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배워서 동화책을 읽기 시작할 때 대체로 위인전도 함께 읽도록 권한다. 생각이 형성되는 시기에 위인전도 읽어 삶의 방향과 윤곽을 분명하게 하려는 뜻일 것이다. 위인전을 읽는 것은 여전히 추장(推獎)할 만한 일로서 그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여기에서 한 걸음 더 나아가 생각할 때 성경에 나오는 인물에 대해서 위인전 식으로 읽고 생각하는 것은 우리의 신앙을 그릇되게 인도하기가 쉽다. 물론 ‘아브라함의 믿음을 본받자’는 식의 소박한 생각 자체가 그릇된 것은 아니지만 위인전 식 읽기는 대체로 윤리적인 면에 치우치는 경향이 강하다. 그런 읽기는 비역사적이며 개인주의적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깨닫지 못하게 하기도 한다. 왜냐하면 그런 식 생각은 종교를 개인의 도덕적 완성이나 개인의 안심입명(安心立命)이라는 관점에서 생각하는 전통의 영향을 받은 것이고, 우리가 마땅히 깨닫고 경배해야 할 하나님에 대해서는 무관심하기 때문이다.
전3권으로 간행될 『하나님의 백성』은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생애를 공부하되 비역사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것이 아니라, 그 시대에 하나님께서 계시하시고 역사 위에서 이루어 가시는 신정 정치(神政政治)의 틀 안에서, 즉 ‘하나님의 백성’의 관점에서 족장들의 행적을 살핀다. 책을 읽으면서 더욱 분명히 드러나지만, ‘하나님의 백성’에서 일차적인 강조점은 뒤의 ‘백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앞의 ‘하나님’에 있다. 족장들이 ‘하나님을 어떠한 분으로 깨달아 갔는가,’ ‘그분의 계시를 자기들의 역사적 현실에서 어떻게 이해하고 순종하여 나갔는가’ 하는 것이 책을 관통하고 있는 주제이다.
2. 아브람을 부르심 (1-3강)
아브람이 씬이라는 우상을 섬기고 난숙한 도시 문명을 구가하고 있던 갈대아 우르에서 하나님의 계시를 받고 떠난 것은 어느 날 갑자기 어떤 음성을 듣고 떠난 것이 아니었다. 그는 셈 계통을 통해 내려오던 계시를 깊이 묵상하고 그 계시의 말씀으로 우상 숭배의 문화에 대해서 선지자적이고 “문화 비평적”인 시각을 갖고 있던 중에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분명한 깨달음과 신뢰가 있었기 때문에 그는 편리한 도시 생활을 떠나서 원시적인 유목 생활을 할 수 있었다. 아브람이 받은 계시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에 대한 것으로서, 그 핵심에는 예수 그리스도가 있었다.
3. 아브람의 애굽행과 롯과의 나뉨 (4-7강)
유목 생활을 하는 아브람의 가족은 종을 포함하면 2천 명 가량의 대집단이었는데, 독특한 성격을 지니고 있었다. 그들은 후일 예수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유기적이고 거룩한 교회를 방불케 하는 형태를 지향하고 나갔다. 그러나 아브람이 자기가 속한 시대의 그릇된 풍속과 사조에서 완전히 벗어난 것은 아니었다. 하나님께서는 사래를 바로에게서 건져 내 주심으로써 아브람에게 사래도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일에 있어서 동등한 위치에 있음을 가르쳐 주셨다.
롯은 의인이라고 불릴 정도로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점이 있지만 역사를 통하여 흐르는 주류(主流)의 신앙을 깨닫지는 못하였다. 그것을 바르게 깨달은 아브람은 가나안 땅에서 나그네로 자처하며 살았지만, 롯은 세속적이어서 소돔 쪽을 택하고 그쪽으로 점점 더 가까이 나아갔다. 아브람이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준 것은 족장으로서 무책임하게 양보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 나라가 물질적인 나라가 아니고 그리스도를 정점으로 하는 신령한 나라임을 깨닫고서 한 행위이다. 이러한 깨달음으로부터 사랑과 관용의 마음이 있었던 아브람은 롯에게 먼저 선택권을 주었던 것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인정함을 받았다.
4.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 (8-10강)
동방의 원정군이 하나님께서 언약으로 주신 땅을 약탈하고 하나님의 백성인 롯을 잡아가자 아브람은 하나님의 통치권에 대한 분명한 확신 가운데서 그들을 추격하여 롯을 구하고 약탈물들을 다시 찾아왔다. 그때 천지의 주재이신 지극히 높으신 하나님(엘 엘룐)의 제사장 멜기세덱이 나와서 아브람을 위해 복을 빌고 하나님은 아브람의 행위를 인정해 주셨다. 이 원정을 통해서 아브람은 하나님이 어떠한 분이신지를 더욱 깨닫고 나갔다. 이러한 깨달음으로 나아가는 아브람에게 있어서, 하나님 나라는 이신론적인 추상 개념도 아니고 개인적인 종교 감정도 아니며 역사 위에서 증시(證示)되는 현실적인 것이었다.
5. 계시와 언약의 증표 (11-14강)
이전 계시의 토대에서 아브람은 땅과 자손에 대한 계시를 받았다(창 15장). 아브람은 가나안 땅을 주신다는 확증을 받았지만 하나님의 궁극적인 약속이 그 땅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영원한 도성을 사모했다(히 10:10,16). 또한 자손의 문제에 있어서도 혈통의 자식이 저절로 언약의 자손이 되지 않음을 알았다. 아브람도 그리스도의 생명에 연결이 되어 있었고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가 아브람의 후손이 된다(갈 3:29). 이러한 점에서 하나님의 언약은 현실적인 동시에 이상적인 것이고, 지상적인 동시에 천계적(天界的)인 것이었다.
아브람은 하나님에 대한 바르고 심오한 이해의 기초 위에서 하나님의 언약의 양면성을 바르게 이해할 수 있었고, 또한 그 계시를 후대에 전달할 사명과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거룩한 사회를 이룰 역사적 사명을 수행해 나갔다.
6. 사래와 하갈 (15-19강)
아브람의 몸에서부터 날 자가 후손이 될 것이라는 계시가 있었으나(15:4) 아이를 낳을 수 없었던 사래는 당시의 풍습을 따라서 자기의 몸종 하갈을 아브람에게 첩으로 주어 그 언약의 자손을 얻으려고 하였다. 사래의 이러한 생각은 당시의 관행에서는 문제가 되지 않는 것이었으나 실제에 있어서는 거룩한 사랑으로 하나님 나라를 드러내야 할 가정에 파괴적인 요소를 들여오는 것이었다. 하나님께서는 신국 현현의 중요한 기관인 가정을 훼손하시면서 자신의 일을 이루시지 않는다. 아브람이 하갈을 취한 것은 하나님의 언약을 이루는 신령하고 거룩한 일을 인간적인 생각으로 이루려 한 것이었고 하나님께서 승인하지 않으셨다.
7. 전능한 하나님과 사라의 무신(無信) (20-24강)
하나님께서는 아브람 99세에 전능한 하나님으로 나타나셔서 아이를 낳을 수 없는 사래의 몸에서 언약의 자손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시면서 아브람과 사래의 이름도 고쳐 주시고 할례의 언약도 세우셨다. 이때에는 아브람도 아이를 낳을 수 없었으나 그에게 ‘열국의 아비’란 뜻의 이름을 주셨고, 또한 사래에게도 ‘여왕’이라는 뜻의 이름을 주심으로써 그녀도 아브라함과 함께 언약을 이루어 나갈 자임을 분명히 밝히셨다.
여기에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자신을 ‘전능한 하나님’(엘 샤다이)으로 계시하시면서 언약을 이루어 나가셨다는 점이다. 단순한 전능이라면 ‘엘’ 혹은 ‘엘로힘’으로 충분하겠지만, ‘엘 샤다이’로 계시하심으로써 하나님은 자신이 자기 백성을 사랑하셔서 전능의 능력으로 그 언약을 이루시는 분임을 나타내셨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이루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으로 계시하셨을 때 99세의 아브라함은 언약의 자손 이삭을 낳을 수 있었다.
전능한 하나님의 언약의 말씀이 있었지만, 사라는 여전히 무신과 약신(弱信)의 상태에 있었다. 일반적인 자연의 법칙에 갇혀 있는 사라를 높은 세계로 이끄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현현(顯現)하셨고, 거룩한 임재에 접촉케 하심으로써 사라를 현실적인 무신론의 상태에서 건져내시고 언약의 그릇으로 사용하셨다.
8.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 (25-27강)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것을 미리 말씀하셨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공의로 심판할 분이심을 가르쳐 주시기 위함이고, 아브라함의 자손이 의와 공도를 행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 소돔과 고모라의 멸망에 대한 말을 들은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의에 기초하여 그들을 위해 도고를 하였는데, 하나님의 의에 호소한 이 기도는 동시에 하나님의 사랑에 기초한 기도였다.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더욱 풍부해진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계획을 들었을 때 하나님의 거룩한 의와 사랑과 지혜와 영광을 가지고 더불어 이야기할 수 있는 위치에 이른 것이다. ‘종’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친구”의 자리에 이르러서 하나님의 경륜을 깨닫고 하나님과 더불어 이야기를 하며 자기 자손을 의와 공도를 행하도록 가르칠 책임도 맡았던 것이다(약 2:23).
9. 하나님의 백성 - 아브라함과 우리
도덕적이고 개인주의적인 경건 서적은 대체로 역사에 대해서 무관심하고 항상 ‘직접적인 적용’을 한다. 따라서 책을 처음부터 읽지 않아도 이해하는 데 큰 어려움을 겪지 않고, 중간부터 읽어도 자신의 종교 감정을 고양시키고 마음에 위로를 주는 구절들을 쉽게 찾을 수 있다. 그러나 족장의 역사를 살피는 『하나님의 백성』은 앞의 역사를 무시하고 중간부터 읽을 수가 없다. 또한 족보와 유목민의 생활에 대한 이야기에서부터 시작하는 첫 장은 족보를 생각할 겨를이 없이 바쁘게 생활을 하는 도시의 독자들에게는 쉽게 읽히지 않는다. 그러나 일단 아브라함과 함께 믿음의 순례를 떠나면, 수천 년의 시간과 문화적인 격차가 없어지고 하나님 앞에서 나의 신앙과 교회의 현실만이 드러난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백성이지만 세상을 사랑하다가 열매를 맺지 못한 롯, 하나님의 일을 사람의 생각으로 이루려 하였던 아브람과 사래, 아내의 중요성을 깨닫지 못한 아브람의 무지, 새 이름을 받았으나 여전히 현실적인 무신론의 상태에 있었던 사라 등등은 우리의 동일한 부족을 드러내고 우리의 삶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한다.
이러한 부분적인 이야기뿐 아니고 아브라함의 생애가 전체적으로 신자의 전형적인 삶의 방향을 보여준다는 점에서 『하나님의 백성』은 ‘근본적인 적용’을 하는 말씀이다. 책에서 잘 가르쳐진 것처럼, 아브라함의 생애는 야웨, 주, 엘로힘, 엘 엘룐, 엘 사댜이, 엘 올람 등 하나님을 더 깊이 알아가는 것으로 특징 지어질 수 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에 대한 이해가 더 깊어지면서 당시의 상황에 대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지를 깨닫고 믿음의 순종을 하고 나갔고, 또 그 바탕에서 새로운 계시를 받아 순종하고 나갔다. 그 신앙이 개인의 행복을 지향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지향했다는 점에서, 그러면서도 그의 신앙이 타계적(他界的)이 되는 것이 아니라 구체적인 현실로 나타났다는 점에서 아브라함의 믿음은 우리의 믿음을 근본적으로 돌아보게 하며, 우리로 하여금 삶의 방향을 바꾸어 이 세상에서 하나님 나라를 증시하는 그 순례의 길을 동일한 믿음으로 걷게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