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

지난 4월에 성약출판사에서 간행된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은 우리의 신앙고백의 대요(大要)를 첫 문답에 잘 담고 있습니다. 즉 신자의 유일한 위로는 “살아서나 죽어서나 나는 나의 것이 아니요 몸도 영혼도 나의 신실한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라는 사실에 있다는 고백입니다. 이어서 이 요리문답은 이 고백이 얼마나 든든한 토대 위에 서 있는지를 보여 주기 위해,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의 사역들을 핵심적으로 설명합니다. 여기서 주목할 점은 이 사역들이 결국 성부 성자 성신 삼위일체 하나님과 우리의 사귐으로 표현된다는 것입니다. 신자는 삼위 하나님께서 크신 능력과 기이한 사랑을 통하여 내미시는 교제의 손길을 굳게 붙잡고서 이제는 “마음을 다하여 즐거이 그리고 신속히” 그리스도를 위하여 살게 됩니다. 그러므로 삼위 하나님과 사귐을 나누는 거룩한 사회(communio sanctorum)의 지체로서는 그리스도를 알고 그의 은혜 가운데서 자라가는 일이 지극히 마땅한 일입니다. 그리스도께서 창세전부터 감추어졌다가 계시된 하나님의 비밀이시며, 지혜와 지식의 보화가 그 안에 있는 분이심을 그의 교회 안에서 맛본 사람으로서는, 교회의 목표가 하나님의 아들을 알고 믿는 일에 하나를 이루고, 온전한 사람을 이루고,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이 충만한 데까지 이르는 데 있다는 사도의 교훈에 “아멘” 하고 대답할 것입니다.

이런 정신은 종교개혁의 선구자 루터 선생에게서도 고스란히 드러납니다. 그는 장차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 작성될 곳에서, 유명한 “하이델베르크 논제”들을 발표하였습니다. 거기서 그는 그리스도를 믿는다고 하면서도 율법을 행함으로 공로를 쌓아서 구원을 이루도록 가르치는 중세 가톨릭교회의 신학을 ‘영광의 신학’이라고 명명하면서 이 신학이 “악을 선이라고 부르고 선을 악이라고 부른다”(21논제)고 비판하였습니다. 루터에게 그 이유는 지극히 간단하였습니다. 이 신학은 ‘십자가의 신학’과 달리 “고난과 십자가를 통하여 나타내신 하나님의 보이고 명백한 것들”(20논제)을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요컨대 우리를 위하여 세상에 강림하시되 죄 있는 육신의 모양을 취하시고 십자가를 지시기까지 낮아지신 그리스도를 알지 않고서는, 진리를 전혀 알지 못하는 것이며 현실의 진상을 파악할 수 없다는 주장입니다. 그리스도를 아는 것이 가장 고상함을 인하여 다른 모든 것을 해로 여겼던(빌 3:8) 바울 사도도 같은 이유에서 고린도 교회에 편지하면서 “내가 너희 중에서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에 못 박히신 것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아니하기로 작정하였음이라”(고전 2:2)고 말하였을 것입니다.

II.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I』에서 배우는 그리스도

이번에 출간된 김홍전 목사님의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I』은 마태복음의 순서를 따라 처음 두 시험을 해설한 강설들인데, 여기서 우리는 하이델베르크 요리문답이나 루터 선생의 논제에서, 그리고 칼빈 선생¹⁾이나 어거스틴 선생²⁾의 높은 기독론에서 발견되는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의 가장 고상함을 똑같이 체험할 수 있습니다. 이 책에서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께서 세상에 강림하셔서 시험을 당하셨을 때 얼마나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이셨는지를 배우고, 그 귀결로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 아버지의 사랑이 얼마나 크신가를 깨닫게 됩니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아는 지식은, 우리가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삼위 하나님과 사귐을 갖는 하나님 나라의 백성으로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하는 교훈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집니다.

이 광야의 시험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공생애 벽두에 성신의 인도를 받아서 당하신 사건입니다. 그리스도는 한 분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중보자로서 창조주와 대주재이신 아버지의 보내심을 받아서 강림하시되,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대신하여 아버지의 뜻을 이루시려고 오셨습니다. 그는 영광의 하나님이시지만,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세상에 빛과 생명으로 가득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시기 위하여 스스로 그 영광을 가리시고 사람 가운데 하나가 되셨습니다. 첫 사람 아담이 온 인류의 대표요 머리로서 창조되었듯이 그리스도는 새로운 인류의 머리가 되셨습니다. 이는 오직 “사망으로 말미암아 사망의 세력을 잡은 자 곧 마귀를 없이 하시며 또 죽기를 무서워하므로 일생에 매여 종노릇하는 모든 자들을 놓아주려”(히 2:14-15) 하심인데, 이를 위하여 그리스도는 “범사에 형제들과 같이 되심”(히 2:17)을 마땅한 일로 여기셨고 “모든 일에 우리와 한결같이 시험을 받은 자로되 죄는 없으”(히 4:15)신 그런 분이셨습니다. 이처럼 하나님의 뜻을 따라 우리를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는 아담의 타락 이후로 이 세상을 그 팔에 누이고서 움직여 왔던 사탄에게 직접 시험받으셨습니다. 사탄은 예수님을 시험하되, ‘하나님의 아들이어든’이라는 조건을 붙이면서, 메시야로서 예수님이 하시려는 일과 관련하여 교묘한 제안을 하였습니다. 따라서 이 시험은 예수님 개인의 도덕적 문제에 그치지 않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 세우신 그리스도로서 또한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로서 마귀의 시험을 받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이 당하신 시험은 전 인류에 부과된 큰 시험 가운데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164쪽)이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과연 여호와의 종답게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근거하여 마귀의 시험들을 물리치셨고, 그럼으로써 “인류의 역사 위에서 예수님께 속한 사람에게 계속적으로 도전해 올 가장 큰 문제”(164쪽)에 대한 대답을 제시하셨습니다. 첫 번째 시험에서 마귀는 인간 생존의 원칙에 관하여 우리 주님을 시험하였습니다. 그는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시라면 인류의 근원적인 욕구를 해결하되 돌을 떡으로 만들어 희한한 정치적 역량을 발휘해 보이라고 제안했습니다. 우리 주님은 신명기의 말씀을 인용하심으로써 마귀의 제안을 일축하시고는, 먹고사는 문제가 아무리 정당한 생리 작용이며 욕구일지라도, 그것은 하나님께 맡기고 하나님 나라와 그의 의를 추구하고 나가는 것이 하나님 아버지의 바라시는 태도임을 친히 보이셨습니다.

두 번째 시험은 이스라엘의 삶의 중심이라 할 성전 꼭대기에서 벌어졌습니다. 마귀는 예수님이 얼마나 하나님을 신뢰하는지를 시험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제 마음대로 인용하고는, 거기서 뛰어내려 안전히 착지함으로써 이스라엘의 종교 지도자들에게 메시야로서 기이한 종교적 능력을 드러내어 큰 효과를 내 보라고 교묘히 제안하였습니다. 동시에 그는 우리 주님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시험하게 만들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사명을 맡은 하나님의 종의 올바른 태도를 견지하셨고, 마귀의 제안이 갖고 있는 전제를 무너뜨리심으로써 하나님의 보호를 확신하는 것과 무리한 신앙의 모험을 하는 것은 전혀 별개임을 보이셨습니다. 그럼으로써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몸소 보여 주셨습니다.

저자는 고상한 기독론 위에서 그리스도의 시험들을 해명하면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께서 시험을 이기심으로써 역사에서 동일한 시험을 당할 우리에게 교훈하시는 바를 힘써 전하고 있습니다. 30-40년 전에 하나님의 말씀으로 강단에서 전파되었던 이 교훈들은 오늘날의 교회가 당하는 역사적 현실과 신자 개인이 처하는 신앙적 상태에 적실하게 울려옵니다. 강설들의 제목과 소제목을 일별해 보면 잘 알 수 있습니다만 그중에 몇 가지만을 들어 봐도 좋을 듯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떻게 나타나는가?” ‘이 시험의 역사적 성격과 전투의 교회’(제4강); “하나님의 약속을 실증하는 생활” ‘우리에게 오는 마찬가지의 시험’(5강); “체계적인 하나님 나라의 사상이 있어야 함”(제7강); “자기를 부인하고 주님을 진정으로 사랑해야 함”(제10강); “마귀의 정론(政論)과 오늘날 기독교의 추세”(제13강); “사람의 지혜와 하나님의 지혜” ‘사명을 받은 사람이 하나님을 시험하는 경우’(제14강); “믿음의 축적이 없으면 주를 시험하게 됨”(제16강).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께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기 위하여 시험을 받으셨으므로, 그 나라의 백성 된 우리로서는 “하나님의 나라는 어떤 형태로 존립하고 어떤 형태로 발전해야 할 것인가에 대해 늘 관심을 가지고 생각하는 것이 정당한 생활입니다”(89쪽). 우리의 신앙고백대로,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며, 따라서 우리의 삶과 생활은 철저히 그리스도와 연합된 사실에 의해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은 “단순히 개인이 자기의 욕심에 이끌려 넘어지는 정도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고, 마귀가 전 역사를 통해서 인류 전체의 흐름을 통해서 언제든지 전 인류 앞에 내놓는 중요한 문제”입니다. 성자(聖子)께서 우리를 위하시는 그리스도로서 낮아지시고 또한 높아지심으로, “인류는 스스로 그 문제를 극복할 수 있는 힘이 없어서 쇠사슬에 묶인 것같이 질질 끌려가지만, 그중에서 하나님께서 뽑아내신 거룩한 족속이요 거룩한 백성인 그리스도의 교회, 곧 하나님의 이코노미(economy)라고 하는 이 산업(産業)만은 유일하게 서서 전 인류를 이끌고 나가는 이런 거대한 흑암의 세력을 향하여 감연(敢然)히 도전하고 싸우게 하신”(129쪽) 것입니다. 들풀 같은 우리는 이 거대한 역사적 사명 앞에서 하늘의 하나님께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III. 신자들의 부요이신 그리스도

그리스도는 그 안에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교회로 하여금 당신 안에서 충만하여지게 하시는 분입니다. 우리는 참된 믿음으로 우주의 중심에 계시며 만물을 충만케 하시는 그리스도의 인성(人性)에 연합됨으로써, 하나님이 창세전부터 삼위 안에서 가지시던 그 교제에 참여하는 거룩한 사회로서 존재합니다.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성부께서 세상 통치 경륜을 시행하시는 하늘 어전으로 부르실 때 우리는 믿음으로 “예” 함으로써 그 복된 교제 안으로 들어가 삼위 하나님의 영광과 거룩함을 맛보고 더욱 빛의 자녀답게 더욱 거룩한 백성답게 변하여 갑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중보자이신 “그리스도는 믿는 자들의 부요입니다. 따라서 사람에게 있어서 빈곤이란 그리스도에 대한 빈곤이고 또한 그 역(逆)도 성립합니다.”³⁾ 『예수께서 광야에서 받으신 시험 I』의 고상한 기독론과 깊고 풍성한 교훈들이 성신의 가르치심과 인도하심을 받는 신자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 안에서 부요하게 되도록 할 것이라고 믿어 의심치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