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 제목

저자

인간과 죄 3  |  분류 : 신령한 생활

김홍전

2017-08-30

317 쪽

145*225

\13,000

 

저자는 창세기 3:1-7을 본문으로 하여 ‘하와가 시험에 빠진 일’ 그 한 가지를 주제를 가지고 본서, “인간과 죄 3”이 나오기까지 일 년이 넘는 기간 동안 60강 분량의 강설을 하였습니다. 간단하게 다루면 10분이면 끝낼 수도 있는 내용을 가지고 이렇게 길게 하는 이유를 그만큼 그 내용이 단순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저자의 “인간과 죄” 시리즈를 통하여 인류 역사에 지대한 영향을 끼치고 있는 첫 사람의 범죄에 대한 깊은 성찰이 한국 교회에 있기를 바라면서 본서를 소개합니다.

본서가 주로 다룬 내용은 세 가지입니다. 첫째는 죄가 없는 하와가 죄에 빠진 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 살지 않았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하와처럼 마귀의 시험을 직접 당하신 예수님께서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라”(마 4:4) 말씀하신 대로 하나님께서 인생을 지으실 때에 처음부터 인생은 육신의 양식만 취하면 되는 것이 아니라 영혼의 양식도 취하여야 살 수 있도록 정하셨습니다. 저자는 하와가 마귀의 시험에 쉽게 빠진 것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생생한 현실을 통하여 생명의 양식을 취하는 생활이 단절되었기 때문에 영혼이 연약하여졌고 이러한 허점을 마귀가 파악하고 치고 들어왔을 때에 넘어졌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둘째는 마귀가 뱀을 이용하여 하와를 시험할 때에 주력한 것은 하와의 생각을 바꾸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마귀는 감각적인 것으로 현혹하여 일시적으로 타락하게 하기보다는 그릇된 사상 즉 마귀의 생각을 집어넣어 하나님을 본질적으로 반역하게 하였습니다. 이러한 일이 가능한 것은 하와의 마음속에 하나님의 말씀이 없었기 때문이라고 저자는 말합니다.
셋째는 마귀는 한낱 피조물이지 하나님처럼 절대적인 존재가 아니라는 점입니다. 저가 비록 귀신들의 왕이지만 피조물로서 하나님의 권위 아래 있는 것이지 무소부재하거나 전지전능하거나 영원한 존재가 아니므로 우리가 대적할 수 없을 만큼 두려운 존재로 아는 것은 옳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와가 마귀의 시험에 넘어진 것을 ‘그것이 절대적이고 압도적이어서 어찌할 수 없어서 넘어진 것이다’ 하여 사람이 죄에 빠진 일면의 책임이 하나님께 있다고 여기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처럼 본서는 마귀의 그 교묘한 술수와 그 술수에 넘어간 하와의 약점이 무엇인지를 잘 보여 주고 있어서 오늘의 신자로 하여금 사람을 자기의 종으로 삼으려는 음모를 가지고 이제도 활동하는 그 악한 자 마귀의 시험을 대비하게 합니다. 할 수만 있으면 택한 자라도 삼키려고 우는 사자처럼 공격하는 마귀와 싸워 승리하기 위해서는 하나님과 정상적인 교제를 통해서 하나님을 심오하게 인식하는 일 즉, 신령한 양식을 섭취하는 일이 있어야 하는데 이러한 일이 독자 여러분께 늘 있기를 바랍니다.

제1강 사람이 지어진 목적
제2강 사람이 장래를 계획하고 결정함
제3강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아는 것
제4강 하와의 빈곤한 신관
제5강 부당한 의심과 정당한 의문
제6강 하와의 의심
제7강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섭취하는 생활 (1)
제8강 하나님의 말씀을 양식으로 섭취하는 생활 (2)
제9강 하나님의 말씀으로 사는 삶
제10강 하와가 뱀의 말을 취한 태도
제11강 하와의 잘못된 감각 작용과 면역성
제12강 마귀는 구체적인 현실에서 시험함
제13강 마귀의 시험에서 오해하기 쉬운 것 (1)
제14강 마귀의 시험에서 오해하기 쉬운 것 (2)
제15강 마귀의 국권 조직과 그 행사
제16강 마귀 시험의 성격
제17강 그릇된 사상의 주입 (1)
제18강 그릇된 사상의 주입 (2)
베19강 그릇된 사상의 주입 (3)
제20강 그릇된 사상의 주입 (4)



본문 발췌

사람이 범죄한 이래로 인류는 근본적으로 암매하게 되어서 의롭고 거룩하고 참된 의를 바르게 알지 못합니다. 사람은 하나님과 인간에 대한 지식을 상실했습니다. 하나님을 전혀 모른다는 것이 아닙니다. 그렇지만 죄에 깊이 더 빠질수록 하나님에 대해서 더 모르게 되는 것입니다. 또한 사람은 자신이 왜 존재해야 하는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없으면 그 자리에 사람의 교묘한 생각이 차지하는 것입니다. 마귀가 사람들의 마음에 그릇된 신관과 인생관과 세계관을 퍼뜨려 놓았는데도 어리석은 인생은 그런 것을 가지고 자기를 규정짓습니다. 그러면서 ‘내가 이것을 위해 존재한다’ 하고 단정하는 것입니다. 그와 같이 적극적인 사상을 주입합니다. 물론 사람이 ‘모르겠다’ 하는 것도 잘 따져보면 모르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도 하나의 사상적인 태도입니다. ‘하나님은 어떤 분인지 알 수 없다’ 하는 것을 불가지론(不可知論)이라고 합니다. 그렇지만 안다고 해도 잘못 아는 것은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과 사람에 대한 그릇된 사상이 마귀의 가장 큰 요새가 됩니다. 아성(牙城)입니다. 마귀는 사람의 공허한 심정에 ‘하나님은 이런 분이다. 사람은 이런 것을 위해 있다’ 하는 그릇된 사상을 적극적으로 밀어 넣는 것입니다.