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시편은 우리에게 가장 친숙한 책이면서도 어쩌면 가장 어려운 책일 것이다. 성경의 한가운데에 자리잡고 있는 이 책은 ‘하나님의 하신 일과 하신 말씀’을 기록한 역사서와 예언서와는 달리 ‘하나님께 대한 사람들의 반응’을 시(詩)로 표현한 “사람들의 책”이라고 종종 불린다. 요컨대 삶과 죽음, 희로애락 등 인간사에 대한 성찰을 담은 책이라는 것이다. 그렇다면 시편은 어느 책보다 우리에게 친숙하다 할 것이다.

그런데 신약의 기자들이 시편을 인용하는 것을 보면, 그런 친숙함이 달아나고 시편 이해가 우리에게 큰 숙제로 다가온다. 신약 성경은 부활하신 주님께서 제자들에게 교훈하신 대로(눅 24:44-49; 참조. 요 5:39) 철저하게 시편을 모세의 율법이나 선지자들과 더불어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책으로 인용한다. 따라서 우리가 시편을 읽을 때 인간사에 대한 성찰은 둘째 셋째 문제로 물러서야 한다. 시편에서도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성신의 음성을 듣는 일이 가장 중요하다. 같은 정신에서 어거스틴 선생은 시편 이해의 목표를 “처음에도 그리스도, 중간에서도 그리스도, 마지막에도 그리스도”로 삼았던 것이다.

칼빈 선생의 가르침대로 인생의 제일 목적은 하나님을 아는 것인데(제네바 요리문답 1문답; 참조. 요 17:3), 범죄한 인생이 하나님을 아는 길은 오직 그리스도를 통한 길뿐이다. 그러므로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교회와 신자에게 필생의 과업이다(빌 3:7-8). 그러나 이 일은 믿음에 속한 것이므로 결코 쉽지 않다. 이번에 성약출판사에서 『혼인의 신성함』, 『구원이란 무엇인가』에 이어 세 번째로 시편 110편을 강해한 최낙재 목사님의 『높이 되신 그리스도』를 발행한 것은 구약에서 그리스도를 증거하시는 성신의 음성을 듣고자 하는 독자들에게 반갑고 뜻 깊은 선물이 되리라 믿는다.

II.
시편 110편은 이스라엘의 왕 다윗이 성신에 감화되어 예언한 높이 되신 그리스도에 관한 시이다. 여호와께서 세우신 왕이신 그리스도는 또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제사장으로서, 만민을 통치하시고 제사장으로서 자기 백성의 죄를 사하시고, 세상 끝을 향하여 그 통치를 시행해 나가신다는 요지를 담고 있다.

여호와께서 다윗의 주(主)를 당신의 우편에 앉히시는데(1절), 이는 그리스도의 십자가 사건으로 이루어졌다. 이 우편은 권세의 자리로서, 그리스도는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지니신 분으로 세움 받아 마지막 원수인 사망을 발등상 삼으실 때까지 통치하실 것이다.

그런데 2절에서 그리스도의 통치는 동시에 하나님의 통치인 사실이 드러난다. 그리스도께서 하나님과 일체로 행하시므로, 그리스도의 나라는 곧 하나님의 나라이다. 다윗의 나라가 하나님 나라를 보여 주는 면이 있어도 그리스도의 나라에 비교할 때는 엄밀한 의미에서 하나님 나라라 할 수 없다. 그리스도의 통치는 비할 수 없이 뛰어나다. 이러한 그리스도의 통치는 “시온에서부터” 시작된다. 그리스도께서 하늘 아버지의 우편 보좌에 계시므로 그 통치는 하늘에서도 나타나지만 또한 땅에서, 예루살렘에서부터 실현되어 왔다. 시편 2편에서 구약적 용어로 표현된 이 통치는 결국 복음을 통한 통치인데, 저자는 사도행전을 들어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십자가를 요구하던 원수들을 복음으로써 굴복시키면서 통치해 가시는지를 여실히 보여 준다.

그리스도께서 복음이라는 신령한 무기를 가지고서 진두지휘하시는 이 전투에 그 백성이 그의 뒤를 따른다. 그들은 세상의 군인과 달리 거룩한 제사장의 옷을 입고 있다. 그들은 자원하여 나선 백성이며, 주의 새롭게 하시는 능력으로 새벽이슬처럼 영롱한 주의 청년들이다. 그런데 저자는 이 영광스러운 일이 그리스도가 또한 제사장이신 사실에 근거하고 있음을 전한다. “그리스도께서 제사장이시기 때문에 거룩하지 않던 백성일지라도 거룩하게 되고, 약하고 힘이 없던 사람들도 힘을 얻어서 거룩한 백성이 되어 즐거이 헌신하면서 그리스도의 뒤를 따르는 것입니다”(69쪽).

그리스도께서 왕이시면서 또한 제사장이신 사실이 얼마나 중요한지 여호와께서는 맹세로 말씀하셨다(4절). 저자가 히브리서를 들어서 이 점을 자세히 설명하는 것처럼, 그리스도께서 멜기세덱의 반차를 좇은 영원한 제사장 되심을 아는 것은 온전한 신자의 마땅히 알아야 할 바 단단한 식물이다(히 5:11-14, 참조. 히 4:14-5:10; 6:1-10:18).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우편에 즉위하심은 하나님 나라 통치의 시작이며 천하를 정복하고 통일하는 대업의 전주곡이다. 따라서 맹렬한 전쟁과 승리를 위한 추격이 뒤따른다(5-7절). 사도행전은 높이 되신 그리스도께서 어떻게 이 전쟁을 수행하시고 승리를 거두어 가시는지를 잘 보여 준다. 사도들이 복음을 전할 때 전에 원수였던 자들이 듣고서 마음이 찔려서 “우리가 어찌할꼬” 하며 항복하고 나오기도 하였고, 끝까지 교회를 핍박하며 저항하던 원수인 헤롯 왕은 충이 먹어 죽기도 하였다. 여호와와 그 기름 부음 받은 자를 대적하는 열방의 왕들(시 2:2)과 더불어 치열한 전투를 치르시는 과정에서 그리스도께서는 승리를 눈앞에 두고 잠시 소강상태를 틈타 길가에서 시냇물을 마신다(7절).

이 전투에서는 백성에 관한 언급이 없다. “그러니까 중요하고 중요한 것은 ‘그리스도가 누구이시냐’ 하는 것입니다. 그 거대하고 치열한 전쟁도 결국 그리스도께서 홀로 싸우시는 것입니다. ……뒤따르는 백성들은 그리스도의 승리에 참여하는 것뿐입니다”(99쪽). 저자는 이런 가르침 위에서 교회사를 연구하는 바른 태도를 지적한다. 역사상의 중요한 교회 개혁들은 머리 되신 그리스도께서 종들을 쓰셔서 친히 당신의 교회를 인도하신 증거들이다.

높이 되신 그리스도를 배우는 지식은 우리에게 순종과 믿음을 요구한다. 비록 연약한 자라 하더라도 모든 권세를 지니신 그리스도의 다스림을 받아 나갈 때 우리는 헌신하는 청년의 자리에 이를 수 있다. 저자는 주께 헌신하는 청년의 영광과 기쁨을 이렇게 역설한다: “그런 사람은 그리스도께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실 때 그 승리의 기쁨에 같이 참여할 수 있습니다. 이 싸움은 전 세계적인 전쟁이요 전 역사를 통한 전쟁인데, 그리스도께서 선두에 나서서 싸우시는 그 싸움에서 최후의 승리를 거두었을 때 천지에 얼마나 큰 기쁨이 있겠습니까?”(105쪽)

III.
훌륭한 음식을 판단하는 제일 좋은 방법은 직접 맛보고 경험하는 것이다. 하물며 신령한 양식이야 말할 필요도 없다. 죄로 인하여 자신의 무지와 가난이 얼마나 우심한지 알면 알수록 교회는 그리스도를 전하는 생명의 말씀을 갈구하게 되며 그 말씀에서 채움을 얻는다. 이것이 이 강설들을 전할 때 저자가 주께 드리는 기도이며 듣는 교회를 향한 바람이다. 이 기도가 하늘의 주께 가납됨으로써 우리 가운데 그리스도에 대한 참된 지식 곧 믿음이 있어서 “시편에서 교회는 그리스도 안에서 노래하며 그리스도는 교회 안에서 노래하시는”(어거스틴) 신령한 교제가 넘치기를 간절히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