 두셨다고 한다. 이러한 사실을 알게 하는 일이 처음부터 있었는데 그것은 첫 사람 아담 한 사람의 범죄로 인하여 모든 사람이 죄인 된 일이라고 하였다. 이러한 사실은 처음 사람 아담이 독립된 개인이 아니고 장차 올 전 인류의 대표로서 하나님 앞에서 책임과 의무를 가지고 있었다는 것과 인류는 그렇게 사회적인 존재로 지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인류를 이렇게 공동 운명체로 지으신 목적은 인류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영광과 같은 영광을 나누고 그리스도가 하나님의 후사로서 만물을 받은 것과 같이 그리스도와 더불어 상속자가 되어 만물을 상속받는 영광 가운데 들어가게 하려는 것이라고 하여 인류의 구원의 완성이 개인적으로 이뤄지는 것이 아니고 교회적으로 이뤄지는 것임을 말한다. 이는 나만 예수 잘 믿고 천국 가면 된다는 독야청청(獨也靑靑) 식의 구원관이 아니라 교회라는 전체의 완성 없이 나 개인의 완성은 불가능하다는 생각을 갖게 한다.

 

대부분의 신자들은 구원을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하지 교회적으로 생각하는 것에는 익숙하지 않은 것 같다(참조. 22). 이는 구원에 대한 개념이 그만큼 풍성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볼 수 있을 것이다. 성도의 구원이 개인적이지 않고 교회적이라는 저자의 생각은 성경을 통해서 확인할 수 있다. 죄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을 요한복음 316절에서는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하여서 믿는 자가 영생을 얻는다고 한다. 우리가 구원을 개인적인 것으로 생각한다는 것은 이 영생의 생명을 개인적인 생명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나의 생명이 이제 영원한 생명이 되었다는 정도의 이해이다.

그러면 성경은 이 영생을 어떤 생명으로 말하는가? 요한일서 5:11에서 또 증거는 이것이니 하나님이 우리에게 영생을 주신 것과 이 생명이 그의 아들 안에 있는 그것이니라하여서 믿는 우리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생명은 아드님 안에 있는 생명, 곧 아들의 생명이라는 것이다. 즉 아들을 믿는 자는 아들과 동일한 생명을 가졌다는 것이고 아들과 생명을 함께한다는 것이다. 그래서 바울 사도는 고린도전서 12:13에서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신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신을 마시게 하셨느니라하여 믿는 자는 성신의 세례를 통하여 그리스도와 한 몸이 되었다고 한다. 즉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구원을 받았다는 말은 그리스도의 생명에 속한 자가 되어서 이제는 그리스도와 한 몸을 이루었고, 그리스도의 지체가 되었다는 말이다(고전 12:27). 그러므로 누구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지 않은 채 별도로 떨어져서 개인적으로 구원을 받는 일은 있을 수 없다. 즉 사람이 구원을 받아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되었다는 말은 그리스도를 머리로 하는 그의 신령한 몸의 지체가 된다는 것이고, 여기서 말하는 그리스도의 몸은 곧 교회를 뜻하는 것이다(1:23). 그러므로 그리스도와 운명 공동체를 이루어 그리스도의 영광을 누리게 된다는 저자의 말은 하나님께서는 인류를 지으신 목적이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 안에서 영광을 누리게 하려는 것이라고 이해될 수 있다. 우리 믿는 자의 구원의 완성은 이처럼 개인적이지 않고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로 완성된다.

 

신자 개인의 구원이 교회의 완성과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한다면 실제적으로 오늘 이 땅의 보이는 교회에 속한 자로서 나는 어떻게 구원을 이루어갈 수 있는가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그래서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하는 말을 좀 더 이해하고자 한다. 바울 사도는 고전 12:12-14에서 몸은 하나인데 많은 지체가 있고 몸의 지체가 많으나 한 몸임과 같이 그리스도도 그러하니라. 우리가 유대인이나 헬라인이나 종이나 자유자나 다 한 성신으로 세례를 받아 한 몸이 되었고 또 다 한 성신을 마시게 하셨느니라. 몸은 한 지체뿐 아니요 여럿이니하였다. 우리 육신의 몸을 보면 여러 지체들이 모여 이루어졌듯이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도 여러 지체로 이루어졌다고 사도는 말한다. 각양각색의 사람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그리스도의 생명으로 들어와서 그리스도의 몸의 각 지체가 되었다. 전에는 서로 상종도 할 수 없는 이방인과 유대인이었고, 자유인과 노예였지만 이제 교회 안으로 들어와서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한 몸을 이루는 지체가 되었다. 이제는 따로따로 나누거나 차별할 수 없는 한 몸이다. 그러므로 구원을 이룬다는 것, 구원이 완성된다는 것은 여러 지체와 더불어 한 몸으로서의 완성을 말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또 교회가 그리스도의 몸이라고 할 때에, 그리스도는 그 몸의 머리가 되시어서 그 몸이 자라도록 하신다고 한다. 그래서 그분은 교회에 사도, 선지자, 복음 전하는 자, 목사와 교사를 주시고 교회를 위하여 봉사하게 하심으로 각 지체들로 하여금 몸의 지체로서의 제 역할을 하게 하여 결과적으로 신령한 그리스도의 몸으로 완성하게 하신다(4:11-13). “오직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 범사에 그에게까지 자랄지라. 그는 머리니 곧 그리스도라. 그에게서 온 몸이 각 마디를 통하여 도움을 받음으로 연결되고 결합되어 각 지체의 분량대로 역사하여 그 몸을 자라게 하며 사랑 안에서 스스로 세우느니라”(15-16). 교회에 속한 신자들이 그리스도의 몸인 지체로서 제 역할을 함으로써 서로 유익을 나누어 전체적으로 성장하는 것이라고 바울 사도는 말한다. 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는 머리이신 그리스도의 분량에까지 자라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머리로부터 각 지체로 생명력이 공급되어야 하는데 그 생명력의 공급은 머리로부터 각 지체에게 직접 전달되는 것이 아니라 다른 각 지체들을 통로로 하여 공급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발이라는 지체에 영양이 공급되기 위해서는 머리에서부터 발까지 연결된 각 지체들을 통하여 한다는 것이다. 즉 교회가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으로서 자라기 위해서는 각 성도들이 저 마다의 위치에서 자기의 역할을 정상적으로 발휘하는 것을 통하여 교회는 그리스도로의 생명으로 자라는 것이다. 이러한 이해를 놓고 생각하면 교회는 어떤 뛰어난 몇몇의 잘남으로 잘나지는 것이 아니라 부족해 보이는 성도라도 다 제 역할을 할 수 있게 될 때에 진정한 주님의 몸인 교회의 모습을 보일 것이라 생각한다.

 

이러한 사실을 통해서 깨닫는 바는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영생의 생명을 받아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의 한 지체가 되었을 때에 나에게는 지체로서 감당할 책임이 부과되었다는 것이다. 그 책임은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각 지체에게 공급되는 생명력을 전달하는 통로의 역할이다. 각 지체가 장성하는 데 필요한 모든 것은 각 지체가 스스로 공급하는 것이 아니라 오직 머리이신 그리스도로부터 오는데 각 지체를 통하여 전달된다는 것이다. 즉 나는 그리스도의 신령한 몸인 교회의 한 지체로서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신령한 영양을 이웃하는 지체들에게 전달할 책임이 있다. 각각의 지체가 그 책임을 성실하게 감당할수록 몸인 교회가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에까지 더욱 자랄 수 있다는 것이다. 모든 지체는 함께하는 다른 지체에 대하여 그리스도로부터 오는 신령한 것을 전달할 의무에서 예외일 수 없다. 그러므로 내 옆의 지체가 영적으로 피폐하여 그리스도의 지체로서의 신령한 역할을 성실하게 감당할 수 없다면 거기에는 나의 책임이 있는 것이지 그만의 문제가 아님을 깨닫는다. 오늘 내가 있는 곳에서 머리이신 그리스도와 동질의 생명으로 사는 삶이 나에게 있는가? 내가 지금 육으로 사는가? 아니면 머리로부터 신령한 양식을 받아 성신을 의지하여 사는가?

 

누가 그리스도의 지체로서 그 사명을 충실하게 감당할 수 있을 것인가? 우리를 불러 그리스도의 몸에 속하게 하시고 장차 그리스도의 영광에 동참하게 하시려는 하나님의 그 거룩하신 뜻을 아는 자가 되어야 하겠다. 하나님께서 창조하신 하늘과 땅에 있는 모든 것들이 주님 안에서 완성되는 그날에 주님께서 누리실 그 영광을 누리게 할 목적으로 함께 불러내신 자들이 오늘 나와 함께하는 지체들임을 아는 자가 부르심에 합당하게 지체의 사명을 감당할 것이다. 고귀하고 신령한 이 일은 나의 재능으로 감당하는 것이 아니며, 육신의 생명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주님의 생명 곧 영원한 생명으로 사는 것으로 하는 것이고, 성신께서 부여하신 은사의 분량대로 하는 것이고, 모든 겸손과 온유와 오래 참음과 사랑으로 형제를 용납하는 것으로 할 수 있다고 하니 이는 육신의 힘으로 할 수 없고 오직 성신의 도우심으로만 감당할 수 있음을 다시 한번 고백하지 않을 수 없다(4: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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