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월 21일부터 25일까지 말레이시아 콸라룸푸르에서 ‘개혁교회들의 국제 모임’(ICRC)의 아시아 지구 대회가 있었습니다. 필자는 정병길 목사와 함께 독립개신교회의 대표로서 참석하였는데, 다음 내용은 1월 24일 아침 경건회에서 전한 말씀입니다.
우리는 방금 시편 131편을 불렀습니다. 첫날 경건회에서는 인도네시아 개혁교회의 욘슨 데단 목사님께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처음 부분인 시편 121편을 읽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오늘 마지막 경건회에서는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의 마지막 부분에 속하는 시편을 읽고 함께 부르는 것이 좋으리라고 생각합니다.
1여호와여,
내 마음이 교만치 아니하고
내 눈이 높지 아니하오며
내가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아니하나이다.
2실로 내가 내 심령으로 고요하고 평온케 하기를
젖 뗀 아이가 그 어미 품에 있음 같게 하였나니
내 중심이 젖 뗀 아이와 같도다.
3이스라엘아,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131편 1절에서는 사람의 세 부분을 들어서 세 가지 태도를 묘사합니다. 교만한 ‘마음’,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보는 거만한 ‘눈’, 그리고 큰일과 기이한 일을 행하려고 걸어가는 ‘다리’입니다. 큰일과 미치지 못할 기이한 일을 힘쓴다고 하였는데, ‘힘쓴다’는 말은 직역하면 ‘걷는다’는 말입니다. ‘다리’라는 말이 직접 나오지는 않았지만 ‘걷는다’는 말에 포함되어 있습니다. 마음으로 생각하고 눈으로 살펴보고 다리로 걸어가는 것을 차례로 묘사하였습니다. 어떤 일을 계획하고 행하는 것을 그림처럼 그리고 있습니다.
2절에는 다른 그림이 나옵니다. 어머니 품에 있는 아이의 모습입니다. ‘젖 뗀 아이’라는 말을 두 번이나 반복하면서 강조합니다. ‘젖 뗀 아이’는 이유기(離乳期)의 아이를 가리킬 수도 있지만, 젖을 충분히 먹은 후에 어머니의 품에서 잠든 아이, 혹은 어머니의 젖을 넉넉히 먹은 후에 어머니와 눈을 맞추면서 노는 아이를 가리킨다고도 볼 수 있습니다. 얼마나 평화로운 모습입니까? 그리고 첫 번째 그림과 얼마나 대조가 됩니까?
시인은 자기의 심정을 어머니의 품에 있는 젖 뗀 아이로 표현하였는데, 아이와 같은(childlike) 심정을 표현하였다고 하여서 시인이 유치한(childish) 것은 아닙니다. 자기의 마음을 주체하지도 못하고 무엇을 주시하지도 못하고 스스로 걷지도 못하는 어린 상태에 있는 것은 아닙니다. 시인은 하나님을 신뢰하는 마음을 품고 눈과 다리를 사용하였습니다. 만일 직장에서 일한다면 그는 주변에 있는 교만한 사람들처럼 상당히 바쁘게 일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바쁜 그 시간에도 그는 젖 뗀 아이와 같은 평온함을 누리는 것입니다.
다른 예를 들어보겠습니다. 우리는 대부분 한 시간에 900-1000킬로미터를 날아가는 비행기를 타고 콸라룸푸르에 왔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빨리 나는 비행기 안에서 우리는 책이나 신문을 읽고 낮잠을 잤습니다. 마치 거실이나 서재에 있는 것처럼 활동하였습니다. 빨리 나는 비행기에 있다고 하여서 서둘지 않았지만 우리는 매우 빨리 이동하였습니다. 물론 이 예가 아이와 같은 시인의 평온한 심정을 설명하는 데에 가장 적합한 것은 아닙니다. 그러나 어떤 일을 신속히 해 내면서도 평온한 심정을 가진 시인의 마음을 이해하는 데에는 도움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마지막 절에서 시인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지금부터 영원까지 여호와만을 바라라고 합니다. 자기가 여호와만을 바라면서 살아갈 뿐 아니라 다른 사람에게도 여호와만을 바라라고 권고합니다.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진 시인이 다른 사람에게도 그러한 마음의 경지로 들어가자고 청하는 것입니다.
131편에서 우리는 두 폭의 그림을 봅니다. 우리 모두는 둘째 그림에 나오는 아이처럼 평온한 마음을 갖기를 원합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그러한 경지에 들어갈 수 있겠습니까? 우리의 마음을 자세히 살피거나 명상의 기술을 터득하면 되겠습니까? 혹시는 ‘선’(禪)을 기독교화하면 되겠습니까? 그러한 방법으로는 결코 젖 뗀 아이의 평온함을 누릴 수 없습니다.
그 길은 우리의 마음을 연구하여서 얻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연구하여서 얻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도 잘 아시는 것처럼 1절에 나오는 ‘큰일’이나 ‘기이한 일’ 혹은 ‘기사’(奇事)는 하나님께서 행하신 구원과 창조를 가리키는 전문 용어입니다. 구약에서 가장 기이하고 큰 일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바로의 속박에서 구원하신 일일 것입니다. 출애굽 시대에 여호와께서는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셨습니다.
131편의 마지막 절은 바로 앞에 나오는 시편의 마지막 부분에도 나옵니다.
7이스라엘아, 여호와를 바랄지어다.
여호와께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음이라.
8저가 이스라엘을 그 모든 죄악에서
구속하시리로다. (130:7-8)
131편에서 크고 기이한 일을 힘쓰지 않고 여호와를 바란다고 노래하였는데, 바로 앞에 나오는 시편의 마지막 절에서는 인자하심과 풍성한 구속이 있으신 여호와께서 이스라엘을 그들의 모든 죄악에서 구원하시는 것을 노래합니다. 여호와께서 그렇게 크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기 때문에 우리는 젖 뗀 아이처럼 하나님의 구원으로 만족하면서 평온한 심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크고 기이한 일을 인정할 때에만 우리는 아이와 같은 심정을 가질 수 있습니다.
애굽에서 구원하시는 큰일을 본 이스라엘 백성이 홍해에서 하나님을 찬송한 것처럼(출 15:1-18, 21),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큰일을 깨달은 사람은 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우리의 창조주와 구주가 되시는 하나님께 찬송을 드립니다. 우리 하나님은 젖먹이의 입에서 나오는 찬송으로 원수와 대적을 잠잠케 하시는 분이십니다(시 8:2).
주 안에서 함께 수고하는 형제와 자매 여러분,
어린아이와 같은 심정으로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사람의 의무입니다. 시편 134편에서는 성전에 올라온 순례자들이 성전에서 일하는 제사장과 레위인에게 밤에 여호와를 섬길 때에도 두 손을 하나님께 들고서 찬송하라고 합니다. 순례자들은 성전에서 봉사하는 제사장들에게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를 밤낮으로 찬송하라고 격려하고(시 134:1-2), 제사장은 집으로 돌아가는 순례자들에게 여호와의 복을 선언하는 것으로 화답합니다(시 134:3). 134편으로 성전에 올라가는 노래가 끝나고, 이제 순례자들은 집으로 돌아갔습니다. 그렇지만 제사장들은 성전에서 계속 여호와를 찬송합니다. 여호와를 찬송하는 것, 이것이 말씀의 봉사자인 우리의 책무입니다.
사랑하는 동역자 여러분,
말씀의 봉사자로서, 선교사로서, 혹은 장로로서 우리가 감당해야 할 일은 매우 많습니다. 손이 열 개라도 그 일을 제대로 해 낼 수 없을 지경입니다. 그러나 자비로우신 우리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두 손만 주셨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제한된 지체로 주님을 의지하며 살도록 하셨습니다. 어머니의 품에서 만족하게 있는 아이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도록 하셨고, 우리의 제한된 지체로 그러한 신뢰심을 표현하도록 하셨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신뢰함을 가장 잘 표현할 수 있는 방법이 있다면, 그것은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을 찬송하는 것입니다. 자기가 감당할 수 없는 크고 기이한 일을 계획하는 사람은 어린아이와 같은 마음을 가질 수 없습니다. 교만한 마음과 거만한 눈과 바쁜 손발만 가졌을 뿐입니다. 그러한 사람은 원수에 대한 가장 강력한 무기인 찬송을 주님께 드릴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행하셨고 지금도 행하시며 미래에도 행하실 기이한 일을 잘 아는 사람, 거기에만 소망을 두고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때에 하나님의 방법으로 일하시기를 바라는 사람만이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능력과 자비하심을 증언하는 찬송을 드릴 수 있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