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산에는 1,700m 이상 되는 고지가 여럿 있고, 주봉인 천왕봉은 1,915m이다. 주능선인 노고단에서 천왕봉까지는 약 30km이고 등산과 하산까지 합하면 50-60km를 걸어야 한다. 산이 높은 만큼 골도 깊어서 사람들은 주로 계곡을 이용하여서 주능선에 오른다. 뱀사골, 피아골, 백무동 계곡, 중산리 계곡, 화엄사 계곡, 대성동 계곡, 한신 계곡, 칠선 계곡 등이 사람들이 많이 찾는 계곡이다. 계곡에 따라서 좀 더 완만한 곳도 있고 가파른 곳도 있지만, 어느 계곡을 택하든 간에 오르는 것은 쉽지 않다. 7-12km를 걸어야 하고 마지막에는 된비탈을 지나야 능선에 오를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1,300m 이상 되는 능선을 오르락내리락하면서 걷다 보면 여러 전망들을 즐길 수 있다. 천왕봉에서 노고단을 보는 것이나 노고단에서 천왕봉을 보는 것, 주능선에서 살짝 비껴 나 있는 반야봉에서 좌우를 보는 것, 연봉(連峰)을 오르내리면서 앞뒤를 바라보는 것은 봉우리의 수만큼 제각기 다른 즐거움을 준다. 뿐만 아니라 멀리 덕유산이나 무등산, 산 아래의 강과 들판뿐 아니라 심지어 남해까지도 볼 수 있다. 지리산을 찾는 사람이 많은 데는 다 이유가 있는 것이다.

책 소개를 지리산 등산으로 시작하는 것은 5개 장, 300여 쪽에 불과한 이 책이 큰 산과 같기 때문이다. 오르기는 힘들지만, 한번 오르면 다섯 장으로 이루어진 봉우리를 비교하면서 볼 수 있다. 고대 동방 신학의 봉우리에서 16세기 종교개혁의 전통과 19세기 독일 신학이나 현대 신학의 전통도 바라보기 때문에 이 책과 씨름할 가치가 있다. 산을 좋아하는 사람은 흔히 지리산을 몇 번 종주하였다고 말하는데, 우리도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을 종주하여야 하지 않을까?

교회사의 잊혀진 부분?

고대 교회는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와 헬라어를 사용하는 동방 교회로 나눌 수 있는데, 이 책에서는 동방 교회에서 다룬 신학적인 주제들, 곧 신학, 삼위일체, 기도, 신격화(神格化)의 네 주제를 다룬다. 네 주제 가운데 어느 하나도 만만치 않은데, 그것도 동방 교부(敎父)들을 중심으로 살펴본다고 하니, 산행 준비를 잘하든지, 아니면 아예 포기해야 할 판이다.

1장은 본격적인 산행을 위한 등산 지도와 같다. 네 가지 주제를 다루려고 먼저 동방 교부들의 생애와 신학을 살핀다. 고대 동방 교회의 신앙의 선배들을 살피되, 역사와 관계가 없는 위인전식으로 다루지 않는다. 역사 안에서 교부들의 활동을 살피는데, 특히 니케아 공회의와 콘스탄티노플 공회의를 중심으로 동방 교부들을 살핀다. 신조를 중심으로 교회사를 보아야 한다는 의식이 이러한 서술 방식에 깔려 있다.

1장을 읽으면 고대 동방 교회의 이야기가 우리의 신앙의 선배들의 이야기임을 깨닫는다. 그것은 교회사에서 잊혀진 공백기가 아니다. 그분들의 이야기를 읽으면 그분들이 고민하고 씨름한 문제가 바로 우리의 문제이고 오늘의 문제임을 깨닫는다. 1장을 읽으면 지도를 잘 챙긴 셈이 되므로 이제부터는 봉우리를 향하여 올라가야 할 것이다.

예수님은 하나님을 신학하고 성신님은 예수님을 신학하였다?

‘신학’이라고 하면 흔히 전문적인 학자들이나 목사들만 하는 것으로 생각한다. 이것은 근대의 학문 개념으로 신학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신학이라는 말은 원래 ‘신들에 대하여 말하다’는 뜻에서 나왔다. 이교적인 배경이 있는 말인데, 고대 동방 교회의 믿음의 선배들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다’와 ‘하나님에 대하여 말하다’는 의미로 신학이라는 용어를 사용하였다. 성경의 저자들이 하나님에 대하여서 말하는 것이 곧 하나님을 ‘신학하는’ 것이었고 그래서 이 신학이라는 말은 삼위일체와 관련하여서 정착하였다. 즉 예수님께서 성부 하나님을 나타내신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을 신학한 것이고, 성신님께서 예수님을 하나님으로 알리신 것은 성신님께서 예수님을 신학한 것이다.

‘신학하다’는 헬라어 동사는, 그러나 아쉽게도 라틴어에는 없고, 그 결과 라틴어를 사용하는 서방 교회에서는 그 동사가 갖는 역동성을 점차로 상실하였다. 헬라 철학에 의존한 중세에서는 그러한 철학적인 틀로 설명하는 것을 신학이라고 하기 시작하였다. 동방 교회의 역동성이 ‘신학하다’는 동사와 함께 사라진 것은 매우 아쉬운 일이다.

저자는 ‘신학’이라는 용어만을 가지고 60여 쪽이나 되는 제2장을 썼다. 저자의 끈질긴 추구력이 돋보인다. 무엇이 용어 하나만을 가지고 논문을 한 편 쓰게 하였을까? 이것은 2천 년 교회 역사에 대한 반성이다. 예배를 드릴 때 신학하는 것, 곧 강설의 말씀을 통하여서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을 듣고 찬송과 기도를 드림으로써 하나님을 향해 말하는 것이 참다운 신학이라는 것을 이야기하려고 그렇게 큰 수고를 한 것이다.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다. 이제 ‘신학하다’는 동사의 의미를 알았으므로 우리는 주님을 찬송하면서 등산을 계속할 수 있다.

성부가 근원?

이 책에서 가장 어려운 부분은 삼위일체에 대한 부분이다. 지리산에서는 백무동-한신 계곡-세석 산장으로 오르는 곳이 난코스로 알려져 있는데, 3장은 그 코스를 야간에 오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른 것은 못 보고 이마에 붙인 전조등만 의지하여서 산을 오르는 마음으로 읽어야 한다. 그렇지만 천왕봉에 올라서 일출을 보면 야간 산행의 고생이 보람으로 바뀌므로, 그러한 기대를 갖고 읽어야 한다.

물론 큰 줄거리가 있다. 325년 니케아 공회의에서 성자의 신성을 선언한 다음에 381년 콘스탄티노플 공회의에서 성신의 신성을 선언한 과정을 마음에 두고서 읽으면 줄거리를 놓치지 않는다. 카파도키아 교부들이 성부의 위격을 근원으로 삼으면서도 삼위의 동등성을 정당하게 강조하여 삼위일체론을 확립한 것이 본체론적 접근의 문제점을 어떻게 해결하였는가도 배울 수 있다. 삼위일체의 신비를 표현할 말을 찾기 위하여서 믿음의 선배가 얼마나 고투했는가를 생각하면, 난코스를 오를 용기를 가지게 된다.

한신 계곡이나 칠선 계곡은 찾는 사람이 적지만 사람의 발길이 적게 닿은 만큼 비경(秘境)도 많다. 삼위일체에 대한 3장은 어렵지만, 곳곳에 주옥과 같은 진술이 있다. “내가 한 분 하나님을 깨닫자마자 즉시 삼위의 광채에 둘러싸이며, 삼위를 구별하여 보자마자 즉시 한 분 하나님께로 인도함을 받는다.” 비경에 이끌려서 우리는 계속 오를 수 있다.

기도로 말씀을 깨닫는다?

삼위일체에 대한 3장에서 정상에 올랐기 때문에 이제는 좌우를 보면서 천천히 즐길 수 있다. 중언부언(重言復言)하는 이방인의 기도와 우리가 구하기 전에 우리에게 필요한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드리는 기도의 차이를 환하게 볼 수 있다. 이방인은 자기의 소원을 자기의 신에게 간절히 이야기하여서 그것을 얻어내려고 온갖 아부를 다하지만, 하나님의 백성은 말씀으로 구원의 은혜를 받고 그것을 누리면서 기도를 드린다. 말씀을 받기 전에 말씀을 깨닫게 하여 주시기를 기도할 뿐 아니라 들은 말씀을 다시 하나님께 아뢰면서 말씀을 더 깊이 깨닫는다. 이것이 교제로서의 기도이고, 쉬지 않고 기도하면서 살아가는 신자의 모습이다.

기도의 봉우리에서 우리는 삼위일체의 봉우리와 신학의 봉우리도 본다. 삼위 하나님께 대하여 이야기하는 것이 신학이므로, 기도로 신학을 하면서 삼위일체와 신학의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예수님의 성육신은 우리가 하나님이 되도록 하려는 것?

지리산의 가장 높은 봉우리는 천왕봉이지만, 우리가 이르는 곳은 하늘의 예루살렘이고 하나님처럼 되는 것이다. 신격화(神格化)라는 말은 신자가 하나님처럼 된다는 말인데, 이것은 범신론에서 이야기하는 신격화와는 근본적으로 다르다. 고대 동방 교회에서는 신격화라는 말을 성육신과 관련하여서 복음의 핵심으로 가르쳤다.

저자는 19세기 독일의 신학자들의 비판도 비판적으로 다루고, 동방의 고대 교부들의 주장의 한계도 잊지 않고 지적한다. 뿐만 아니라 이 주제를 성경의 교훈으로 살핀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셨다는 말씀(창 1:26), 직분을 맡은 사람을 하나님이라고 부른 구절(시 82:6; 요 10:35), 신자가 하나님의 성품에 참여하였다는 말씀(벧후 1:4) 등을 간략히 검토한다.

노고단, 반야봉, 연하봉, 천왕봉이 모두 지리산의 주능선에 속하여 하나의 띠로 연결된 것처럼, 신격화의 봉우리도 신학이나 삼위일체의 봉우리와 연결되어 있다. 동방 교회에서는 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신학이라고 생각하였는데, 그렇게 신학하는 것이 하나님을 닮아 가는 길이었다. 달리 말하면, 삼위 하나님과 기도와 찬송으로 교제하는 것이 신학하는 것이고, 그 교제를 통하여서 하나님을 뵙고 하나님을 닮아 가는 것이 곧 신격화이다. 우리는 신격화의 봉우리에서 신학, 삼위일체, 기도의 봉우리를 다시 본다. 그 봉우리들이 모두 합하여서 하나의 큰 산을 이룬다. 산이 높고 계곡이 깊어서 올라오는 길이 어렵고, 봉우리 하나하나가 큰 주제를 이루지만, 모두 연결되어 있다.

지리산 주능선에서 덕유산이나 무등산, 섬진강과 경호강과 남강과 주변의 논밭, 심지어 남해까지도 바라보는 것처럼, 우리는 동방 신학의 능선에서 다른 전통도 바라본다. 19세기의 독일 신학자들이나 20세기의 동방 신학자와 로마 교회의 신학자들, 그리고 루터와 칼빈의 교훈도 다시 본다. 정상에 오른 사람만이 누리는 기쁨이다.

개혁 ‘신학’  강좌?

개혁 신앙 강좌 8권의 제목은 『신학: 삼위일체 하나님을 향한 송영』이다. 제목만 보면 이 책은 신학생이나 목사를 위한 것이고, ‘개혁 신학 강좌’에 속하는 책이 ‘개혁 신앙 강좌’에 잘못 들어온 것으로 생각하기 쉽다. 그러나 2장에서 본 것처럼, 신학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시는 것이고 하나님께 기도와 찬송으로 말씀을 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신자 모두가 참다운 의미에서 ‘신학’을 하는 것이다. 고대 믿음의 선배들의 주장을 알았다는 것만이 아니라 우리도 같은 믿음과 태도로 삼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으로 기도와 찬송을 드리고 삼위 하나님을 더 닮아 가고 있다. 우리가 그분들과 같은 교회에 속하였다는 사실을 알게 되고, 우리가 진정한 신학자라는 것도 깨닫게 된다. ‘역사를 통하여서 흐르는 주류(主流)의 신앙과 신학’은 바르게 신학하는 사람, 곧 교회에서 진리와 성신 안에서 예배하는 사람들 안에 있음을 배운다. 예배 때마다 영광송, 성삼위송, 경배송, 송영을 부르는 우리가 바로 참된 신학을 하고 있음을 깨닫는다.

신문을 보면 고대 동방 교회의 무대였던 터키 여행 광고가 나온다. 기백만 원을 내면 일주일 동안 온천도 하고 지하 도시나 지하 교회까지도 구경할 수 있다고 한다. 그러나 단돈 9천 원으로 동방 교회를 여행할 수 있는 길도 있다. 개혁 신앙 강좌 8권을 사서 읽으면 고대 동방 교부들이 가르친 신학을 배울 수 있다. 터키를 여행하는 마음으로 그 정도의 시간을 내면 이 책을 여러 번 독파할 수 있다. 9천 원의 투자가 몇 백 배의 투자보다 더 값진 일이 될 것이다. 더구나 이 책의 후기에는 저자의 터키 답사기도 실려 있다. 단순한 관광이 아니라 동방 교부의 흔적을 찾으려는 이야기로 책을 마무리한다.

두 안식년 동안에 잊혀진 주제들을 연구하여서 교회를 위하여 봉사한 저자에게 그의 믿음과 ‘신학’ 활동을 들어서 축하와 감사를 보낸다. 이 책이 주님의 손에 들려서 참된 신학을 하려는 주의 백성들에게 큰 도움이 되기를 바란다.

* 유해무 교수는 고려신학대학원과 네덜란드 캄펀 신학대학교에서 공부한 뒤(Drs. Dr.) 1991년부터 고려신학대학원에서 교의학 교수로 봉직하고 있으며 잠실중앙교회 협동 목사입니다. - 편집자 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