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월 31일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여 옐레 파브르(Jelle Faber) 목사의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이 개혁 신앙 강좌의 세 번째 책으로 출간된다.

고(故) 옐레 파브르 목사 (1924-2004)

이 책의 저자인 고(故) 파브르 목사는 네덜란드 개혁교회가 분리되던 1944년에 캄펀 신학교에 입학하여 클라스 스킬더(K. Schilder) 교수 밑에서 공부하고 1952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목사로 임직되었다. 목회를 하면서도 계속 고대 교부(敎父)들을 공부하여 1969년에 고대 교부들을 중심으로 『교회의 흔적: 교회의 표지(標識)로서의 세례』라는 주제로 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그해에 캐나다 개혁교회에서 신학교를 개교했는데, 그곳에 청빙을 받고 1989년까지 20년 동안 교의학을 가르치고 학장으로 봉사하며 신학교의 기초를 놓았다. 그는 학자였지만 상아탑에 안주한 사람은 아니었고, ‘교회의 사람’으로서 말씀의 봉사와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일을 했고 또한 기독교 초등학교와 고등학교의 설립에 중요한 역할을 했으며 몇몇 잡지의 편집인으로 교회의 유익을 위해서 다양한 방면의 글을 썼다.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연속 설교문과 잡지에 기고한 각종 글들까지 따지면 그가 쓴 글은 300여 편이 넘는다. 은퇴 후에도 그는 교회에서 말씀 봉사의 일을 계속했고 저술과 강연과 학회 활동 등으로 청년처럼 지냈다.

파브르 박사는 1998년 8월에 서울에서 개최된 칼빈 연구 국제 대회(International Congress on Calvin Research)에 참석하러 왔다가 독립개신교회의 목사들과 만났다. 어떤 목사의 표현을 빌리면,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 그때 그분은 성은교회 예배 참석, 독립개신교회 목사들과의 교회적인 모임, 공개 강연 등의 바쁜 일정을 보냈다. 8월 마지막 날에 있었던 공개 강연 제목은 “『기독교 강요』에서의 말씀과 성신”이었고, 우리에게 매우 강한 인상을 남겼다.¹⁾

세 글의 내용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은 파브르 목사가 1998년 8월에 강변교회에서 강연한 “『기독교 강요』에서의 말씀과 성신”과 다른 두 논문, 즉 “칼빈의 30년 봉사”와 “성신의 구원 사역에 대한 칼빈의 교훈”을 합해서 한 권으로 묶은 것이다.

첫째 글, “칼빈의 30년 봉사”는 칼빈의 생애에 대한 간략한 소개의 글이다. 칼빈의 생애에 대해서는 여러 종류의 책이 나와 있지만 어떤 책은 일면적이고 어떤 것은 너무 전문적이어서 교회의 청소년들에게 가르치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그 공백을 메우려고 이 논문을 택했다. 저자는 칼빈의 생애를 하나님과 교회를 위한 봉사의 생활로 보면서 10년 씩 세 시기로 나누어서 요약했다. 칼빈에 대한 어느 정도의 지식이 있는 네덜란드의 개혁교회 교인을 대상으로 쓴 글이기 때문에 빠르게 읽으면 놓치기 쉬운 부분이 많다. 그러나 천천히 읽으면 읽은 노력만큼 보상이 따른다.

둘째 글, “성신의 구원 사역에 대한 칼빈의 교훈”은 칼빈의 교훈에서 성신의 역할이 얼마나 중요한가를 생생하게 보여 주는 글이다. 칼빈을 예정론과 관련하여 생각하는 경향이 있는데, 이 글은 칼빈이 성신의 역할에 대해서 얼마나 바르게 강조해서 가르쳤는가를 일깨우면서 성신과 성경, 성신과 그리스도, 성신과 말씀, 성신과 믿음, 성신과 그리스도의 유익 등을 주제를 다룬다. 이 논문은 구(舊) 프린스톤 신학교의 조직신학 교수인 워필드(B. B. Warfield)의 강연 제목,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이라는 말로 시작해서 같은 말로 마친다. 세 논문의 묶음집의 제목을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이라고 정한 것도 이것이 세 편의 글을 관통하는 주제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강변교회에서 행한 강연이 마지막 글이다. 파브르 목사는 말씀과 성신이 『기독교 강요』의 1권부터 4권까지 고루 언급된 사실을 지적하면서 성신과 말씀에 대한 것이 그의 신학 체계 전체에 대한 것임을 밝혔다. 독립개신교회는 강단에서 선포되는 하나님의 말씀이 은혜의 수단이라는 것과 성신께서 말씀을 사용해서 깨우쳐 주셔야 함을 배우고 그 진리를 교회의 생활에서 맛보며 살고 있었는데, 먼 나라에서 온 목사님으로부터 같은 내용을 배운 것이다.

각기 다른 십 년에 세 대륙에서 발표한 글들

세 글은 각각 1964, 1987, 1998년에 네덜란드와 미국/캐나다와 한국에서 발표된 글이다. 첫째 글, “칼빈의 30년 봉사”는 칼빈의 소천 400주년을 기념하여 1964년에 네덜란드 개혁교회(해방)의 잡지인 「개혁」(De Reformatie)에 세 번에 걸쳐 연재되었다. 둘째 글, “성신의 구원 사역에 대한 칼빈의 교훈”은 캐나다 개혁교회의 신학교에서 18년 동안 가르친 후에 은퇴를 2년 앞두고 1987년에 “칼빈과 성신”이라는 주제로 미국에서 열린 칼빈 학회(Calvin Studies Society)에서 발표한 글이다. 이 글은 같은 해에 캐나다 개혁교회의 잡지인 「클래리온」(Clarion)에도 실렸다. 셋째 글, “『기독교 강요』에서의 말씀과 성신”은 은퇴 후인 1998년 8월 31일에 강변교회에서 강연한 것인데, 다음 해에 캐나다 개혁교회의 학술지인 「코이노니아」(Koinonia)에 실렸다. 이와 같이 『성신의 신학자, 존 칼빈』은 각기 다른 십 년에 세 대륙에서 발표한 글을 묶은 것이다.

보편적이며 통일된 주제

세 글이 1964년에서 1998년까지 34년에 걸쳐 쓰인 것이고 청중도 네덜란드, 미국/캐나다, 한국으로 다양하다면, 여기에서 세 글 사이에 어떤 통일성이 있는가를 물을 수 있다. 대답을 찾기는 어렵지 않다. 저자는 60년대에 쓴 글에서는 칼빈의 생애를 조망하고, 80년대에 쓴 글에서는 칼빈의 구원론을 성신론과 연결하여 가르쳤고, 90년대의 글에서는 『기독교 강요』에서 ‘말씀과 성신’이 어떻게 연결되었는가를 좀 더 구체적으로 밝혔다. 34년에 걸쳐서 쓴 글이지만 그 안에 아름다운 발전이 있다. 또한 각기 다른 청중을 대상으로 했지만 그의 신학적 논의에는 일관성이 있다.

저자는 첫 번째 글에서 『기독교 강요』의 “기본 골격이 시종일관 변함없었다는 사실은 더욱 주목받을 만하다. 아름다운 발전이 있지만 큰 변화가 없다는 점이 더욱 눈에 띈다”라고 이야기했는데, 필자는 칼빈에 대한 파브르 목사의 평가가 그분에게도 그대로 적용된다고 생각한다.

파브르 목사의 50년 봉사 - 성신의 사역과 보편적 교회

2002년에 간행된 「클래리온」에는 파브르 목사가 50년 동안 말씀의 사역자로 봉사한 것을 기념하는 모임에 대한 기사가 있었다.²⁾  그 모임에서 파브르 목사가 1952년 1월에 행한 첫 번째 설교를 영어로 번역하여 대독(代讀)했는데, 낭독한 성경 본문은 고린도후서 3:7-4:6이고 강설의 본문은 4:5-6이었으며³⁾ 강설의 제목은 “예수 그리스도는 주님이시다”였다. 그 신임 목사는 성신의 인도함을 받는 ‘새 언약의 일꾼’에 대해서 깨닫고 말씀을 전파한 것이다(고후 3:7-18).

파브르 목사는 목회 처음부터 새 언약의 일꾼은 성신을 의지해서 사역해야 함을 바르게 깨닫고 50년 동안 말씀의 봉사자로 하나님을 섬겼다. 그가 칼빈을 ‘성신의 신학자’로 파악한 것은 목회자의 사역이 그러한 것임을 알았기 때문이다. 성신 하나님에 의해 동일한 복음의 진리를 깨달았기 때문에 그는 칼빈도 ‘성신의 신학자’로 평가했고, 『기독교 강요』의 기본 골격에는 변화가 없으나 아름다운 발전이 있었음을 지적할 수 있었다. 사람이 만든 학문 이론이라면 큰 변화가 있었겠지만, 하나님의 성신에게서 배운 것을 가르쳤기 때문에 각기 다른 십 년에 세 대륙에서 쓴 글들에서 보편적이면서도 통일된 주제를 다룬 것이다.

“우리는 한눈에 서로를 알아보았다”는 말이 우리 편에서의 일방적인 표현만은 아니었다. 그리스도께서 말씀과 성신으로 교회를 불러 모으시는 것을 고백하며 50년 동안 봉사했던 파브르 목사는 한국의 독립개신교회를 바르게 알아본 신학자였다. 그에게 있어서 교회의 보편성은 신학교 교실에서만 가르친 내용이 아니라 다른 기독교인을 만날 때 확인할 수 있는 구체적인 것이었다. 그는 1998년에 한국 방문을 마치고 돌아가 「클래리온」에 “Our Korean Connection”이라는 보고서를 썼다. 거기에 다음과 같은 내용이 있다.

독립개신교회는, 본인이 관찰한 바에 의하면, 유럽 대륙의 개혁교회 방향으로 나아가고 있다. 예배식에서 사용하는 찬송은 성경적이고 삼위일체적인 내용이다.……8월 마지막 날 저녁에 강변교회에서 독립개신교회의 회중을 대상으로 강연을 했다.……그들은 내용을 잘 이해했고 좋은 질문들을 했다. 강연 후에 최낙재 목사는 단정하고 유려한 말로 감사를 표시했고, 어떤 장로[집사, 필자]가 한국말로 쓴 감사의 글을 주었다.⁴⁾

아마 이것이 독립개신교회를 외국에 처음 소개한 글일 것이다. 2001년에 개혁교회들의 국제회의(ICRC)에 참석했을 때 캐나다 개혁교회 대표가 파브르 목사의 글을 언급하면서 독립개신교회의 대표로 참석한 정병길 목사와 필자에게 악수를 청한 일이 있었다. 교회의 출발점은 사람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말씀과 성신으로 불러 모으고 보호하고 보존하시는 주님의 사역에 있기 때문에 주님의 인도를 받아 나아가면 그 안에서 이웃 교회들과도 교제할 수 있음을 경험했다. 독립개신교회가 외국의 개혁교회를 의지해서 출범하지 않고 주께서 이 시대에 세우신 직분자를 통해 강단에서 선포하는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고 순종하면서 전진하여 이름 그대로 스스로 서게[獨立] 되었을 때, 우리는 이웃 개혁 교회들과도 사귈 수 있었다. 성신의 사역과 교회의 보편성을 강조하면서 50년 동안 봉사한 신학자 파브르 교수와의 교제를 통해서 우리는 교회의 신령함과 보편성을 맛볼 수 있었다.

파브르 목사는 한국말을 읽을 줄 안다?

1998년 8월에 성은교회 예배에 참석했던 파브르 목사는 교회에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을 가르치는 것을 보고 크게 놀라고 기뻐했다. 그는 성구까지 인쇄된 하이델베르크 초역본을 보더니 갑자기 요리문답 본문의 아래에 있는 증거 성구의 책 이름과 장절을 읽어 내려가기 시작했다. 한국어로 된 증거 성구인데, 장절의 숫자만을 보고 앞에 있는 성경의 책 이름이 무엇인가를 정확히 추측하여 영어로 읽은 것이다. 한국말을 전혀 모르는 분이었지만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에 대한 한국말만큼은 읽을 줄 안 셈이다. 그의 한국말 실력(?)이 아니라 요리문답과 증거 성구에 대한 해박한 이해가 필자에게 큰 자극과 격려가 되었다.

파브르 목사는 우리의 것

파브르 목사의 강연의 내용에 칼빈이 ‘어거스틴은 우리의 것’이라고 말한 부분이 나오는데, 강연 내용에서 동질의 믿음을 확인했기 때문에 그 강연의 사회를 보았던 정병길 목사는 ‘파브르 목사는 우리의 것’이라는 말로 모임을 마쳤다.

파브르 목사의 강연이 있은 지 벌써 6년이 지났지만, 그분과 진리 안에서 나눈 교제의 향기는 줄어들지 않는다. 종교개혁 기념일을 맞이하여 이 책을 탐독하는 것이 개혁의 길을 걷는 데 유익하리라 생각한다. ‘파브르 목사는 우리의 것’이기 때문이다.

* 부기(附記). 책 소개의 초고를 쓰고 다듬는 사이에 파브르 목사의 소천(召天) 소식을 들었다. 그분의 함자 앞에 고(故) 자를 붙이면서 원고를 수정했다. 그러나 이제 우리는 그분의 죽음 후에도 그분에게서 한국어로 배울 기회를 갖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